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시작한 줄도 몰랐다는 아들의 뼈아픈 말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던 축제, 아낌없이 환호할 권리가 사라진 기분

by 이드id


"아빠, 동계올림픽 시작한 거 알았어요?"

"한다고는 들었는데... 벌써 시작했어?"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개막한 지 며칠 뒤, 고등학생 아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예년 같으면 포털 메인 화면에 개막식 장면이 걸리고, 회사에서도 경기 이야기가 오갔을 텐데 이번에는 조용했습니다. D-day를 알리는 카운트다운도, 응원 광고도, 거리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올림픽은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보이지 않는 축제'같은 느낌입니다.


자막으로 마주한 역사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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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계올림픽은 JTBC가 국내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습니다. 스포츠 경기 중계권은 상업적인 영역이지만, 이번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이면에 숨겨진 독점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TV 채널을 돌려가며 자기가 보고 싶은 종목을 골라 보던 선택권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채널별로 자기 취향에 맞는 해설위원의 경기 설명을 듣는 재미도 사라졌고, 해설위원으로 예전 스포츠 스타를 만날 기회도 줄었습니다.


이번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은 지상파 3사가 아닌 방송사가 단독으로 중계를 맡은 첫 사례로, 60여 년간 이어져 온 중계 구조의 변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JTBC 뉴스 역시 "지상파 3사가 아닌 방송사가 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는 것은 6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집에 TV는 있지만 켜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로 뉴스를 소비하고,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는 시대인데,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을 한 채널에서만 봐야 하는 상황이 아쉽습니다.


가장 씁쓸했던 장면은 최가온 선수의 금메달 소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기록될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순간을 JTBC 자막 뉴스로 접했습니다(당시 하프파이프 경기는 JTBC스포츠에서 중계하고 있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겨준 김상겸 선수의 은메달 소식도, 유승은 선수와 임종언 선수의 값진 동메달 소식도 다음 날 아침 뉴스로 접했습니다.


나중에 유튜브 다시 보기를 통해 찾아봤지만, 결과를 다 알고 나서 보는 영상에서는 감동의 절반이 증발해 버립니다. 스포츠가 주는 최고의 미덕인 예측 불가능성의 짜릿한 묘미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온 국민이 선택권 없이 한 채널에서 보여주는 경기만 수동적으로 봐야 하는 상황, 국민이 함께 내지르는 함성 없는 조용한 금메달, 허전하고 씁쓸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떠올랐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점심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 있던 근처 회사 로비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이미 거리를 오가던 수많은 시민이 숨을 죽이고 대형 TV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모두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감상했습니다. 점프 하나하나에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경기가 끝나고 점수가 발표되던 순간, 로비는 떠나갈 듯한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 모두가 마치 자신이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그 뭉클하고 감동적인 기분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우리가 20년도 훨씬 지난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공유하는 것처럼, 올림픽도 선수들이 경쟁하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의 축제가 아닐까요.


접근성이 떨어지니, 관심도 사라진다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의 자료를 살펴보면, 이번 대회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급감했는지 수치로 확연히 드러납니다. 지난 7일 방송된 개막식 생중계 시청률은 1.8%(전국 가구 기준)였습니다. 이는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지상파 합계 44.6%),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률(KBS1 9.9%, SBS 4.1%, MBC 4.0% 등 합계 18%)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치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치러진 2021년 도쿄 올림픽(17.2%)보다도 낮은 수치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시차가 8시간인 것도 작용했겠지만, 시청 창구가 좁아진 것이 국민적 관심을 떨어뜨리는 높은 문턱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겨준 김상겸 선수의 은메달도, 유승은 선수와 임종언 선수의 값진 활약상도 예전만큼 화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관심의 저조는 무관심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에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휴대전화를 갈아탄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DMB로 아시안게임 중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접근성이 확보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관심 있는 경기를 시청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경기 이야기, 선수 이야기, 이런저런 장면 등에 대해 나누게 됩니다. 그 과정이 올림픽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 아닐까요.


올림픽, 국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여야 합니다


올림픽은 국가 간 메달 경쟁이 아니라 기억의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 밴쿠버 올림픽,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어디서,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그 경기를 지켜봤는지가 세대의 추억이 됩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그때 올림픽 했었나?"라는 흐릿한 기억만 남는 건 아닐까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만큼은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계권은 시장의 논리로 결정될 수 있지만, 함께 환호할 권리까지 시장에 맡겨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또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며, 저는 국민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을 조금은 도둑 맞은 듯한 아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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