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피하는 세대와 '조용한 진급'이 일상이 되어가는 직장 풍경
몇 주 전, 예전에 다녔던 회사 선배를 만났습니다. 선배의 임원 승진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축하를 건넸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선배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팀원 중 일부가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꼭 축하 인사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같은 팀인데 모른 척하는 모습이 좀 서운하더라고."
'팀원들이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임원이 되었다고 여기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선배 말을 들으니 과거 제가 그 회사에 다녔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진급자 발표가 나면 꽤 오랜 기간 축하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좀 무식하기도 했지만, 진급 턱을 쏘느라 얼마를 썼는지가 자랑거리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매년 이어지던 진급 시즌은 자연스럽게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되곤 했습니다.
저 역시 이 회사에 다니며 대리, 과장, 차장까지 진급했습니다. 그때마다 이어졌던 축하 자리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진급은 개인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조직이 함께 축하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회사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현재 다니는 회사도 임원 인사나 직원 승진 인사 발표 날 분위기가 차분한 편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경험했던 활기찬 풍경과는 많이 다릅니다. 동료들은 간단한 인사만 건네고, 축하 여운도 오래 이어지지 않습니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진급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책임과 업무 부담은 커지지만 보상은 체감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현재의 역할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승진을 요란하게 축하하는 문화 역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진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그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올해 상반기에 실시한 '20·30 직장인의 리더 인식 기획조사 2025'에 따르면 리더 역할을 맡지 않더라도 불안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47.3%로, 불안하다는 응답 22.1%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승진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 책임과 업무 부담 증가, 성과 압박, 인력 관리에 따른 스트레스 등을 꼽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간관리자 역할에 대해 '권한은 적고 책임만 커진다'라는 인식이 두드러지며, 승진이 보상보다는 부담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페인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는 최근 젊은 세대 직장인들에게 프로페셔널 미니멀리즘(professional minimalism)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로페셔널 미니멀리즘은 맡은 일은 충실히 하되, 승진이나 관리직 진입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일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승진이 과거와는 달리 '축하할 일'이기보다 '감당해야 할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변화가 국내외에서 함께 나타나는 셈입니다.
"부장 됐는데, 팀 분위기가 별로라서 승진 턱 쏜다는 말도 못 하겠더라."
중견기업에서 차장 팀장이었던 친구가 부장으로 진급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팀원 대부분은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두 명의 팀원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침묵이 여전히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축하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자신을 대하는 거리감이 더 서운하게 느껴졌다고.
회식 문화 역시 크게 달라져 상사들 고민도 커졌습니다. 임원이 된 선배도, 부장이 된 친구도 공통으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승진 턱을 내야 하는데, 저녁을 사야 할지 점심으로 대신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녁 회식은 개인 시간을 빼앗는 거 같아 부담스럽고, 점심은 왠지 성의 없어 보일까 마음이 쓰였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 자체가 달라진 시대의 모습입니다.
친구의 축하 자리는 결국 '자율 참석'이라는 명목하에 팀원들이 의견을 모아 저녁 식사로 결정했지만, 연차나 개인 일정 등의 이유로 몇 명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강요를 줄이려는 변화에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회식이 줄고, 승진을 인생의 목표처럼 강요하지 않는 문화 역시 시대적 흐름입니다. 젊은 세대가 승진을 부담으로 느끼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준비하며 앞에 언급한 선배 팀의 한 후배에게, 축하 인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축하해 주셨잖아요?"
젊은 세대에게 승진은 더 이상 '우리 팀의 일'이 아니라 '그들만의 일'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 승진이라면, 굳이 축하할 일인가라고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문화도 바뀌지만,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함께 일해온 동료들 사이에 최소한의 온기는 남아 있었으면 합니다. 조직의 성과와는 별개로, 누군가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 정도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변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박수와 온기 어린 응원 정도는 아직 회사에 남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