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의 국가들
2. 캐나다
미국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미국의 장점을 조금 희생하는 대신 단점도 조금 없어지는 나라가 캐나다이다. 일단 캐나다는 주마다 우리나라의 의료 보험과 유사한 국가 의료보장 제도가 있어 미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의료비 문제가 덜하고, 총기 보급률도 미국에 비해 낮아 치안도 한결 낫다. 비자 문제도 미국처럼 까다롭지 않고 – 보통 합격 후 2~3개월 내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 오히려 이민자들을 반기는 분위기라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한국에서 아예 바로 영주권 받고 넘어오시는 분들도 많다.
좋은 점이 있으니 단점도 당연히 있겠다. 일단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만큼, 캐나다의 세율은 미국의 세율보다 세다. 내가 가게 될 British Columbia 주 기준으로, 나의 실효세율은 약 40% 정도이다. 그런데 Glassdoor 같은 연봉 공개 사이트를 찾아보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페이 수준은 오히려 미국보다 낮다. 캐나다에는 미국만큼 회사가 많지 않아서 개발자 채용 경쟁도 덜 치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십 배 면적에 달하는 캐나다의 인구는 30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캐나다 로컬 회사들은 개발자들에게 많은 페이를 지급하기가 어렵고, 캐나다에서 높은 페이를 지급하는 회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미국 회사들이다. Glassdoor에 나온 금액을 놓고 보면 대략 이렇다.
시애틀의 software engineer 평균 연봉 : $118,000
밴쿠버의 software engineer 평균 연봉 : $57,000 ($72,000 캐나다 달러)
밴쿠버 마이크로소프트의 software engineer 평균 연봉 : $87,000 ($110,000 캐나다 달러)
캐나다의 물가는 서울 못지않은 수준이고, 주거 비용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비싸다. (해외 취업을 알아보면서 느낀 건데, 한국보다 주거비용이 싼 나라가 많이 없다…) 캐나다로 취업을 하게 되면 미국 회사에 가지 않으면 커리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메리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미국과 비슷하다. (미국 회사니까…)
3. 유럽
미대륙 다음으로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은 지역이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이 몰려있는 가장 큰 나라는 영국/프랑스/독일이겠지만 그 외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다. Clash of Clan이라는 유명한 게임을 만든 회사인 Supercell은 핀란드에,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사용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든 Spotify는 스웨덴에, 숙소 예약 서비스인 Booking.com은 네덜란드에…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은근 유명한 회사들이 많이 흩어져있다. 요즘 유럽 쪽에서 자꾸 메일이 오는 것 보면 미국 테크 회사들에서 사람을 많이 데려가는 바람에 구인난에 시달리는 듯하다.
장점은 일단 해외 취업의 제일 조건인 비자받기가 미국보다 훨씬 수월하다 것.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처럼 까다로운 나라는 없다. 그리고 미국과는 다르게 유럽 쪽은 워라밸이 나름 철저하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연 20일 이상의 법정 휴가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나라가 인접해 있어 휴가 갈만한 장소 고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듯하다. 사회보장제도도 잘 되어있다. 의료나 육아 복지에 있어서는 아마 유럽만큼 훌륭한 곳이 없지 않을까?
다만 역시 미국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보니 캐나다처럼 페이는 미국 대비 적다. 그나마 많이 준다는 런던을 봐도 평균 $78,000달러인데, 급여 대비 주거비용이나 물가가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젊을 때 벌어서 먹고 놀고 다 쓰고 노년에 나라에서 연금 받는 걸로 생활하는 유러피안 스타일로 산다면 괜찮겠지만, 한국처럼 저축하려고 하면 쉽지 않을 액수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 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장벽이다.
4. 기타 (아시아/호주/중동 등)
이 지역에 근무하고 계시는 분들이 보시고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북미/유럽 외의 아시아 지역 (싱가포르/일본/중국/홍콩 등)과 호주 등의 지역을 그 외로 분류했다. 하나씩 편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일본 – 예전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단기간 거주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페이가 한국과 비슷한 반면 주거 비용이 많이 지출된다. 단기간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가 관심을 깨끗하게 걷어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 – 싱가포르에 있는 기업들이 더러 있다던데… 나 같은 경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물가도 비싸고, 딱히 흥미 있는 나라도 아니고, 어떤 회사가 있는 지도 잘 모르겠고…
중국 – 중국에서 사람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나한테는 연락 안 오더라. (정말 뽑긴 하는 건가?) 된다 해도 대기오염 문제나 언어 문제 때문에 높은 우선순위가 아니고.
호주 – 이민은 좀 수월하고 IT 기술자의 수요도 많다고 들었는데, 커리어적인 면에서 좋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더라. 우선 IT 회사가 많지 않아 이직이 수월하지 않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회사에 갈 수 있을지 잘 확신이 안 서고, 결정적으로 호주 회사들이 그렇게 채용에 적극적 인지도 잘 모르겠다. 호주에서 누릴 수 있는 특유의 느긋한 라이프 스타일은 참 끌리긴 하는데, 아직은 더 경쟁적인 환경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그래서 어딜 가고 싶은데?
어딜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사실 이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
“나는 해외취업으로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가?”
나 같은 경우는 이런 갈망들이 있었다.
-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카카오) 보다 세상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
- 한국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함께해야 할 와이프(와 앞으로 생길 2세)를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 휴가를 조금 더 많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 해외에 평생 살 생각은 없기에, 사회 보장 제도나 연금 등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지금의 소비생활을 유지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 정도로 저축이 가능해야 한다.
- 조금 더 유연한 근무제도가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가족이 병원에 가거나, 내가 몸이 안 좋을 때 편하게 근무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재택근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카카오에서는 그게 힘들었다.
물론 저 조건을 다 만족하는 회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아는 한 경제적인 보상과 넉넉한 휴식이 같이 따라오는 회사는 없었다. 있으면 긴히 쪽지 좀 부탁드립니다....
사실 해외 현지가 아닌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이상 내 입맛에 맞는 회사를 골라서 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 정도 되는 능력자라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하더라도 나의 경우 이렇게 미리 자신의 판단 기준을 세워둔 것이 합격 후 회사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면, 먼저 “왜 나는 해외에 가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해두는 것이 좋다. 앞으로 마주칠 험난한 여정에 길을 잃거나, 선택의 순간이 다가 왔을 때 그 기준들이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