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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19. 2023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

[직장인 OTT] JTBC <킹더랜드>, 진짜 스마일을 찾아야 할 때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킹더랜드>에는 키스신이 자주 등장한다. 로맨스를 강조한 드라마라는 말이다. 백마 탄 왕자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다. 로맨스에 감동하는 감성도 고갈됐고,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열광할 나이도 아니다. 비현실적인 핑크빛 사랑보다 잿빛 현실이 더 눈에 들어오는 현실적인 직장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더더욱 눈길이 갔다. 호텔리어는 아니었지만, 동종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한 경험이 있다. 이들의 고충을 어느 정도는 알기에 달콤한 해피엔딩보다 잔혹한 현실이 더욱더 마음에 와닿았다.


주인공 천사랑(윤아)은 '호텔리어로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국 부잣집 하녀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해도 결국은 주인일 수 없는 일꾼일 뿐이며 원하든 원치 않든 종국에는 직장을 떠나야 한다.


특히 드라마 속 오너와 일개 종업원의 처지는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천사랑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지만, 자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수시로 깨닫는다. 이는 비단 그녀만의 모습이 아닌 모든 직장인의 거울이었다.


억지로 웃는 줄도 몰랐습니다

▲ 호텔리어 천사랑이 오너의 집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JTBC


"억지로 안 웃어도 되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특권인데. 난 맨날 웃어요. 아파도 웃고 슬퍼도 웃고."


주인공 천사랑이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본부장 구원(이준호)이 부럽다며 한 말이다. 마음에 들어와 콕 박혔지만, 너무 익숙해 그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우울증을 겪는 것을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이라고 한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오사카 쇼인 여자 대학의 나츠메 마코토 교수가 제안한 정신 질환으로, 장기간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말미암아 우울증과 신체 질환을 발전시키는 증후군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출근을 허락받은 순간부터 스마일 마스크를 부여받았다. 아픈 기억이 많다. 대리 시절 폐렴 진단을 받고 조퇴하는 내게 팀장은 "술을 덜 마셔서 그래"라고 말했다. 접대를 자주 하는 부서에서 일했기에 술자리가 잦았다. 접대 자리에서도 늘 웃어야 했고, 팀장의 이런 막말에도 억지 미소 지으며 "죄송합니다"라고 응해야 했다. 천사랑의 말처럼 아파도 웃어야 하는 죄인이었다.


주말에 등산을 해도, 주말에 출근을 시켜도, 불필요한 야근을 밥 먹듯 시켜도, 회식과 술을 강요해도 웃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게 바뀌었지만, 그때는 윗세대 모두가 한통속이었기에 티 내지 못했다. 억지로 웃었다기보다는 그저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이런 모습은 갑을 관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갑 중의 갑이 점심 약속 시간에 2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당시 함께 일했던 팀장도, 나도 웃으며 맞았던 기억. 최악의 억지웃음이었다.


목숨을 거는 줄도 몰랐습니다


드라마에서 회장 아들 구원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며 힘들어하는 천사랑에게 "회사 같은 거에 목숨 걸지 말고"라고 말한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자꾸 목숨 걸게 만드네요. 저 같은 일개 사원한테는 하고 안 하고가 선택사항이 아니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회사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대가 바뀌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반전이 있다.


이는 단지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에 의한 잠깐의 퇴사일뿐이다. 결국 이들은 적당히 입맛에 맞는 직장을 다시 찾고, 뾰족한 수 없는 현실에 적당히 목숨 걸게 되는 때를 맞이할 것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60세 미만 대한민국 취업자 수는 2020년 2690만 4천 명, 2021년 2727만 3천 명, 2022년 2808만 9천 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직장인은 끊임없이 취업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저희야 그냥 그만두면 되는데, 팀장님은 가족도 있고 그래서 쉽게 못 그만두시니까 안타까워요."


일이 많아 수시로 야근을 할 때도, 사람 때문에 힘겨울 때도 많다. 이런 내가 안타깝다며 MZ세대 팀원이 해준 나름의 위로였다. 마음은 고맙게 받았지만, 제대로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현실의 한계를 들킨 기분이랄까.


매일 회사를 그만두는 상상을 하며 직장에 다닌다. 하지만 일개 직장인이자 딸린 식구 많은 가장에게는 '퇴사하고 안 하고'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억지로 웃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하며 회사에 다녀야 할까. 후배의 위로이자 팩폭을 가슴에 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녀야 할까. 이에 대한 힌트 또한 드라마 속 주인공 천사랑이 내어주었다.


내 일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

▲ 주인공 천사랑은 자신의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일한다. ⓒJTBC


회사에서 의미를 찾으며 일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하루는 순삭이다. 뭘 하는지도 모르는 수명 업무에 시달릴 때도 많다. 일에서 의미를 찾을 시간적 심적 여유는 희박하다.


꿈에 그리던 회사에 입사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넋두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치?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대부분이 동조했다.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천사랑은 달랐다. 그녀는 모든 호텔리어가 꿈꾸는 곳에서 일하지만, 서빙, 테이블보 가는 일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모두가 느끼는 시시한 일을 나만의 특별함으로 바꾸는 마법이었다.


천사랑은 정성스럽게 테이블 보를 펼치며 자신의 정성을 손님을 위해 펼친다고 말한다. 본부장은 '한번 쓰고 치울 테이블보인데 대충 갈면 안 되나'라고 응한다.


"그런 의미라도 없으면 제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해도 상관없는 허드렛일이에요.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죠."


또 천사랑은 은퇴한 오페라 가수에게 프리마돈나 시절의 노래로 모닝콜을 해주며 감동을 선사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며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아냈다.


사회초년생 시절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신문을 오려 붙이며 스크랩을 했다. 오후에는 수십 개의 종이 신문을 넘기며 동종업계 광고 리스트를 엑셀에 정리했다. 모든 신문을 다 넘기고 나면 손끝은 새카매지고 속눈썹에는 하얀 종이 먼지가 쌓였다. 속으로는 허탈함과 짜증이 밀려들었지만, (막내 담당이었기에)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드렛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으니, 마음을 바꾸었다. 이 보수적인 집단에서 사원(대리)이 업무시간에 당당하게 신문을 볼 수 있는 특권. 세상 공부를 남들보다 더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핫이슈인 1면 기사도 매일 접하고, 틈틈이 사설도 읽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만화도 봤다. 업무를 가장한 유희라고 여겼다.

   

모든 일에 마음을 담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 온갖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사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에 초라하기 그지없을 때가 더 많다. 초라함을 조금이나마 중화하기 위해 내 일을 누구나 해도 상관없는 허드렛일이 아닌 나만의 특별함으로 만들어야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미소도 배어 나오지 않을까.


'사바이사바이'를 기억하며


"태국에 '사바이사바이'라는 말이 있대. 너무 급하게 살지 말고 너무 정신없이 다니지 말고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편안하게."


드라마 속 대사다. 태국어인 '사바이사바이'는 우리나라 말로 '편안하게, 행복하게'라는 뜻이다. 현대인 모두에게 전하는 따듯하고도 따끔한 조언 아닐까.


직장인의 삶은 급하고 정신없는 상태 그 자체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자기 일에서 일말의 의미라도 찾았으면 한다. 그로 인해 입가에 가식이 아닌 진짜 웃음을 찾는 일이 보다 많아졌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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