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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19년

2019년 회고를 시작하면서 작년에 썼던 회고를 다시 열어봤다. 1년 전의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1년이 지나도 나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올해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대략 이러했다.


내가 조금 더 의미 있게 느끼는 일을 찾아서 헌신하고 싶다

얼마 전에도 적었듯이 7월에 팀을 옮겼고 미국으로 이사했다. 실수령액이 캐나다에 비해 많이 올랐다. 일도 재미있어졌다. 그런데 삶의 질은 딱히 더 향상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는 느낌. 밴쿠버가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괜히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쓰겠지만.


새로 옮긴 팀은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옮긴 지 3달 만에 조직개편이 일어나면서 도메인은 비슷하지만 또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별로 관련 없는 팀으로 내 의사와 관계없이 옮겨져버리고 말았다. 푸는 문제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팀에서 요구하는 스킬셋들이 내가 재미있었던 것들과 너무 달라서 좀 혼란스럽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나는 볶음 요리 전문 냄비인데 사골국을 끓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만들고자 하는 요리 자체는 맛있어 보이는데 내가 여기서 사골국을 끓여서 볶음 요리 스킬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의미 있게 느끼는 일을 찾긴 찾았는데 의미만 있달까. 무엇보다도 지금 팀에서 쓰고 있는 도구가 정말 맘에 안 든다. 작년에 React 할 때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건 정말 한숨만 나온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일단 이 기술을 다른 회사에서 쓸 일은 없으니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일을 하면 뭔가 만들어지긴 한다. 나름 의미 있는 결과물도 나오고 있다. 그럼 어찌 됐든 일을 되게 하는 게 내 일일까? 


얼마 전에 미생 웹툰을 다시 읽었는데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예전에 미생을 읽었을 때 나는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조직에서 필요한 톱니바퀴이고, 내가 제자리에서 열심히 굴러감으로써 회사가 - 우리 회사는 정말 크기 때문에 내가 굴리는 건 정말 정말 작은 바퀴다. 그 바퀴도 개인 입장에서 크긴 하지만 - 굴러가는 게 보이니까 또 한편으로는 이게 나의 역할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이 자리가 나의 자리일까? 지금도 계속 나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름이가 커 가는 과정을 옆에서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

매일매일 회사에 가야 하고, 또 회사가 나름 시간에 flexible 하다고는 하지만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일에는 회사에 가 있는 시간이 여름이와 있는 시간보다 많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회고에 여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고귀한 경험이었다고 적었는데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와이프의 뱃속에서 나와 응애응애밖에 할 줄 모르던 아가가 걷기 시작하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경이로운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 그 경험을 통해 나 자신도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이와 함께하고 나서는 그 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신경 쓰게 되었다. 가족이란 뭘까. 부모란 뭘까. 사는 건 뭘까. 인간이란 뭘까.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예를 들면 나의 죽음 같은 것. 나는 언제나 '나'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나의 죽음 뒤에 오는 세상 따위 관심도 없었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왜 지구온난화 같은 것에 신경 써? 어차피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여름이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뭘까 하는 고민도 든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음주와 육아로 현저하게 저하된 체력을 회복하고 싶다.

매년 이런 목표가 있었지만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링 피트 어드벤처도 구매했다. 크게 내 몸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발버둥이라도 쳐보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내년 이맘때쯤에는 지난 1년에 대해 뿌듯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일이든 가정이든 운동이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올 한 해에 대해 엄청나게 뿌듯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이런 감정이 나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조금씩 하고 있다. 나를 오랫동안 봐 왔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지난 시간들에 대해 후회가 많은 편이다. 그 후회란 것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나는 왜 대학생 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전 회사에서 조금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까, 왜 예전 팀에서는 조금 더 노력해보지 않았을까 등등.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계속하는 사람이다.


사실 스스로에게 뿌듯한 감정이란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 한 뿌듯함이란 나에게 찾아오지 않겠구나. 사실은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일하면서도 잡스러운 생각들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집에 가면 늘어져 있고, 항상 내 능력보다 많은 일을 벌여서 너무 많은 일에 허덕대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나에게 뿌듯함이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느낌일 수도, 혹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금 당장이라도 가질 수 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기에 따라 뭐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둘 중에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학교라는 곳을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가장 괴롭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며 정답을 찾아가야 한다. 어쩌면 내 마음은 아직도 문제 하나를 풀 때마다 누군가가 잘했어, 못했어를 이야기해주지 않는 시절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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