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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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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Apr 19. 2023

[복직일기] 회사는 원래 이런 곳이었지

 2019년 출산 후 출산휴가만 쓰고 심플하게 복직했다. 육아휴직은 단 하루도 쓰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남겨둬야 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 이유가 회사 사옥 이전 때문이었다. 사옥 이전은 2022년 12월이었고 당장 시기에 맞춰 올라오면 아이 어린이집과 시터 도우미를 바로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육아휴직을 써야만 했다.


 새로운 사옥의 출근에 약간의 설렘도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이 앞섰다. 이전보다 불편해진 출퇴근길의 고단함, 첫 출근자의 배려따위는 없을 회사의 냉정함을 잘 알기 떄문이었다.


 역시는 역시다. 회사 출근부터 만만치가 않다. 일단 회사 위치가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다 애매하다. 그렇다고 분당에 있는 사옥 옆에 집을 정하자니 집값을 생각하면 어디 공터에 텐트를 지내고 지내야 할 판이다. 결국 그나마 가까운 수지로 터를 잡았다. 그래도 door to door 50분은 걸리는 출근 시간과 신분당선의 인구 밀도는 무시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내려야 할 정자역에서 내리지 못할 뻔 했다. "저기요, 저 내려야 해요!"를 큰 목소리로 서너번 외치고서야 겨우 내렸다. "내리는 사람 있잖아요. 내리고 타세요." 거들어 주시던 아저씨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나의 첫 출근을 위해 보안이 삼엄해졌다는 건물 출입이며 PC 지급 등등의 일련의 준비가 잘 되어 있을리 없다. 그래도 또 막상 출입부터 신통치 않은 않으니 피로감이 더 몰려온다. 마치 다른 회사에 온 사람처럼 방문 등록을 동료에게 부탁해 임시 출입증을 발급 받아 목에 걸었다. 출입이 되지 않는데 식수 인원으로 체크 되어 있을리가 없다. 결국 식수카드도 따로 지급 받아 목에 걸었다. 거기에 작동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기존 사원증까지 목에 걸고나니 메달 장수 같다. 가관이다.


 전산팀에 PC를 지급 받으러 갔더니 통보 받은 바가 없으니 인사에서 복직 공문처리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한다. 인사에서는 복직신청서를 쓰라고 안내 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인사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없다. 복직신청서를 썼다면 과연 나를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을까? 심지어 복직 전주에 내가 복직한다고 인사팀 직원에게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PC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팀장님과 팀원들이 집에 가라고 성화였다. 우리 회사는 선택시간근로제를 택해서 월 일정 근로시간을 채운다면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마침 하원을 도와주실 도우미 선생님 면접을 언제 볼까 고민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이모님 면접을 당일 5시로 잡고 3시에 퇴근을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근태 담당직원에게 물어보니 1일이 아닌 10일에 복직을 했기 때문에 이달에는 어쩔 수 없이 하루 8시간 정해진 시간에 근무를 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스템이 그렇게 밖에 안된다나 어쨌다나. 역시 사람보다 시스템이 우선되는 곳이 회사 아닌가. 결국 출근 첫 날부터 PC를 받지 못한 덕분에 반차를 헌납하고야 말았다.

 

 십여년 다닌 회사 별스러울 것도 없고 회사에 대한 기대는 애진작에 내다버렸다고 생각했다. 휴직 동안 나의 현실 감각이 무뎌진걸까? 회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버린걸까?


 회사가 나를 위해 줄거란 망상 따윈 버리자. 여긴 냉정한 사회, 회사니까. '아줌마'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컴백식을 호되게 치르고 나니 정신이 든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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