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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Oct 22. 2020

복직 한 달 그리고 월급

회사 나오니 좋지?

아이를 낳고 일 년간 휴직이란 말이 무색하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지났고 지난달 복직하게 되었다.


복직 전날 밤에서야 내가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지만 그날도 역시 부족한 잠을 쪼개서 자느라 깊이 고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복직하고 받는 첫 월급이 통장에 꽂혔다.


아! 그래 이 느낌이었지.

이 느낌 덕분에 내가 십 년 넘게 회사를 다녔지. 너므 좋구나. 통장이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눈 깜짝하면 흩어져버리는 월급일지언정 내 이름으로 내 몫의 일을 다 해내고 받는 결과물인 월급이 너무 반가웠다.


복직하고 좋은 건 월급만은 아니다.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목마를 때 언제라도 목을 축일 수 있으며 게다가 정말 이게 가장 하이라이트인데 세끼를 매일 다른 식단으로 챙겨주고 설거지도 안 해도 된다.


구내식당이 이렇게 소중하고 소중할 수가 없다. 얼마 지나면 예전처럼 지겹다 맛없다 생각이 들지 몰라도 지금은 이런 산해진미가 없다.


이 정도 되면 늘 따라 나오는 질문이 있다. 복직하고 지금까지 늘 나를 따라다니는 말.

애는 누가 봐? 힘들겠다. 보고 싶어서 어떡해.


애는 부모님이 봐주신다. 너무 감사하게도 부모님 덕분에 야근도 할 수 있고 아이도 전과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진심으로 아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픈 아이를 두고 나왔다거나 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 한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런 생각할 짬 없이 일하고 또 일하고 적응한다.


회사에서 나는 엄마가 아니라 마케터다. 맡은 업무가 있고 기대받는 혹은 압박받는 프로젝트가 있으며 눈에 안 보이는 경쟁이 있고 그 안에서 배우고 실망하고 때로는 싸우고 도우면서 내 몫을 해나간다. 그러니 당신과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직장에서 '엄마'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건 실례다. 다들 걱장되는 마음에 혹은 안부로 묻는 거겠지만 열반 스무 번 삼십 번 같은 질문을 듣고 답하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정시에 퇴근한다. 완전히 적응해서는 아니고 임원이 휴가를 가서 덕분에 가능해졌다. 아직도 휴직 전에 비하면 업무 속도도 끌어올려야 하고 그간 바뀐 시장, 플랫폼, 회사 사정도 파악해야 하니 올해는 정시퇴근은 좀처럼 누치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첫 월급도 들어오고 타이밍 좋게 상사도 없어주시니 오늘은 일찍 집에 간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셔틀버스 안에서 그동안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하던 제주도 감귤 농장에서 유기농 귤도 주문하고, 주말에 부모님 드시라고 떡도 사고 유산균도 선물로 구매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아기 내복도 좀 도톰한 걸로 몇 개 골랐다.


결재를 마치고 주문 목록을 보는 데 새삼 놀랍다. 내 선물은 하나도 없다.

결혼하고 나서도 이렇진 않았는데 정말 아이 낳고 바뀌긴 하는구나.

너무 바뀌는 건 싫은데 싶으면서도 나쁘지 않은 감각이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느낌? 물론 한쪽 다리는 남편이 맡아서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부양의 책임을 동등하게 나눠서 지고 있는 기분 좋은 무거움이랄까.


이 무거움이 때로는 나를 짓누르고 답답하게 하고 빠져나가고 싶을 때도 올 테지만 아직은 아니다. 일 년간 쌓인, 나도 모르게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쌓이고 있던, 긍정 에너지 덕분인지 몰라도 지금은 한참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에너지를 모아 모아서 올해는 예전 느낌으로 회사 업무를 빠르게 레벨 업하고, 내년엔 엄마와 직장인 둘 다 말고 새로운 부캐를 찾겠다. 이렇게 글로 써놓고 나면 최소한 내 마음속 혼자의 되뇜 보다는 효과가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내년  이맘때는 부캐의 시험 가동을 마치고 본격적인 운전에 시동을 걸고 있기를.


혹시라도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출산 육아 혹은 병가나 다른 이유로 휴직/퇴사하신 분들이 있으시고 혹시라도 복직에 앞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응원합니다.


몇 달 몇 년의 쉼이 지금은 크게 느껴지겠지만 중요한 건 일단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복직해서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고 용기를 내서 올라타면 그 후엔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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