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취업 비자, 5년의 여정 끝에 이룬 꿈
⎯ 프롤로그
“Congratulations! We are pleased to notify you that the USCIS selected the H-1B CAP registration …”
2024년 4월 1일, 한 통의 메일을 받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만우절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예상치 못했던 메일이었다. 그 메일은 극악의 확률을 뚫고 H-1B 비자 추첨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2019년 WEST 프로그램을 계기로 꿈꿔온 미국 취업의 기회가 마침내 눈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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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꿈의 땅 미국에 도착하다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두 가지는 분명했다. 영어를 쓰고 싶었고, 다국적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항상 미국 본토에서 원어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해보고 싶던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해외 유학원 등을 알아보던 중에 WEST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동경해오던 미국에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재정지원금이 제공되고 취업 준비 중인 나에게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망설임 없이 휴학을 결심하고, 미국에 갈 자금을 모아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마침내 2019년, 꿈에 그리던 미국에 도착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Work, English, Study, Travel을 모두 담은 프로그램인 만큼 공유하고 싶은 일화가 많지만 그 중 WEST 이후의 내 삶에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이야기만 공유해보겠다.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턴 신분으로 어떤 실무 경험을 쌓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미국 회사는 외국인 인턴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출근해서 메일 몇 개를 쓰고, 방송 프로그래밍만 돌려도 무료 인력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 내가 무엇을 하든 (실수만 하지 않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좋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추후 관심 있던 분야인 마케팅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로 했다. 당시 회사에서 개발만 하고 활성화하지 않았던 모바일 앱의 유저를 늘리기 위한 캠페인을 기획해서 제안했는데, 대표님은 흔쾌히 승낙하시며 나에게 자율성과 주도권을 주셨다. 직접 무언가를 기획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한 경험은 도전정신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인턴을 한 곳은 장미도시로 불리는 오레곤주 포틀랜드였다. 장미가 활짝 핀 포틀랜드의 6월은 아름다웠다. 화창한 여름날, 회사 점심 시간에 산책을 나왔다가 장미 정원에서 평화롭게 햇빛을 쬐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더 많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다음 날, 나는 대표님께 취업 비자를 스폰서해 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감사하게도 대표님은 나의 간절함과 열정을 믿어 주셨고, 그 다음 주 우리는 이민 변호사를 찾아 취업비자인 H-1B 비자 신청 절차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했다. H-1B 비자는 추첨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폰서 회사가 있어도 비자 신청이 보장되지 않고 학사 학위 소지자는 더 높은 경쟁률로 인해 확률이 더욱 낮다. 추첨이 되지 않으면 다음 해에 재도전해야 한다. 이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결국 H-1B 비자 도전을 포기해야 했다.
⎯ 2020년: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이다
미국에 갈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미국행이 불발되어 좌절했다. 다시 취업을 고민하던 중,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GC) 프로그램 인턴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국내에 진출하고자 하는 해외 스타트업의 정착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문득 WEST 프로그램 동문회에서 만난 선배님께서 내 이력서를 보고 스타트업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신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KSGC를 통해 10개국이 넘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꿈을 꾸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벽돌을 쌓아 올리듯 성과로 나타나는 이 세계에 매료되었고, 여정을 함께하게 된 테크기업과 프로그램 종료 후 계약을 연장하여 정직원이 되었다.
이 테크기업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기술은 잠재고객, 파트너, 투자자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쉽게 풀어내어 설명하는 ‘피칭’이라는 기술이었다. 어느 날, KSGC에서 만난 친구가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드레이퍼 대학 온라인 교육을 추천해줬다.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인 내가 스타트업 대표들 사이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고민이 되었다. 결국 도전을 결심했고, 뜻밖에도 프로그램 마지막 피칭 대회에서 80명 중 3위라는 결과를 얻었다.
⎯ 2021년: 다시 미국을 만나다 – 실리콘밸리편
기쁜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레이퍼 대학에서 대회 수상자들을 실리콘밸리 현지 프로그램에 초청했다. 2년만에 다시 미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레이퍼 대학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에서는 30개국에서 온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팀 빌딩, 비즈니스 모델 설계와 같은 창업의 기본을 실습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국내와 해외 창업 생태계의 차이점도 알게 되었다.
