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Oct 12. 2023

그만둔다고 하길 바랐는데... 막나가던 후배의 반전

[직장인 OTT] 영화 <엘리멘탈> 인간관계를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지혜


처한 환경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영화 <엘리멘탈>을 보던 누나는 대번 "이거 이민자 얘기인가 보네?"라고 말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 물과 불을 보며 사회생활과 직장인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입사 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낯선 곳에서 상극인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기에 당연한 반응 아니었을까 싶다.


직장에서 물과 불같은 상대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무지갯빛 인간들에게 시달렸다. 변함없이 치가 떨리는 갑의 관계에 있는 이, 화살 같은 말을 수시로 내뱉는 선배, 성격이 불 같은 상사 때문에 심장 벌렁거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하우를 습득했다. 불편 유발자들을 적당히 피하고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애썼다. 버티기 위해 조금씩 터득한 기술이자 발버둥이다.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한계에 다다랐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흘러 관리자(팀장)가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힘들다고 팀원들을 무작정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직무 유기이자 무관심, 무기력, 무능하다는 타이틀 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노력하고 부딪힐수록 피로와 스트레스는 겹겹이 쌓였다. 특히 요즘 세대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극도의 감정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루하루 배우고 있다. 지칠 때마다 조금씩 마음에 벽이 생기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인 성격에 모두가 맞출 수 없다. 모두의 성격에 개인이 무조건 따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개개인을 뭉뚱그려 한 사람 대하듯 할 수도 없다. 군대에서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각개전투라는 용어를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깨닫는 중이다. 월급 조금 더 받는 상사의 무게가 아닐까 싶다.


성급한 판단이 짓는 감정의 지옥

▲ 우리는 보통 불과 물이 긍정적으로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과장 시절 급한 일 때문에 퇴근 후 관련 업무 담당자인 후배에게 전화했다. 팀장과 임원 보고에 필요한 내용을 이것저것 물었다. 후배는 시종일관 "제가 어떻게 다 알아요?" 비아냥거리고 한숨 쉬며 귀찮아했다.


다음날 후배에게 전날 태도에 대해 한소리했다. 후배는 오히려 자기한테 악감정 있냐고 어이없어했다. 입사 10년 만에 가장 많이 화가 났던 날이다. 서로 어긋난 감정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관리자가 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일단 리더 교육을 받을 때 강사가 강조한 "관리자에게는 감정 조절 능력도 실력입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참을인( 忍) 세 개를 마음에 품고 후배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사전에 리더 선배들에게 자문도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다음 수시로 치미는 분노의 감정을 최대한 걷어냈다. 불필요한 감정 제어를 위해 반드시 전해야 할 말만 메모했다.


문제점을 객관화해 필터링하고 또 필터링해 사족 없이 팩트만 전했다. 좋은 말로 여러 번 주의를 줘도 고쳐지지 않는 태도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후배의 매사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고, 근무 태도에도 불량한 부분이 많았다. 팩트를 전하면서 마음속으로 '분명 난리 치면서 그만둔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많이 지쳐서 그만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후배는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주말 동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면담을 마쳤다. 차주 월요일에 예상과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후배는 대부분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다. 첫 사회생활이고 그동안 이런 말을 해준 사람 없어 잘 몰랐다며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분노, 흥분, 어이없음 등 혼자 감정의 지옥에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냉랭한 감정이 일순간 녹아내렸다.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해 보지도 않고 영화 속 불처럼 '물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어'라고 결론 내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지레짐작보다 선행해야 할 이해와 노력

▲ 영화 '엘리멘탈' 속 불과 물 불과 물은 이해와 노력을 통해 서로의 성질을 변화시킨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멘탈> 속 물과 불의 사랑에 대해 초반부터 비극적 결말을 예상했다. 어느 한쪽이 소멸하며 영화가 끝날 거라 새드 엔딩을 지레짐작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간관계에서 늘 손해를 보는 쪽이 있고, 그 사람이 늘 나라고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 착각이었던 것 같다.


후배와의 일은 영화 <엘리멘탈>에서 물과 불이 서로의 성질을 변화시킨 것과 같은 희망찬 경험이었다. 이후 후배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 속 후배의 변화된 모습, 영화에서 예상 못한 물과 불의 해피엔딩을 맛보면서 '는 인간관계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간 문제없는 곳은 없다.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겪어본 이는 누구나 십분 공감하지 않을까. 사실 알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속 불, 주인공 엠버의 물에 대한 선입견과 못마땅한 사람에 대한 감정조절 실패는 내가 과장 시절 후배에게 보였던 모습과 닮았다. 분노에 사로잡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11살이나 어린 후배는 퇴근 시간 이후 전화해 꼬치꼬치 캐묻는 선배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초년생 시절의 나도 후배와 똑같은 마음이었으면서도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작은 이해와 노력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었다.


관리자가 된 후 후배를 대할 때 이해와 노력을 조금씩 더 가미하려 노력한다. 결과는 대부분 예상보다 긍정적이다. 상황과 사람에 대한 지레짐작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당연함에 쉽게 지배당하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백만 가지지만 난 널 사랑해."

"겁도 없이 너에게 뛰어들었고 우린 무지개를 만들었다."


영화 속 따듯한 명대사를 아래와 같이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에게 안 맞는 사람은 백만 명이지만 난 널 이해하려고 노력해."

"겁도 없이 직장에 뛰어들었으니 우린 무지 노력해야 한다."


영화 <엘리멘탈> 속 불과 물이 보여준 차이와 거부, 노력과 화합의 메시지는 작지만 큰 세상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노력과 화합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사람 간 유발하는 관계에서의 시련을 어느 정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