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와 함께 늦여름의 불볕더위가 곧 시작될 것 같다. 에어컨을 켠 방에서 아이를 침대에 재워 놓고 지난 초여름의 아이 돌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핸드폰을 켰다.
돌이란 무엇인가.
우선 내게 돌은 돌잔치 준비로 시작되었다.
스타트는 어린이집.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린이집에서 아이 생일 파티를 하고 싶은지 물으시며 하고 싶으시다면 생일상 준비해서 보내 주시면 된다고 하셨다. 기억도 못할 텐데 그냥 하지 말자고 남편은 말했지만 생애 첫 생일인데 많은 사람한테 축하받게 해주고 싶어서 어린이집에 생일 파티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양가 가족들 모여서 크게는 아니어도 여러 어른들에게 한 번에 축하받고 주목받는 생일을 치렀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는 코로나 키즈라 잔치는 자연스럽게 생략되었다. 몇 달 전에 돌잔치에서 코로나 감염된 사례도 있었고.
작년 말 어린이집 돌잔치 사진을 찾아서 대충 준비물을 정하고 이마트 쓱배송을 시켰다. 새벽에 어린이집 현관 앞으로 과일이며 과자 같은 건 도착하게 예약. 생일 파티를 하면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게 되는데 이때 답례품 같은 걸 해야 한다. 지금까지 받은 답례품은 떡과 사인펜이 있었다. 둘 다 나쁘지 않지만 사인펜은 모든 아이들 집에 많을 것이고 여름이라 떡은 상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마카롱을 주문했다. 전체 원아 수와 선생님 수에 맞게. 그리고 답례 마카롱에 축하해 줘서 고맙다는 매시 지를 전해야 하니 스티커도 주문한다. 얼굴 사진을 넣은 스티커라 어떤 사진으로 할지 고민한다. 결혼식에 쓸 사진도 고민 없이 한 번에 휙휙 골랐는데 이 스티커가 뭔지 하루 종일 고민하는 나를 보고 스스로 좀 놀랐다.
돌잔치만큼 재미없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라고 친구들이랑 자주 말했었다. 본인들이야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순간이겠지만 가족이 아닌 다음에야 참석한 사람에게 그만큼 시간 아까운 게 없긴 하다. 게다가 성장 동영상을 튼다음 어느 돌잔치던지 어김없이 마지막에 아가야 사랑해.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하는 대목이 있고 꼭 엄마 혹은 엄마 아빠가 우는 데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말 곤란했었다.
그런 내가 돌잔치를 두 번 치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돌잔치 하는 부모들 모두 수고한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안해보고 그냥 말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원래 한정식 집에서 양가 직계 가족만 초대해서 밥 먹고 간단히 돌상 하려고 했는데 돌잔치 이 주전에 시아버지의 한마디로 모든 게 바뀌었다.
코로나인데 위험하게 어디가 노. 집에서 밥만 먹자. 아무것도 처리지 마라.
아무것도 안 먹고 안 하면 뭐하러 모인단 말인가. 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돌만큼은 꼭 당일에 치러야 한다. 꼭이다 꼭. 이번만은 아비 말 들어라.
아이의 출생일은 평일이다. 다들 직장 다니고 바쁜다 평일 돌잔치라니. 하지만 시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고모부까지 반차를 쓰게 된다. lol
집에서 치른다고 생각하니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우선 집이 좁으니 양가 합쳐서가 안되고 각각 해야 한다. 이 부분 하나는 만족스러웠다. 양가가 모여서 뻘쭘한 분위기를 견디느라 진땀 빼는 상황은 일단 패스.
대신 돌 상도 두 번 처리고 음식도 두 번 차려야 했다. 다 똑같이 생긴 돌상 대여업체들을 보다가 결국 그냥 한복이 이쁜 곳으로 후다닥 정했다. 그런데 주말 대여만 된단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평일 대여는 다른 곳으로.
양가 어른들 입 맛에 맞춰서 음식도 각각 준비. 직계만 모인다고 해도 각각 어른들만 6~8명. 회 시키고 고기 굽고 잡채 무치고 디저트 준비하고.
