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Jan 25. 2024

먼쓸리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엄마 성적표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6세 말부터 먼쓸리 시험을 본다. 이 시험을 처음 보고 멘붕이었던 게, 전체 25문제 중에서 다 맞거나 1, 2개 틀리는 게 예사라는 거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국의 모든 지점 성적을 분석하여 전국평균 반평균, 그리오 내 아이의 퍼센티지까지 성적표에 나오는데 고등학교 전국모의평가  PTSD 돋는 시추에이션....


이제까지 무슨 시험을 보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지라 이 시험 역시 그냥 보다 보다 하고 넉 놓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워크시트를 달달 외우고 정답을 지우고 새로 만들어주기까지 하는 극성 엄마들도 있다고 하니 말 다했지.


아무튼 첫 먼쓸리를 참패하고 두 번째 먼쓸리 공지가 나왔을 때, 나도 시험 대비를 좀 해줘야겠다 싶어서 한 번씩 같이 훑어줬다. 한 번만 보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은근 많이 소요되고 놀기도 놀아야 하니 시험 전 날 벼락치기도 했는데, 당장 내일이 시험이니 이걸 그만할 수도 없고 밤 11시까지 아이와 앉아서 보는데 아이가 한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엄마, 살려줘....'

ㅋㅋㅋㅋㅋ


6살의 입에서 나올 말이며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현타가 왔다.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책도 보내주시고 응원도 해주시고 우리 아이 조금만 봐주면 잘할 아이라고 하시니깐 또 내 책임 같고.


이 시험으로 아이의 긴 인생에 무슨 변화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만큼은 건져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거 롱바울이야 숏바울이야 이거랑 같은 바울 뭐야 이 스토리 다시 한번 읽어봐. 하며 계모에 빙의하며 미안함과 해야 함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핑퐁처럼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이상한 엄마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덮고 아이를 재웠다.


-


'시험 결과는 금요일 7시에 공지됩니다.'


수요일부터 공지사항에 예고하는 결과발표라니. 막상 오픈 시점이 되자 열어볼 수가 없었다. 일단 그렇게 했는데도 못 봤으면 얘가 문제인 거고 물론 나도 문제인 거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잘 봤으려나? 싶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기대감을 어떻게 잠재워야 하지 싶은 마인드 컨트롤 때문에.


한참을 다른 일을 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열어봤다. 결과에 만족했을까? 일단 결과는 진짜 좋았다. 아이가 잘했다. 한 개 밖에 안 틀렸다. 근데 진짜 간사한게 사람 마음이라고, 만 점 못 받으니 또 서운하더라? 이게 뭐라고.. 이래서 공부 닥달하는 엄마가 되는건가보다.


-


공부 욕심은 애가 있어야 한다. 엄마의 공부욕심이 아이의 공부욕심 양적으로 넘어서는 순간부터 둘 사이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씨앗이 싹튼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직 공부 욕심은 없어보인다. 장난감 욕심은 거대하지만. 그래서 영유아 학습이 어려운 것 같다. 진짜 성적이 아니고 엄마 성적표라서. 그래서 아무리 달려도 나중에 정신차린 애들이 역전하는거 아닐까?


물론 시험 잘 보는 똑순이 아이들이 정말 대견스럽지만, 이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원래 영유를 보낸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언어를 언어로 배울 수 있는 환경조성과 나중에 커서 네이버보다 구글링으로 정보 찾는 영어를 편하게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그 목적에는 아이가 잘 도달해 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니 나의 아이의 속도에 집중하자. 내가 이 시험에 또 신경 안쓰지는 못한다고 장담하지만 마인드컨트롤만큼은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내 아이 속도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깐.


작가의 이전글 워킹맘의 휴가는 바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