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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04. 2023

매일 마주하는 노인에게 느낀 특별한 감정

직장인에게 결핍된 단어는 '餘裕' 아닐까요?


역에서 집까지 도보로 약 15분 걸린다. 수시로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면 집 앞까지 5분 정도 소요되지만, 걷는 운동이라도 하겠다는 다짐을 적극 실천하는 중이다.


역과 집 중간 지점에 작은 빵집이 하나 있다. 말 그대로 상호명이 OO 빵집이다. 테이블도 밖에 있는 2인용 하나가 전부다.


테이블이 늘 비어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람이 보였다. 매일 지나는 비슷한 시간에 늘 같은 사람이 앉아 있으니 눈길이 갔다. 언제부턴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 바로 부러움이었다.


주인공은 60대 중후반 할아버지다. 내가 지날 때는 아이스커피를 반정도 남기고 의자에 기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법한 이 평범한 모습을 며칠간 보고 있으니 부러움이 밀려들었다.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길, 늘 경보하듯 걷는 내 모습과 상반되는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새벽 6시 10분 기상, 6시 40분에 집을 나선다. 까마득한 곳에 자리한 회사로 이직한 덕에 칼퇴근을 해도 여유는 없다. 퇴근 후 동네 빵집 앞을 지나는 시간은 대략 19시 45분 정도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어 속보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느긋한 걸음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그러는 와중에 한가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노인을 매일 만났다. 애써 외면하던 마음이 어느 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부럽니?'라고.


중3 딸내미 영어학원 끝나는 시간과 퇴근 시간이 맞아떨어지면 역에서 만나 함께 걷는다. 며칠 전 딸 걸으며 빵집 앞 노인을 마주했다. 할아버지가 부럽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진짜 여유로워 보이시네요? 혹시 빵집 주인 아닐까요?"

"그런가? 주인이면 더 부럽네."


얼마 전 팀회식을 했다. 후배 중 한 명이 적당한 직장만 있으면 지방에 내려가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일순간 여러 명이 동조했다. 더이상 교통지옥, 주택난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고. 점심 한 끼에 1만 5천원을 내면서 손을 떨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시절에는 도심을 벗어나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북적이는 곳을 피하게 되고, 소음보다는 무음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후배들 말을 들으면서 '사는 게 점점 더 퍽퍽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 직장인인 내게 낯선 단어가 된 지 오래다. 늘 심장이 쿵쾅이는 일상을 살기에, 내가 언제 여유를 느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유餘裕

1.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2.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서벽에 기상할 때부터 퇴근해 쓰러질 때까지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를 느껴본 적 없다. 늘 바쁘고 쫓기고 피곤하고 일상이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에 초초하기 그지없을 뿐.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어쩌면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 갇혀 당연한 듯 매일 결핍과 모자람, 분주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빵집 앞 여유로운 노인을 마주하며 부지불식간 마음에서 고갈된 여유로움을 떠올려 본다. 정말 여유가 사라진 것인지 반복되는 초조함에 잠시 가려진 건 아닌지 나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은 '여유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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