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장인의 각양각색 역대급 휴가 활용법

10년 전 세웠다는 버킷리스트부터 효도, 육아, 눈썹문신까지

by 이드id


"일부러 결혼식 일정을 추석 직전으로 잡았어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연휴까지, 언제 이렇게 쉬겠어요?"


30대 중반의 후배는 인생 이벤트를 연휴에 맞췄습니다. 철저한 계획 아래 결혼식 휴가에 역대급 황금연휴까지 붙인 인생의 휴가. 직장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호사가 아닐까요.


2025년 추석 연휴는 최장 열흘. 많은 회사가 10일을 공동 연차로 지정하면서, 직장인들에게는 오랜만에 긴 쉼표가 주어졌습니다. 항공권과 패키지 여행 수요가 단거리, 장거리 모두 눈에 띄게 늘면서 여행 업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마음 역시 긴 여유에 대한 설렘으로 벌써 들썩이고 있지요.


하지만 오랜만에 주어진 긴 휴식을 어떻게 채울지, 직장인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입니다. 여름 휴가를 제외하고 이렇게 오래 쉴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연휴가 끝난 뒤 찾아올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쉴 때도 전략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디든 떠난다, '날 잡은' 직장인들의 여행

DSC03939.JPG


여행 업계의 발표를 보면 추석 기간 해외여행 예약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75%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 글로벌 여행 플랫폼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 2명 중 1명은 이번 추석 여행지로 일본, 동남아 등 단거리 해외 여행지를 선호한다고 답했고, 일본이 43.1%로 가장 높았습니다.


40대 초반의 남자 후배는 일본 삿포로로 떠날 예정입니다.


"1월에 예약했는데도 비수기 때보다 2배는 비싸요. 아깝지 않게 8일간 실컷 놀다 와야죠."


10월 10일에는 연차를 쓰고 여독은 주말에 풀면 된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2025년 추석 연휴를 염두하고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는 후배도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곳 아니야?"

"10년 전에 기획하고, 1년 전에 예약했어요. 10일 풀로 갑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후배는 진작 2025년이 황금연휴라는 사실을 알고, 그때 이미 버킷리스트에 마다가스카르 여행을 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다가스카르 국내선부터 예약하고, 역으로 이 여행을 퍼즐처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10일 간의 여행 일정을 엑셀로 정리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SGI지속성장연구소가 진행한 '추석 연휴의 귀성 계획' 조사 결과, 귀성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16.4%, 30대 29.3%, 40대 39.7%, 50대 이상 60.3%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2030 젊은 층이 명절에 고향이나 부모님 댁에 내려가기 싫은 이유는 '취업 언제?', '결혼 언제?'라는 주변의 잔소리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죠.


하지만 서울에서 근무하는 입사 2년 차 20대 후반의 후배는 이번 연휴를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과 보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재수도 하고, 백수 기간도 길었는데, 올해는 엄마 밥 실컷 먹고 효도 좀 해보려고요."


근교 여행도 다니면서 오랜만에 부모님과 긴 시간을 보낸다는 후배 모습에 감동했지만, 부작용도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여자 친구가 '어떻게 명절에 한 번도 안 올라올 수 있냐'라고 해서 다툼이 좀 있었다고. 후배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을 전했습니다.


"효도는 미루는 게 아니야.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지."


집중 육아 맞벌이 부부는 벌써 '긴장'


반대로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에게는 긴 연휴가 마냥 달갑지 만은 않습니다.


"아들 둘이랑 10일간 같이 있어야 해요. 벌써 긴장되네요."


후배는 매일 아이 둘을 회사 어린이집에 맡기지만, 연휴 동안에는 온종일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열흘 간의 육아 전쟁도 맞벌이 부부가 감당해야 할 현실입니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고, 고향 방문조차 어린아이들과 함께라면 체력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긴 연휴가 누구에게는 꿈 같은 휴식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는 끝없는 육아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온종일 아이와 함께하는 일이 버겁고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겠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기회이기도 합니다. 힘든 육아 속에서도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가족 간 관계를 깊게 다질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 속의 여론'에서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라는 응답이 약 60%로 나타났습니다. 40대(59%)와 50대(56%)에서도 절반 이상이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미혼(62%)과 기혼(58%) 모두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런 변화는 중년 직장인의 연휴 활용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자녀 뒷바라지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 계발을 선택합니다.


"장모님 칠순이라 강원도 쪽으로 여행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40대 후반의 한 공무원은 장모님의 생신을 맞아 가족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무더위가 물러간 시원한 가을, 오랜만에 떠나는 가족 여행이 기대된다고 전했습니다.


2044년 추석도 '10일 연휴'가 있다는데... 명절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차례 안 지낸지는 몇 년 됐고, 아들이 연휴 기간에 전역이라 축하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IT 기업에 다니는 50대 초반의 한 임원은 전역하는 아들을 맞이하지만, 10월에 잡힌 고3 수험생 자녀 대학 면접 준비로 '놀러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라고 바쁜 일정을 설명했습니다.


저 역시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명절에는 부모님 계신 납골당에서 공동 차례를 지냅니다. 이번 연휴에는 가족과 근교 리조트 여행, 서해 드라이브를 계획했고, 밀린 드라마와 영화를 보거나 출간 준비를 하며 저만의 시간을 채울 예정입니다.


긴 연휴 기간에는 운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평소 다니는 복싱장도 휴관이니,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연휴 동안 뱃살이 늘어날 게 뻔합니다. 폭식을 자제하고 저녁에는 반려견과 산책이라도 자주 나갈 계획입니다.


늘 하던 대로 부모님댁에 차례를 지내러 내려가는 친구도 있고, 브런치북 공모전을 준비한다는 직장인도 있습니다. 한 동료는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눈썹 문신 예약을 했다고 했습니다. 중년 직장인들에게 긴 연휴는 '쉼'의 시간인 동시에 가족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챙기는 소중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명절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 만큼 중년의 휴일 풍경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긴 연휴를 맞이한 직장인들의 선택은 각양각색입니다. 평생 꿈꾸던 여행지를 찾고, 부모님과 긴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육아에 시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루었던 꿈을 꺼내 보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깨닫습니다. 직장인에게 주말이나 연휴의 빈둥거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쉼이라는 '디톡스'가 된다는 사실을요. 4년 전 이직 후 4일 이상 휴가를 간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 이렇게 오랜 기간 쉰 적이 없기에 매우 기대가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요즘 명절 풍경은 다릅니다. 부모님이 자녀 집으로 역귀성 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나만의 시간'을 중시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긴 연휴를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독소를 빼내는 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희석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그것이 진짜 휴식이 아닐까요.


중요한 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느냐'일 것입니다. 연휴가 끝난 뒤 다시 일터에 나간다는 괴로움과 허무함이 아닌 '이번엔 제대로 충전했다'라는 나만의 만족감과 완벽함을 남길 수 있는 여유, 긴 연휴의 진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2044년 추석에도 '10일 연휴'가 있다고 합니다. 은퇴한 후겠지만, 그때는 어떤 명절 문화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images.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만원 출근길, 임산부석을 두고 벌어진 두 남자의 실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