사직서

내 돈 내놔

by wordsfromulsan

"나는 진심으로 내가 제일 잘 되기를 빌어"
"솔직한 게 죄라면 난 하나도 안 미안해"
Swings - 악역 feat 이하이 & Simon Dominic

나보다 남들이 더 잘되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러하다. 마치 삶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일정 부분 이기적인 사람도 이해하는 편이긴 하다. 나한테 극심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며 넘어간다. 하지만 이 또한 한계치가 있고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화가 나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 회사가 그랬다. 그들은 한계치를 넘은 이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됐다.

회사가 어려울 순 있다. 특히 업력이 길지 않은 회사라면 더욱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안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할 수도 있고 힘든 시기 함께 버텨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땐 분명히 회사의 오너라면 죄송해야 한다. 고개라도 숙였어야 했다. 월급을 주지 못했다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이 정신 나가고 악덕한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월급도 주지 않은 채. 뻔뻔하고 이기적이었다.

월급날이 되었다. 들어오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했다. 분명 들어와야 하는데. 안 들어왔다. 심지어 아무런 공지도 없다. 메일도 한 통 안 들어왔고 임원진들 또한 아무런 말이 없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모두가 안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건 잘못됐잖아. 그러다 퇴근 시간 즈음 되어 재무팀의 부장 한 명이 와서는 오늘 월급이 못 들어오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분은 임원이 아닌데? 진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러다 임원진들을 봤다. 멀리서 보인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다. 심지어 끝나고 술도 한 잔 하러 가는 듯했다. 미친놈들인가? 육성으로 먼저 터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회사엔 미지급금이 잔뜩 쌓여있다. 수많은 거래처에 나가야 할 돈이 몇 년째 단 한 번도 안 나간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업무라며 지시한 것이 그 지급 일자를 미루라는 것이었다. 거래처 리스트와 각 업체별 리스트를 받았다. 근 10년 가까이 미뤄둔 거래처도 있었다. 10/27 일자로 미뤄두면 그땐 지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찝찝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지시한 업무기에 진행하기로 했다. 수많은 거래처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하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가 이 업무를 진행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해당 날짜에는 지급이 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회사를 대신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기분이 좋진 않지만 넘길 수 있었다. 그것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금 내뱉는 말들이 거짓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우리가 줘야 할 돈을 못준 건데 그 마저도 또 거짓말로 넘기는 것은 너무 뻔뻔하고 도덕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10/27이 되자 회사는 그 어떤 거래처에도 지급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돈을 가지고 거짓말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면 대표라는 사람은 먼저 나와서 해명을 해야 했고 사과를 구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월급이 안 나오자 "겨우 일주일인데 그거 기다릴 수 있잖아?"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사직서를 내자 "차라리 잘 됐다. 이번에 한 번 털고 가자. 남는 사람들이 진짜지."라고 했다.

미지급금을 사유로 거래처에서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오자 "야 걔네는 겨우 몇백 가지고 그렇게 지랄이냐?"라고 했다.

가증스러웠다. 너무 혐오스러웠다. 뭐가 그렇게 뻔뻔해? 돈이잖아. 누가 뺏어가려는 것도 아니고 원래 줘야 할 돈이었잖아. 왜 안 줘놓고 당당해? 이해가 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놓곤 회사가 잘 되어야 하니까 이해해 달라고 한다. 이건 분명히 한계치를 넘었다. 발주를 위해 견적을 받아올 땐 어떻게든 깎으라며 돈이 그렇게 중요하다더니 정작 본인들 돈이 나가야 할 땐 전부 모르쇠 하고 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본인이 먼저 잘 되길 바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선은 지켜야 한다. 상기한 사유로 퇴사를 했더니 임원들은 나를 씹기 바쁘다고 하더라. 먼저 선을 넘은 건 너희들이다. 당신들의 뒤틀리고 오염된 이기심을 향한 이해를 내게 바라지 마라. 내가 그렇게 자랑스럽고 뛰어난 회사를 나왔다고 내가 더 잘 될 수 없을 거라던데. 내 대답은 하나다. 좆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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