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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 건너뛰며 감상하는 이유

몰입 방해하는 예능인들의 불필요한 '말' 때문에 감정의 흐름이 끊깁니다

by 이드id


요즘 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올드 K팝을 좋아하는 고2 딸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감상하곤 합니다. 바로 SBS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입니다. 요란한 사운드 대신 젊은 참가자들이 감성에 집중하는 발라드 무대가 지친 하루에 위로를 전해줍니다. 발라드라는 차분한 음악으로 숨을 고르는 여유를 허락해 주는 프로그램이라 매주 놓치지 않고 시청했습니다.


특히 이예지, 최은빈의 무대는 첫 라운드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채우고, 과장하지 않은 감정과 각자의 사연이 더해지며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출연자 대부분이 경쟁보다 음악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준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청자들도 진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예능인의 말, 말, 말


하지만, 이 좋은 프로그램에서 감동이 뚝뚝 끊기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참가자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 감정을 잡는 순간, 혹은 노래가 끝나 여운이 남아 있을 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패널들의 멘트 때문입니다. 특히 예능인 출신 패널들의 과도한 리액션과 잦은 농담은 감정의 흐름을 끊어버렸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던 저의 몰입을 흔들었습니다.


"친구들이 패널들 때문에 안 본대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 말입니다. 딸의 친구들은 참가자들이 젊고 노래도 좋은데, 패널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유튜브에서 패널 멘트가 빠진 편집본을 찾아본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출연자들이 쌓아 올린 무대의 긴장과 여운이 갑작스러운 농담과 전문성 없는 멘트로 가볍게 흩어지는 순간을 몇 차례 경험했습니다.


TOP6를 뽑는 첫 무대가 끝난 뒤, 떨리는 얼굴로 서 있던 참가자 앞에서 한 예능인은 자신이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며 박장대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극도로 긴장한 참가자의 감정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또 다른 예능인은 한 출연자에게 "노래는 잘하는데 좀 무난하다. 인상적이지 않다"라는 평가를 내렸고, 직후 음악 전문 패널은 "뚝심 있게 자신을 표현한 놀라운 무대였다"라며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실력 있는 가수나 작곡가 출신 패널들은 대체로 무대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호흡, 감정선, 음색의 변화, 고음뿐 아니라 저음에서의 강점 등 음악적 언어로 무대를 분석하려고 합니다. 반면 일부 예능인 패널들의 멘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감탄사 중심의 언어, 혹은 분위기를 가볍게 소비하는 멘트들이 주를 이룹니다. 즉흥적이고 예능적 성격이 강해 전문가의 평가와 충돌할 때도 많습니다. 전문가의 평가와 상반된 예능인의 의견이 예능 프로그램의 요소일지는 몰라도 이 과정에서 시청자의 몰입도는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건너뛰기를 하며 프로그램을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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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적 재미가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균형이 아닐까요.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음악보다 말이 더 크게 부각되는 순간, 프로그램의 본질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발라드'의 패널 구성이 음악인 반, 예능인 반으로 구성되면서 무대를 감상하는 시간보다 말을 소비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제작진은 리액션으로 감정을 설명하고, 패널들은 각자의 존재감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사이 시청자가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권리는 점점 사라져 버립니다.


음악은 설명을 덜어낼수록 강해지는 장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발라드'를 처음 시청했을 때, 아무 설명도 없이 노래만 들었는데도 눈물이 흐르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잔잔한 여백이 생길 때마다 예능인들의 멘트가 끼어들면, 감정은 쌓이지 않고 사라집니다.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쏟아낸 참가자에게 "나쁜 친구들 사귀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고!"라는 농담 섞인 멘트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굳이 감정을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알아서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웃음 섞인 설명이 아니라, 감동을 조금 더 만끽할 수 약간의 침묵이 아닐까요.


말을 줄이면, 음악이 더 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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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난 직후에는 전문가의 평가를 먼저 듣고 싶어지는 게 시청자의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예능인 패널들도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노래의 맥락을 흔드는 섣부른 발언이 무대 직후에 반복되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참가자들의 노래는 매 회마다 감동적이고, 과거 음반을 낸 적 있는 패널석 예능인들보다 음악적 재능도 뛰어납니다. 이러한 점을 조금 더 인지하고 누구보다 간절하고 절실한 참가자들의 감정, 시청자들의 감정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OOO 씨 빼고 다 누르셨습니다."

"아, 이런. 언제 또 다 눌렀어."


6위를 차지해 탈락 위기에 놓인 한 참가자를 세워두고, 예능인 패널들이 깔깔거리며 나눈 대화입니다. 혼신을 다한 참가자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발라드' 같은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의 음악성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거창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패널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말의 '양'이 아니라 '결'을 조용히 조절하는 일, 음악의 여백과 감정선이 먼저 흐르도록 배려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노래도 아주 좋고, 출연자들 실력도 이미 충분히 훌륭합니다. 이제 남은 건 그 감동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조금의 침묵입니다. 불필요한 말을 줄이면, 음악은 더 잘 들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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