참가 스타트업들 중에는 완성도가 낮은 제품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보이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 받기 때문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이곳에서는 준비가 덜 되어 보였음에도 고객과 매출을 얻고 있었다. 이를 통해 해외 시장은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소비자층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린다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22년: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다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은 미국에 대한 나의 열정을 다시 불타오르게 했다. 미국 취업에 재도전하기 위해 경력을 쌓고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일이 확실했다.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내가 본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귀국 후, 경험을 살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스타트업 에이전시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창업진흥원, 코트라 등의 기관과 협업하여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정부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 필요한 사업계획서 작성 방법과 피칭 콘테스트 등의 행사를 기획하는 방법을 익혔다.
스타트업과의 인연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대학 동문과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식 추천 서비스를 창업하려고 했고, KSGC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한국에서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했다.
⎯ 2023년: 한식 추천 서비스 창업 - 창업자의 입장이 되어 보다
스타트업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던 중, 번아웃으로 인해 퇴사를 고민하던 때였다. 한식 추천 서비스를 개발하던 동문이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창업을 위해 퇴사했다. 이제 창업자의 입장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관광공사의 예비창업패키지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약 10개월 동안 12번의 행사를 통해 100명 이상의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내향적이었던 이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WEST 프로그램과 DU 프로그램을 통해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번 창업 경험은 외향성을 더욱 발달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취향에 따라 한식을 추천해주는 퀴즈, 10가지의 필수 한식 체험, 전통 시장 투어, 워케이션 등을 기획하며 참가자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벽돌을 쌓아가는 과정은 값지고 즐거웠지만, 나는 창업가로서 부족함을 느꼈다. 세계와 한국을 연결하는 일은 보람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양한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배우고 많은 것에 도전할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한국 학생들에게도 내가 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 2024년: H-1B에 재도전 하다
나의 부족함을 느낄 때쯤, 2019년 WEST 프로그램 인턴십을 했던 회사 대표님께서 컨퍼런스 사업을 시작하셨고 함께할 것을 제안해 주셨다. 고민 끝에 2024년 1월부터 팀에 합류하여 원격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가 하게 된 일은 KSGC에서 배운 피칭, 드레이퍼 대학에서 배운 비즈니스 모델 설계, 스타트업 에이전시에서 배운 행사 기획 및 운영, 한식 추천 서비스를 하며 배운 창의적 콘텐츠 제작 방법이 모두 필요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이 일을 위해 준비된 과정처럼 느껴졌다.
2024년 3월, H-1B비자 추첨 신청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H-1B비자 신청에 재도전했다. 이미 실패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2024년 4월 1일, 알림창에 뜬 메일 미리보기를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Congratulations! We are pleased to notify you that the USCIS selected the H-1B CAP registr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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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2025년, 원의 완성
2025년 1월 23일, 내 기분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하게 만든 이 5년 간의 대장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지난 5년의 불확실한 시간을 살며 나는 그저 삶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돌아가는 길(detour)처럼 보였던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다. KSGC를 통해 알게 된 창업생태계, Draper University에서의 배운 도전 정신과 삶의 다양성, 스타트업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직접 창업하는 것까지—모든 경험은 지금 내가 맡은 역할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은 흔치만은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두려운 순간도 많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젊음, 자원, 에너지를 쏟아붓는 가운데 실패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두려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 속에서 끈기와 회복탄력성을 길렀으며, 내 삶의 더 분명한 목적을 발견했다.
처음에 미국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미국에 취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이 이야기를 완성시켜야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이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나는 미국 취업을 하기에 좋은 조건에 있지 않았다. 특출난 기술도 없으며, 대학원을 갈 수 있는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었고, 미국에 연고가 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각각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길과 대안을 찾아 계속 시도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확실한 단 한가지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을 이기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끊임 없는 시도 속에서 우리가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전략을 배우고, 예상치 못한 대안이 오히려 나에게 더 잘 맞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도,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의 원을 완성했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마주할 도전들은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긴 여정을 통해 나는 더욱 단단해졌고, 새로운 챕터를 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도울 것이다.
When you want something,
the whole universe conspires in order for you to achieve it.
— 연금술사. The Alche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