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로 가는 것이 좋을까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97학번 선배의 실리콘밸리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 자유로운 분위기, 이제 조금 식상한 워딩이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1년 뒤 학교 취업정보 게시판에서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인턴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지원했고 운 좋게도 합격해서 Canari Noir라는 스타트업에서 3개월간 웹 프런트엔드 엔지니어로 인턴을 하게 되었다. 3개월간의 인턴을 통해 프런트 개발이 그렇게 적성에 맞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날씨 좋은 실리콘밸리에서 3개월간 지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동료들과 퇴근을 하고 집 앞 풀에서 수영 후 바비큐 파티를 하고, 주말에는 카멜 비치에서 서핑을 하기도 했고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게임의 모티브가 된 테마파크인 Six flags Magic mountain에 놀러 가기도 했다.
이런 즐거운 생활을 하다 보니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학부 졸업장도 없었고 (미국에서 일하기 위한 비자인 H1B를 받으려면 학부 졸업장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언젠가 군대를 가야 하는 미필이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와서 산업기능요원으로서의 복무가 끝난 4년 뒤에나 해외 취업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조금 잡설이 길었는데, 해외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하려고 할 수 있는 지역은 크게 4개 정도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지역마다 장단이 있고, 본인이 무엇을 원하냐에 따라서 가고자 하는 지역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다.
1.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고향! 세계 최고의 HW/SW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가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소프트웨어는 몰라도 그 이름은 알만한 큰 회사들의 본사가 있는 나라이고, 그에 걸맞은 정상급의 엔지니어들과 글로벌 레벨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서태웅이 농구의 고향이었던 미국으로 가고 싶어 했듯,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멋진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회사가 많은 만큼 개발자들에 대한 보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Hired에서 공개한 <State of Salaries Report>에 의하면 미국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의 평균 연봉은 13만 5천 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1억 4천5백만 원에 달한다. 높은 세율과 물가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보상 중의 적지 않은 비율은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듯 주식 보상으로 지급된다는 점과,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18년 2월 기준으로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지는 미국일 것 같다.
하지만 책임 없는 보상은 없는 법.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대부분 휴가 일수를 정해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휴가 제한이 없으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원할 때 쉴 수 있을 것 같지만, 갔다 와서 책상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일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강등당하고, 비난받고, 해고당한다. 그렇기에 내 주변 지인들 중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은 항상 집에서 일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어있다. 법정 휴가 역시 연 15일 정도로 (자율이 아닌 회사인 경우)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위에 링크한 Hired report를 보면 지난 1년간 11일 미만의 휴가만을 누릴 수 있었던 개발자들이 40%에 육박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힘들게 일하고, 많이 받는다.
미국에서 일하는 것 자체도 여러 난관이 있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H1B 비자나 L1 비자 중에 하나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길이다. H1B는 가장 일반적인 취업 비자이지만 가장받기 어려운 비자 이기도 한데, 운빨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회사와 면접을 보고 합격하면, 회사에서 매년 4월에 이민국에 비자 접수 신청을 한다. 문제는 매년 발급하는 H1B의 숫자가 지원자 숫자의 3분의 1 수준이고, 매년 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 미국 대학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별도의 추첨을 돌려서 그나마 더 수월하다고 하지만, 나 같은 토종 한국인에게는 그림의 떡. 요즘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NIW라는 과정으로 영주권을 많이 얻는다고 하던데 가방 끈 짧은 나에게는 역시나 의미 없는 이야기다.
L1비자는 주재원 비자로, 외국에 소재한 미국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나 구글 코리아 같은) 지사에 1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상대로 발급되는 비자이다. H1B에 비해 수시로 접수받고 발행 수도 한정되어있지 않아서 훨씬 발급받기가 수월하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집안을 파탄 낸다는 미국의 어마 무시한 의료비와 – 물론 회사에서 대부분 보험으로 커버해주기는 하나, 아니라면 매달 수십만 원의 의료보험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 총기 사유화로 인한 치안의 문제, 실리콘 밸리의 살떨리는 물가, 트럼프 정권 이후로 생겨나기 시작한 반이민자 정서 등은 덤이다. 가장 매력적인 만큼 단점도 많은 나라가 미국이 아닐까 한다.
다음 글에서는 미국 외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