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막은 사연에 떠오른 당근 거래자들

물건 정리를 넘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정리해 준 플랫폼

by 이드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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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 덕분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최근 접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시민이 600만 원을 급히 찾느라 거래 시간에 늦었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분증 도용, 경찰서, 은행 같은 단어가 반복되자 상대는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잠시 뒤 상황을 파악한 그는 즉시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챘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바로 현직 경찰관이었거든요.


이 뉴스를 접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났습니다. 중고거래과 보이스피싱, 경찰관까지. 매우 극적이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더불어 지난 6년간 중고거래를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4천 원부터 82만 원까지 다양한 모습이 보이는 순간


중고거래 앱을 내려받은 건 2019년입니다. 첫 거래는 허리에 맞지 않는 싱글 매트리스였습니다. 다른 매트리스를 주문했기에 빨리 치우고 싶은 마음에 거의 새 제품임에도 단돈 3만 원에 올렸죠.


"제가 차가 없는데, 매트리스가 택시에 들어갈까요?"

"안 들어갈 텐데... 갖다드릴게요."


도착했더니 한 젊은 여성분이 엘리베이터가 없다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다른 차가 지나가면 차를 당장 빼줘야 하는 좁은 골목이라 뛰다시피 5층까지 매트리스를 배송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허리를 붙잡고 앉아 '내가 뭐 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인생 첫 중고 거래였죠.


점점 중고거래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안 쓰는 텐트, 운동 기구, 아이들 책 같은 물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 100여 건의 거래를 하면서 흥미로운 점은 가격과 구매자의 반응이습니다. 스마트폰 거래도 자주 하는 편인데, 82만 원짜리 스마트폰 구매자는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가져갔습니다. 전원만 켜보고 "깨끗하네요" 하고 스마트폰 거래가 끝난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최근 옷장 정리를 하면서 여러 벌 올린 4천 원짜리 브랜드 옷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거의 새 옷이고, 사이즈를 상세히 적었는데, "문고리 거래 가능하면 입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상태를 확인하고 입금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와서 옷을 확인하고 조용히 돌아간 분도 있었습니다. 첫 불발 경험이었죠.


저렴한 물건 앞에서 오히려 더 꼼꼼해지는 사람들의 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몇십만 원짜리는 바로 지르면서도, 몇천 원 앞에서는 한참을 망설일 때가 있거든요. 가격이 아니라 '이 선택이 정말 맞는가'를 따져보는 순간들이겠죠. 중고거래에서는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인간적인 면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마주한 각양각색의 경험


작은 중고 거래가 이웃 관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번은 딸아이 롱패딩을 판매하려고 공동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구매자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날 처음 인사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 마을버스 등에서 마주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거래는 끝났지만, 낯선 사람이 이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죠. 이런 작은 연결이 중고거래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인지도 모릅니다.


난감했던 순간도 있습니다. 아이폰을 판매할 때입니다. 애플케어 이관 때문에 처음 본 사람과 버거킹에서 20분 넘게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고2 아들 줄 거라는 상대의 말에 저도 고2 딸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기분 좋은 거래였습니다"라는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반면, 새 비데를 판매했는데, 구매자가 "작동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환불해 주겠다고 했더니, '수고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라는 답변이 왔습니다. 결국은 환불하지 않고 자기가 AS를 받겠다고 했죠. 불량이라면서도 환불을 안 한다고 하니, 작동이 안 된다는 말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료 나눔에서 사람들 태도는 또 다릅니다. 전집 세트부터 가구까지 나눔으로 올리면 많은 분에게 연락이 옵니다. 가격이 없으니, 의심이 적고 결정도 빨랐습니다. 순식간에 용달차를 끌고 와 김치냉장고, 옷장, 침대를 싣고 바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참 담백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웃 간 돈독했던 관계가 시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속 앱이 새로운 공동체를 다시 형성하고 있죠. 중고거래 앱은 단순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동네의 낯선 사람들이 서로 간 신뢰를 쌓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무료 나눔 앞에서 나타나는 신속함과 친절함, 후기로 이어지는 평판,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더 신중해지는 태도 모두가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편리한 플랫폼이 기술력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중고거래, 결국 사람을 배우는 시간


중고거래 앱은 물건을 사고파는 마켓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드러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친절한 사람, 예민한 사람, 신중한 사람, 의심이 많은 사람, 사적인 사연을 털어놓는 사람,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람, 무료 나눔에 작은 선물을 건네는 사람. 심지어 보이스피싱을 막은 사람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형편이 어려운데, 좋은 책을 나눔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며 과자를 건넨 분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물건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물려주거나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러웠지만,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그런 관계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중고거래앱에서의 '나눔 문화'는 잊혔던 이웃의 정을 되살리는 새로운 방식의 연대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고 거래는 단순히 개인 간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실험장이기도 합니다. 후기와 온도, 반복 거래를 통해 축적되는 신뢰는 플랫폼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이웃 관계로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지역 공동체에서 사라졌던 낯선 사람을 신뢰할 근거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셈이죠.


지금까지 중고거래를 하며 기억에 남는 건 떠나보낸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물건을 매개로 스쳐 간 사람들의 얼굴, 말투, 태도, 작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중고거래 앱은 내 집 안의 물건만 정리해 준 것이 아니라 내 근처에 사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해 준 플랫폼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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