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우선하는 배려와 이해가 사회의 품격을 만듭니다
지하철 불편한 장면 중 하나, 일반인이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임산부 배지를 지닌 사람이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는 모습이 보일 때입니다. 배지를 보고 바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을 보느라, 자느라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좌석에 앉은 분에게 자신이 임산부임을 알리는 분도 있지만, 웬만하면 그 앞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한 후부터는 임산부가 비임산부 때문에 앉지 못할 때,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임산부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웬만하면 미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죠. 가끔 멀리서 그런 상황을 목격하면 서울교통공사에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출근길 의외의 상황을 목격하면서 제 생각에 작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출근할 때 한 역에서 임산부 부부가 승차했습니다. 임산부석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계시다가 배지를 보고 바로 일어나셨습니다. 임산부가 자리에 앉았다 약 이십 분 후 내렸고, 남편만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7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빈자리를 확인하고 임산부석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내린 임산부 남편분이 이를 제지했습니다. 아예 자리로 다가설 수 없게 팔로 봉을 잡고 할아버지 몸을 밀어냈습니다.
"여기 임산부석입니다."
"아무도 없는데 앉으면 안 돼?"
"할아버지가 여기 앉아 있으면 임산부가 일어나시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하철 양 끝에 노약자석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서 앉으세요."
출근길 만원 지하철,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계속 앉으려고 했고, 남자분은 계속 '임산부석'임을 강조했습니다. 고성이 오간 건 아니지만, 노인과 젊은이의 대치도 대화 내용도 불편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의 힘과 말에 밀려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노인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젊은이의 표정에는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임산부석을 탐하는 사람의 모습에만 불편함을 느꼈는데, 또 다른 모습의 불편함이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싶다는 마음보다, 임산부석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서울 지하철에 처음 도입돼(2015년 핑크색 도입) 임산부가 눈치 보지 않고 바로 앉도록 만든 좌석입니다. 저출산 속에서 '임산부 먼저'라는 사회적 신호를 분명히 하려는 장치였습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교통약자 정의와 시설 마련 의무 등을 언급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두게 하거나, 비임산부의 착석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서울시는 임산부석에 일반 승객이 앉는 것을 강제로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공공 에티켓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강제 조치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는 시민들의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산부석과 비슷한 '노약자석'(지금은 교통약자석)은 1980년부터 운영됐습니다. 장애인·고령자·임산부·영유아 동반 보호자가 오면 즉시 양보하는 문화가 전제입니다.
임산부석과 교통약자석은 모두 권고에 기반해 운영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해석 차이로 오해나 다툼이 생기곤 합니다. 어떤 이는 '임산부석은 무조건 비워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사람 없으면 앉았다가 양보하면 된다'라고 여깁니다. 일부 시민은 안내 방송 등 시스템 도입이 '배려를 강요하는 것 같다'라며 불만을 표하는 반면, 임산부가 직접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배려가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임신한 직장동료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한 할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노약자석이 있다고 노약자가 일반석에 앉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역시 강제 조항이 아니니까요.
대학생 시절 일반석에 앉아서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던 중에 난데없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제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일어섰지만, 이는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임산부도, 어르신도 모두 보호받아야 할 교통약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하철에서는 한쪽을 지키려다 다른 쪽을 밀어내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임산부석, 교통 노약자석은 지금도, 앞으로도 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영역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장치적 개선, 그리고 예의와 문화 아닐까요.
지하철 좌석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다리이자 사회의 품격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찾아온 이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은 사소한 자리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배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임산부들이 스스로 존재를 알리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장치적 개선도 함께 필요합니다.
실제로 부산 도시철도는 2017년 1~4호선 전동차에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임산부 배려석 알리미 서비스 '핑크라이트'를 도입했습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임산부석 표시기에 불이 켜지거나 안내 음성이 나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장치입니다. 광주시는 2022년 7월부터 임산부석에 승객이 앉으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라는 음성이 나오는 시스템을 적용했고, 대전시 역시 '위드 베이비'라는 알림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 역시 비슷한 도입을 논의한 적은 있지만, 예산 문제로 현재까지 시행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예산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하거나,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장치와 캠페인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필요한 것은 제도와 장치의 뒷받침,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예의와 문화입니다. 임산부석과 교통약자석은 강제가 아니라 양보와 이해, 상호 존중으로 운영돼야 하고,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이러한 원칙을 반복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이런 시민들의 노력이 확산한다면, 출근길 임산부석에서 벌어진 두 남자의 실랑이 같은 불필요한 세대 간 갈등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 만큼, 서로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리를 내어주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처지를 존중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약속입니다. 결국 이 약속을 지켜가는 힘은 법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