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인가 무기인가...법 위반 인정 사례 전체 신고의 약 10퍼센트 남짓
"널 죽였으면 좋겠다."
최근 시민단체가 한 정치인의 보좌진 폭언을 두고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기사가 화제가 됐습니다. "널 죽였으면 좋겠다"라는 표현이 담긴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환경미화원들을 상대로 수개월 동안 폭행과 강요, 가혹행위를 해온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더 이상 사적인 갈등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위 사례처럼 직장 내 괴롭힘을 문제 삼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법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언제나 정의로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질문도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고가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분노나 갈등을 풀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직과 개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법으로 보호받는 신고권이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임원 승진이 확정돼 주변의 축하를 받던 한 대기업 선배는 발표를 얼마 앞두고 팀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당했습니다. 조사 결과 실제 괴롭힘은 성립되지 않았지만, 조사 기간에 임원 승진 발표가 있었고 선배 이름은 임원 승진 명단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직은 무혐의보다 신고 이력을 더 큰 리스크로 판단했고, 임원 승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한 팀장 친구의 팀원이 퇴사하면서 친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습니다. 신고만 남기고 직원은 회사를 떠났고, 남은 팀원들과 팀장 모두가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장기간 이어진 조사는 팀원들을 스트레스로, 팀장을 극심한 불안에 몰아넣었습니다. 친구는 그 시간을 인생 최대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조사 결과 괴롭힘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무혐의 판정은 아무것도 회복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신고자는 이미 떠났고, 남은 이들만 반복되는 해명과 불안 속에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 두 사례는 공통점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과 조직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상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젠 업무 지시 같은 것도 웬만하면 이메일로 해. 나도 뭔가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투, 억양, 표현 하나하나가 신고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일부 관리자들은 대화를 줄이고 증거 중심 소통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메신저 대신 이메일을 쓰고, 대면 회의를 줄이고 문서 보고로 업무를 전환하기도 합니다. 피드백은 감정을 배제한 채 최소한으로 전달하며, 관리자 스스로가 자신의 소통을 검열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제 상황도 비슷합니다. 이는 단지 조심성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까운 반응입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신고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관리자들은 리더십의 한계와 조직 소통의 위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들이 말을 아끼게 된 조직, 소통이 줄어드는 팀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12,253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개선지도, 과태료, 검찰송치 처분을 받은 건은 1,458건으로, 전체의 약 11%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신고 건수 증가가 그대로 판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신고의 문턱이 낮아진 상황에서 '한번 신고해 보고 아니면 말지'라는 태도도 일부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조사 과정에서 개인과 조직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조사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징벌처럼 작동하며, 괴로움과 자괴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계가 얼마나 흐려졌는지를 보여주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었습니다. 임신 중인 한 후배가 제게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어제 팀장님이 계속 업무를 재촉하는데, 너무 스트레스받았어요. 이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적잖이 놀랐습니다. 임신 중인 직원에 대한 배려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업무 일정과 책임 조율 문제까지 곧바로 '괴롭힘'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현실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갈등과 불편, 부담과 압박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짜 폭력이고, 무엇이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인지에 대한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침묵을 강요받던 조직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제도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특히 맥락, 관계, 감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인의 진술만으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때때로 개인 간 갈등을 제도적 무기로 역이용하는 허점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담당하는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상사가 직원(팀원)을 신고하는 사례도 있나요?" 돌아온 답은 단순했습니다. "제도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쌍방향이지만, 현실에서는 권력관계에 따라 작동합니다. 상사가 직원을 신고할 일은 거의 없고, 직원이 상사를 신고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유입니다. 과연 부하직원 때문에 고통받는 상사는 없을까요? 제도가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 제도가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의 넓은 해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어 사건마다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애매모호한 구조는 피해자도, 관리자도, 조직도 모두 지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진짜 피해자는 자신의 신고가 의심받을까 두려워하고, 관리자들은 말을 아끼게 되며, 조직은 서로의 불신 속에 효율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한 제도가 역설적으로 소통의 위축과 조직 불신을 초래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직장 내 괴롭힘을 말할 수 없는 조직도 문제지만, 누구든 쉽게 괴롭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조직 역시 건강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도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지 개인의 악감정으로 누군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는 공정한 조사와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도 자체라기보다, 이 제도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사용되느냐에 있습니다.
이제는 신고 건수를 늘리는 것보다, 제도의 취지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과 소통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무엇이 갈등이고 무엇이 폭력인지, 어디까지가 문제 제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오남용인지에 대한 보다 디테일한 사회적 합의와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인생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제도라면, 그만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제도는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개인의 분노와 좌절이 타인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진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이제 제도의 운영 방식보다 사용하는 태도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