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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12. 2023

속 터지는 팀장들이 할 말 다하는 방법

리더에게 필요한 대화스킬, '감정 조절로 시작하고 경청으로 마무리!'


십수 년 전 일개 팀원일 때 선배나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성격도 소심했고 시대 분위기도 일조했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며 스트레스를 합리화했다. 시대가 요즘과 판이하였으니 이해 못 할 일도 없었다. '그러려니!'가 일상이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뜬 거 같은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관리자가 되었다. 말 안 통하는 상사들에게 입 닫고 살았는데, 이제는 후배들에게 입을 뻥긋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했다. 또래 동료들은 낀 세대(X세대)의 비애라며, 술잔에 원망과 한탄을 가득 담아 비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못하는 직장인 신세다. 탄식만 하며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신입 시절 사수의 메신저에 보란 듯이 "일 잘하는 직원 방법 찾고, 일 못하는 직원 핑계 찾고"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설마… 나 보라고?' 뜨끔함이 가슴을 적셨다. 이 말을 십수 년 뒤 자발적으로 다시 꺼내 들다니. 이렇게 해서라도 '후배에게 할 말 하는 방법'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애들 눈치 보여서 참다가 암 걸리겠어."


최근 임원으로 승진한 선배의 말이다. '임원도 저런 말을 하는데, 나 따위가 뭐라고?'라는 생각에 난데없는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선배는 적당히 입을 닫고 무게감을 지키면 되는 임원, 나는 결코 입을 닫을 수 없는 팀장 나부랭이다.


관리자가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기 못하고 흔들리면 조직은 금이 간다. 조직에 앞서 상사부터 무너지는 경우도 목격했다. 의지 있는 관리자라면 시대에 맞는 생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선배처럼 눈치 보인다고 팀장이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를 줄여 이르는 말)을 해버리면 조직은 모래알이 된다.


과거 상사에게 말하기 전 야심차게 다섯 번 고민했다면, 후배에게는 열 번 고민하고 말을 꺼낸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고릿적에는 상사를 향해 '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라는 말을 썼다. 이제는 반대 상황이 되었다. 각성하고 살아남기 위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전략'을 세워보자.


하나, 명확함이 미덕인 시대


상사의 말에는 명확함을 담아야 한다. 질책인지, 격려인지, 칭찬인지 돌려 까기인지 등의 불명확함은 요즘 세대에게 통하지 않는다. 상사의 애매모호한 표현을 홀로 또는 동료들과 고민하던 암호해독의 시대는 끝났다.


업무 지시를 할 때 상사는 요점부터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일을 왜 이런 식으로 해. 다시 해 와!'는 더 이상 관리자의 말이 아니다. 일말의 방향성이라도 제시해야 시간뿐만 아니라 상대의 구시렁거림도 줄일 수 있다.


상사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면 샘플이라도 쥐여주어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팀원들에게 깔끔한 지침도 주지 않고 화부터 내면 '자기도 잘 모르니까 저러는구나'라며 무능한 상사 취급을 받는다.


업무 분장도 명확하게 선을 지켜야 한다. 과거처럼 눈에 띄는 사람에게 일을 슬쩍 던지던 시대는 진작에 막을 내렸다.


"전무님이 자료 준비하라는데 누가 할래?"


과장 시절, 함께 일했던 팀장은 이런 식으로 단톡방에 업무를 툭툭 던졌다. 피곤한 눈치 작전 시간이자, 불필요하고 불편한 감정 소모 시간이었다. 일을 맡기는 근거를 명확하게 대지 않으면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에 당황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면담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사와의 면담을 마쳤을 때, "도대체 뭐라는 거야?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거야?"라는 결론을 남기면 불통 상사로 찍힌다.


"나이도 있고, 일도 잘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거 다 안다."


진급자 발표날 팀장이 불러 어깨를 두드렸다. 속으로 '앗싸!'라고 외쳤는데, 팀장은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진급에 떨어졌고, 난 책임이 없어'라는 표현이었다. 말을 빙빙 돌리니 충격은 더욱더 컸다. 업무 성과, 업무 태도, 상황 등을 설명하고 올해 더 열심히 함께 달리자는 말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둘, 비난 금물의 시대


질책(꾸짖어 나무람)에 감정이 실리면 비난(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 된다. 상사가 비난을 시작하면 팀원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반감 게이지만 상승한다.


한 팀장은 팀원 보고서에서 오타를 발견하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와서 한글을 모르니? 저 머리로 어떻게 유학을 다녀왔지?"라고 소리쳤고, 한 선배에게는 "일 그따위로 하려면 때려치우고 나가서 배추 장사나 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리 시절, 팀원들 모두가 참석한 주간 회의 시간이었다. A 선배가 납품 단가 책정 실수로 팀장에게 깨졌다. 팀장은 화가 풀리지 않는지 과거 잘못까지 끄집어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A 선배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까요? 물어낼까요?"

"A가 하는 업무 다 B한테 인수인계해!"


난장판이 된 회의였다. 상사의 비난과 선배의 감정 조절 실패가 만나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초래했다. 선배는 다른 팀으로 옮겼다가 결국 퇴사했다. 비극의 시작은 과도한 비난이었다.


셋, 일대일 만남의 시대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할 때는 둘만의 공간에서 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비난' 사례처럼 공개 처형은 누구에게나 분노를 유발한다. 이 쉬운 논리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주간 업무 회의 시간에 업무 하나하나를 이 잡듯 체크하며 타깃에 당첨된 팀원을 무지막지하게 깨던 팀장이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우는 직원도 속출했고, 팀원들은 잘못 보다는 수치심을 더 크게 느꼈다.


다른 팀이 듣건 말건 팀원들을 자리로 불러 목청 높여 나무라던 팀장, 사사건건 '꼬우면 니가 팀장 하던가?'라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내뱉던 팀장도 있었다. 개인의 잘못은 당사자만 알면 되지 여기저기 떠벌릴 필요는 없다.


한 명에게만 하면 될 말을 모두 새겨들으라고 허공에 내지르면 결국 아무에게도 도달하지 않는 먼지가 된다. 심지어 상사의 화(火)에 기름 부은 당사자만 새겨듣지 않을 확률도 높다. 팀원들이 기억하는 건 당시의 불편한 공기와 짜증스러웠던 감정뿐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고 싶으면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일대일로 대응해야 효과적이다. 모두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이다. 물론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은 후 마주해야 한다.


넷, 들어야 하는 시대


신입 시절 불같은 성격의 팀장은 매 순간 팀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능력자였다. 한 번은 회의 시간에 팀장이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통해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답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잘못했습니다!"라고 소리쳤다(예기치 못한 행동에 웃음바다가 돼 위기를 모면했지만 끔찍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팀장이 멋지다고 느낀 건, 실컷 꾸짖은 다음 항상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마무리 멘트 때문이었다. 팀장이 오해한 내용이나 상황을 설명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래? 미안해. 그건 내가 잘못 알았네"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일을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를 말하면 직접 나서 해결해주곤 했다.


비굴한 '잘못했습니다!'에 대한 답변도 회의가 끝난 후 차근차근 설명하여 마무리했다. 팀원들은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경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팀장을 존경했다. 상사 꾸짖음의 마무리는 경청이 아닐까.


결국 앞서 언급한 모든 전략은 '감정조절'로 시작해 '경청'으로 마무리 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직장인 10명 중 9명, "직장생활에서 대화 기술 중요해"'라는 설문 결과가 있을 정도로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대화에 주도권이 있는 상사가 팀원들과 어떻게 소통의 물꼬를 트고,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며 대화를 이끌어가느냐가 건강한 조직을 꾸리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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