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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0. 2021

직장인, 결점과 마주 서기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하라'


같은 직장 친한 동료 3명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부탁받은 적 있다. 업무 하면서 느낀 점, 업무 능력, 직장 내 평판, 성격 등은 가까운 사이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체감 온도보다 조금 더 따듯하고 예쁘게 포장해 답하면 된다. 어려운 답변은 단점에 대한 질문이다. 으레 등장하는 문이지만, 매번 어려워 말문이 턱 막힌다. 단점 없는 사람은 없으니 평소 느낀 점을 조금 예쁘게 순화해 대답하곤 했다. 믿고 보는 동료 간의 의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없는 말하지 않았다.


달리 표현하면 무사 입사를 위해 짜고 치는 지막 관문이다. 지원 기업에 합격하면 개인 동의하에 레퍼런스 체크해줄 사람(레퍼리)을 적어낸다.(지원자 개인 정보를 토대로 무작위로 진행하는 비동의 레퍼런스 체크 방법도 있다. 요즘에는 동의 레퍼런스 체크를 주로 한다.) 누군가에게 이직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쉽게 소문내지 않을 신중한 사람을 선택해야 혹시 모를 낭패를 방지할 수 있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레퍼리(참고인)는 2명 정도다.(현 회사 1명, 직전 회사 1명) 업무적으로 밀접했던 직속 상사 또는 동료를 선정하라고 한다. 최소 1년 이상 함께 근무한 팀원이나 유관부서 동료가 기준이다. 업무 연관성 없는 단순 입사동기 등은 제외다.


신중하게 최종 2인을 선정했다. 전에 함께 일한 직속 팀장과 업무 밀접 관계인 다른 팀 후배였다. 이직 사실을 이실직고한 뒤 양해를 구해 명단을 제출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답변은 레퍼리의 몫이다. 알아서 잘 얘기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품을 뿐이다. 형식적이었겠지만 레퍼런스 체크까지 무사히 마치고 이직을 완수했다.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하라.


이직 후 두어 달 만에 전 직장 동료들과 만났다. 이직 스토리가 자연스레 흘렀고 레퍼런스 체크 이야기까지 다다랐다. 그 자리에 레퍼리는 없었지만, 레퍼리와 친한 동료들이기에 내 레퍼런스 체크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장점보다는 단점 궁했다. 귀를 쫑긋 세웠다. 후배는 나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라는 주제로 단점을 어필했고, 전 팀장은 '혼자 일을 다 하려고 해서 후배들이 일 배울 기회가 줄어든다'라는 내용으로 단점을 피력했다고 한다. 덧붙인 마무리 말은 물론 긍정적이었다. 걱정이 많아 일을 더욱더 꼼꼼하게 처리하고, 일을 잘해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었다는 사족 아닌 사족.


후배와는 회사에서 근심, 고민, 걱정에 대해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뭔가 불안해 보이는 선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팀장은 나에게 혼자 너무 많은 일을 떠맡으려 하지 말라고 한 적 있다. 레퍼런스 체크 시 본인들이 파악한 단점을 나름 단점 같지 않게 포장해 전한 것이다. 고마우면서도 너무 맞는 말이라 찌릿했다. 후배와 팀장 말이 머릿속에 한참을 떠다녔다. 친한 동료들은 나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표현의 차이일 뿐,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부족함이다.


늘 걱정이 많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 일이 무사히 지나가면 안심을 하면서 또 다른 고민을 급히 골라 괴롭힘을 시작한다. 연차가 쌓이면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무를 오래 한 실무형 인간이라 온갖 일을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일 욕심이 많은 편이다. 막내 생활을 오래 해 후배 부리는 법을 잘 모른다. 팀장이 모를 리 없다.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애들 좀 시켜"라고 말하던 팀장 말도 떠올랐다.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하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비추어 팀장과 후배 모두 좋은 동료임에 틀림없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다. 너무 잘 알기에 마주하기 싫을 뿐이다. 보완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쉽지 않기에 미루고 미룰 뿐이다. 레퍼런스 체크를 통해 단점과 반갑게 재회했다. 걱정하는 습관을 쉽게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조금 덜 걱정할 만큼 뭐든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 일을 다 떠맡으려는 욕심은 무모하고 무식한 짓이라는 것도 마음에 새기는 중이다. 연차에 직급에 맞게 주어진 역할이 명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가슴에 품고 실천할 일 남았다.


비단 단점이 이뿐일까. 이런저런 넘치는 단점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배와 후배가 전한 넘치는 칭찬과 예쁘게 포장된 단점을 잊지 않고 자주 마주해야겠다. 그리고 수시로 돌아봐야겠다. 오늘은 또 얼마만큼의 단점을 흘리고 다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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