당일엔 정말 별로 차린 것도 한 것도 없다고 해도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온통 땀범벅.
화장하고 원피스 갈아입는 건 진짜 어른들 도착하기 직전에야 가능했다. 이 날 나를 본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어머님, 이렇게 돌잔치하시는 건 아니시죠?라고 하셨는데. 힘들어서 생략 하려고 한 화장을 선생님 덕분에 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진은 건졌어요.
다행히 아이 컨디션도 두 날 모두 좋았고 한복도 모두 이뻤고 어른들도 좋아하셨고 사진도 너무 잘 나왔다. 특히 내가 참 잘 나왔다. 원래 사진 잘 나오는 스타일이 아닌데 웬일인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 돌잔치 준비하느라 몸무게가 3킬로가 빠졌던 것. 여러분 다이어트는 돌잔치로 하세요.
돌잔치 두 번을 치르고 이제 돌 끝이구나 편한 마음에 잘 먹고 잘 자고 아이와 잘 놀았다. 얼마 전까지.
그러다 그분이 오셨다. 말로만 듣던 돌발진.
삼일 꼬박 열이 39도 넘게 오르고 해열제도 잘 안 듣고 병원에 가도 해주는 게 없고 애는 칭얼대면서 힘드니 잠도 안 자고. 십 분마다 열재고 옷 벗겨서 미온 수건으로 닦이고 자지러지는 애한테 해열제 억지로라도 먹이고. 밥 안 먹고 약 먹으면 쳐지니 이 와중에 간식에 이유식까지 싹 다 새로 만들고.
정말 끝없는 터널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힘들고 무섭고.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아이한테만 모든 신경이 쏠려있는.
그렇게 지옥 같음 72시간이 끝나고 열이 38도로 내려가고 아이가 조금씩 컨디션을 찾더니 나흘째 되는 날에는 37도와 36도를 오갔다. 그리고 낮잠에서 자고 일어난 아이의 온몸에 빨간 반점이 올라왔다. 말로만 듣던 열꽃이 너구나.
삐뽀삐뽀에는 얼굴에는 보통 안 난다던데 아이는 얼굴 포함 상체 전체에 났다.
아픈 게 끝나니 본격적인 떼가 시작되었다.
아프느라 힘들었던 게 다 떼로 발산되었다. 한시도 내려놓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 칭얼거리는 걸로 의사표시를 했다.
평소에는 거의 우는 일이 없고 혼자서도 잘 놀고 늘 온순한 아이의 반전 모습. 그래. 네가 제일 힘들었으니까. 토닥토닥하면서도 팔은 빠져버릴 것 같고 집안 꼴도 엉망이고 배고프고 졸리고. 정말 내 상태는 카오스였다.
언제나 마지막은 엄마. 엄마가 당장 집으로 와주셨다. 집안 청소며 매 끼니 새로운 요리 해서 딸 입에 넣어주시고 딸이 손주 보느라 힘들까 봐 맨날 업어주시고 밤에는 데리고 주무셨다.
엄마 나도 이렇게 아프면서 컸어?
너는 더 했지. 대학병원에 맨날 쫓아다녔는데. 그 작은 몸에 링거 맞추고 주사 놓느라 네가 자지러지는 데 엄마가 너무 무섭고 슬퍼서 막 우니까 의사가 좀 나가 있으라고 하더라.
많이 아팠어서 미안해 엄마.
무슨 소리야. 네가 얼마나 엄마 걱정 안 시키고 잘 컸는데. 우리 아가도 이렇게 아프면서 튼튼하게 큰 거야.
이제 엄마도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이도 완전히 나았고 집은 다시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돌 다음엔 어떤 고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엄마들은 어떻게 이런 과정을 다 거치고 아이를 길러낸 걸까. 나는 아직도 두렵다.
하지만 두렵지만 씩씩하게 이겨내는 우리 아이와 언제나 든든한 우리 엄마가 있으니까 다음 단계 다음 고비도 분명 잘 지나가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