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행복한 직장인 되기'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스웨덴의 유니버섬이 전 세계 57개국 젊은 직장인 20만 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최하위권인 49위였다. <서울시 직장인들의 통근시간과 행복>이라는 논문에는 직장인들이 길어지는 출퇴근 시간 때문에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도서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는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도 무급의 노동이라며, 매일 반복되는 무급 활동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입에서는 매일 '짜증 나', '열 받아', '지겨워', '괴로워', '허무해', '우울해', '왜 저래'라는 말들이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퇴근 시간의 짜릿함을 위해 하루 8시간을 악착같이 버틴다. 그렇게 갈망하던 취직을 했는데 왜 직장인들은 여전히 불행할까?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갑갑하고, 피하고 싶지만 대책이 없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마음은 항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이유가 있겠지만 원인은 단 한 가지에서 비롯된다. 바로 행복의 기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범위의 행복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행합니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우리는 늘 많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가능성이다."
도서 <꾸베씨의 행복 여행>에서 말하는 행복이다. 행복은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민방위 교육 강사가 30대 중반의 대기업 직원이 민방위 교육을 오던 중 심장마비로 죽은 사건을 얘기하며 "회사 왜 다니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직원의 사망 원인이 무리한 야근으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강사는 직장생활의 근간을 ‘행복’에 두어야 한다며,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기준을 정해 버리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데자뷔처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아 섬뜩했던 적이 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기상해서 씻고, 회사 규정에 맞는 옷을 챙겨 입고, 똑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똑같은 다리를 건너, 똑같은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거나 야근을 하거나 또는 술 한 잔 하거나… 365일이 마치 하루처럼 돌아간다.
직장인의 삶은 평생 바위 밀어 올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의 형벌을 방불케 한다.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 '뭐 재미있는 일 좀 없나?'를 습관적으로 외치지만, 역시나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스치듯 찾아오는 주말이라는 행복을 위해 나머지 5일을 목적 없이 달릴 뿐.
인생은 삼류 드라마의 재방송처럼 재미없게 반복되고, 나도 모르게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다. 나조차 방관하는 내 삶은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과 가정생활도 무료함에 빠뜨린다. 스스로 만든 비극적인 울타리 안에서 어느새 꿈은 사라지고 핑크 빛 미래는 서서히 잿빛으로 바뀌어 간다.
직장인들은 습관적으로 행복을 벽의 이면에 몰아넣고 비극적인 삶을 쫓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뿌리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근원지는 바로 관점이다. '님'과 '남, '자살'과 '살자', 'Opportunity is nowhere'라는 말이 'Opportunity is now here'라는 말로 바뀌고, Impossible이 I'm possible이 된다.
관점의 한 끗 차이는 대단하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회사를 다닌다'라는 마음가짐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회사를 다닌다'라고 바꾼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세상을 밝게 보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어둡게 보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옳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즐거운 삶과 고통에 찬 삶, 성공하는 인생과 실패의 인생이 결정된다. 따라서 행복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랄프 트라인의 저서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다>에 언급된 글이다. 행복은 관점이다. 극심한 취업란에 상처투성이 된 청춘들이 취업문 앞에서 굳게 닫힌 문이 열리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침마다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은 분명 감사할 일이고, 내 덕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 더하기 1을 1이라고 외쳤던 에디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관점을 달리하면 부질없는 삶이 부지런한 삶으로, 비극적인 삶은 자극적인 삶으로 바뀐다. 관점을 바꾸고 '불행'을 '행불'(행방불명)시키기 위해 힘쓰자. 직장인에게는 '먹고살아야 하니까'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가 정답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