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을 좋아하지만, CCM만 듣습니다
신나는 클럽 음악도 평온한 CCM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내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라 아이들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아내의 의도 있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은 예배도 드리고, 성가대 활동도 하고, 어와나 올림픽(전국 기독교 체육대회), 합창대회, 수련회 등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난데없는 코로나19가 터져 자연스레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언제 교회에 다녔냐는 듯 가족의 일요일은 저마다의 일상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갑자기 중3 딸내미가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교회는 이제 머나먼 옛 일,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사를 와서 교회가 꽤 멀어졌는데도 딸아이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요"라고 했다. "죄 많이 지었어?"라고 농담 삼아 물었지만, 속으로는 '친구 만나러 가겠지'라고 생각했다.
함께 다니던 친구가 부모님 때문에 교회를 옮겼는데도 딸아이는 혼자 교회에 갔다. 그러면서 수시로 엄마를 꼬셨다. "엄마도 같이 가면 좋겠어요"라고. 아내는 "나중에…"라며 얼렁뚱땅 스리슬쩍 피했다. 다시 적응한 일요일에서 벗어나기 싫어했다. 그러다 집요한 딸아이에게 "내년부터 다닐게"하고 위기를 넘겼다.
내년(2023년)은 금방 찾아왔다. 아내는 약속을 지켰다. 딸아이는 한발 더 나아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생겨 서브 반주로 시작해 메인 반주까지 맡았다. 토요일마다 피아노를 연습하러 교회에 가고, 학교도 종종 지각하는 애가 새벽 기도회에도 나갔다.
지난 9월 딸내미가 다니는 교회 50주년 찬양대회가 열렸다. 반주를 맡은 딸에게 초대받아 두 시간 정도 어색한 표정으로 교회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이 90년대 좋아하던 가요만큼이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기독교 중고등학교에 다녔다. 믿음은 없었지만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3학년 문학 선생님과 친해져 오전 자율학습 시간에 진행하는 짧은 기도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여자애들하고 어울린다고 담임에게 찍혔던 시기라 내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준 선생님이 의지가 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의 방언 터진 모습에 놀라 기도회에 발길을 끊었지만, 복음성가만큼은 신나게 부르며 즐겼던 기억은 또렷하다.
불현듯 즐겁게 노래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살아났다. 찬양대회에서 선보이는 노래가 참 듣기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멜론에서 딸아이가 반주한 곡들부터 찾아 듣기 시작했다. 가사들은 좀 부담스럽지만 뭔가 죄가 씻기는 기분,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교회에서 들었던 CCM과 딸에게 추천받은 CCM을 모아 폴더를 따로 만들었다. 매일 수시로 듣고 있다.
잠이 막 들려고 하는 11시경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일찍 다니자', '살살 다니자' 말하는 대신 귀에 이어폰을 꽂고 CCM을 듣는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잠도 잘 온다. 매일 밤 옆방에서 통화하는 아들의 희미한 목소리도 음악에 묻어 버리고 잠을 청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아내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CCM 가수가 공연을 한다기에 따라갔다. 알고 보니 가수는 작곡가이자 유명한 목사였다. 설교를 듣고 공연을 즐기다 보니 한 시간 반이 금세 흘렀다. 콘서트를 즐긴 기분이었다.
'내가 토요일에 교회에 나가다니…'
스스로도 어울리지 않아 참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교회에 있는 동안 심박수가 훅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스마트 워치 기준, 평소 안정적일 때 심박수는 64~74 정도 왔다 갔다 한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에도 74 정도. (61~77까지 안정적 구간) 교회에서 재미 삼아 눌러본 측정에서 53이라는 숫자를 발견했다.
음악을 두고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불금에 종종 클럽에 간다. (댄스동우회 출신 직장인입니다) 학창 시절 즐겨 듣던 음악을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싸악 사라진다. 물론 심박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CCM을 들으면 땅이 깊은 줄 모르고 심박수가 내려간다. 극과 극의 의미 있는 경험이다.
전날 클럽에 함께 다녀온 친구에게 주말에 교회에 갔다고 말했다.
"어제는 클럽에서 춤추고, 오늘은 교회라니. 니 의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
클럽 음악도 좋고, 춤도 좋고, CCM도 좋다. 음악은 사람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평소에는 매일 CCM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달랜다. 분노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기 좋은 음악이다. 그리고 불금에서 가끔 클럽을 찾아 음악과 춤으로 스트레스를 날린다.
"이 정도면 아빠도 이제 교회 나오셔야 되는 거 아녜요?"
"아빠는 아직 일요일에는 쉬고 싶어."
CCM은 좋지만 교회는 안 다닌다. "저도 교회 다니고 싶어요" 최근에는 아들까지 갑자기 교회에 나간다. 온 가족이 원하지만, 나는 일요일 오전의 휴식을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CCM은 여전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