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던 그때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팬'이라고 하면 흔히 열정이 넘치는 10대 소녀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하지만, 요즘은 각자의 관심사와 취향이 다양해진 만큼 팬의 모습도 참 다양해졌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마음 한편에 아직 소년이 사는 아저씨도, 내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총천연색으로 무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트로트 공연을 보러 가는 할머니도, 오직 좋아하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말도 안 통하는 곳까지 수십 시간과 수백만 원을 써서 날아오는 외국인도 전부 '팬'인걸 보면요.
살아오면서 저는, 그런 열정 넘치는 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신기해하는 편에 속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 시절 여학생의 필수 덕목을 지키듯 아이돌을 좋아했지만 직접 보러 공개방송을 뛴다거나 적극적인 팬 활동을 한 적은 없었고요. 대학교에 가서는 좋아하던 아이돌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며 소위 말하는 탈덕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취업 준비생, 사회 초년생일 때는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없었고, 회사 생활에 조금 적응했을 때는 한창 뜨는 연예인들이 저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여 (...) 좋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반짝반짝 무대 위에서, 스크린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빛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도 큰 감흥이 없어, 대부분은 관심이 생겨도 소소하게 관련 콘텐츠 정도 즐겨보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든 멀리서든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심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애정을 주는 존재와 받는 존재 모두를요. 나는 이름도 모르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는 걸 보면 그 마음이 대단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저 사람에게는 애정의 대상이 행복과 위로와 감동을 선물하는 존재이겠지? 싶기도 하고. 또 그러다 언젠가 마음이 떠나더라도 그때의 즐거운 추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누군가는 그게 그저 아깝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살면서 그만큼 어마어마한 애정을 주고받을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연인이나 가족 친구와의 애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고 경험인걸요.
그리던 어느 날, 저에게도 그런 최애가 덕통사고라는 표현 그대로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신체 건장한 성인인데도 뭐든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넘치는 마음을 주체 못 해 어딘가 쏟아내고자 아무리 유행해도 십몇 년 간 쳐다보지 않았던 SNS와 생소한 팬 문화에 제대로 발을 들일 정도로, 그리고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처하여 본업보다도 열심히, 온몸과 마음을 다 불사르다시피 아낌없이 내어줄 정도로요. 비록 모두를 위해 시작한다고 생각한 일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일이 된 것 같아 허무해질 때도 있었지만, 처음 최애를 대책 없이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느낌을 되새길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몽글몽글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걸 보면 또 마냥 후회만 할 일은 아니었지, 그땐 진심이었으니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미완성의 형태로 남아버린 그때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잘 담아 마무리하고 싶어 오랜만에 글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던, 나의 최애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