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결혼
서른 즈음, 새로운 해외 지역 오피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로움” 이란 단어는 설레임을 유발한다. 새로운 지역, 사회, 조직... 처음 그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나쁜 남자를 만나 오랜 시간 맘고생 하며 살아온 바보같은 시간들을 보상해주기라도 한 듯. 6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평소 소심증에 걱정 많은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확신감은 복잡한 이후의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다.
바로 이거였군. 운명의 상대는 현실을 잊게 만들어 주는 구나
해외생활을 오래한 남편은 결혼의 격식이나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겠는 절차와 돈 문제로 머리 아프고 싶지 않았다. 예단 및 예물로 몇백 몇천만원씩 오고 가는 절차와 결혼 문화, 부모님 친구에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결혼식, 내가 주었으니 나도 받아야 하는 거래가 되버린 듯한 경조사가 나는 싫었다. 스드메도, 웨딩촬영도 이 나라에는 없으니, 구지 안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꼭 이래야 한다는 정답이란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각자 모은 돈으로, 우리를 아는 회사 동료와 지인들과, 우리가 만나고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터전인 이 곳에서, 이곳의 언어를 사용해, 결혼하기로 했다.
우리 부모님은 약간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다. 잘 키운 딸 귀하게 보내고 싶으셨다. 그래도 난 여전히 잘 이해가 안된다. 예단과 예물 등을 왜 주고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돈이든 부모님 돈이든 남편 돈이든, 안하고 아끼고 안 주고 안 받는다는데 칭찬해 주시면 좋을텐데... 결국 부모님이 만족하는 결혼식은 하지 못했다. 만족하는 내가 엄마는 한참 이상하다고 말했다.
결혼식 이틀 전, 남편과 나는 결혼식 순서지를 만들고 있었다. 어줍지 않은 포토샵으로 우리 결혼식 손님들을 위한 언어(한국어, 영어, 그리고 현지어)로 특별(?) 제작했다. 결혼식 후 피로연을 위한 음악을 선정하고, 영상에 넣을 자막과 사진을 고르고. 통역을 해줄 친구들을 섭외하고, 통역기를 빌렸다. 특별한 추억이다.
그 이후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온 지금, 또 어디로 앞으로 우리가 흘러갈지 모르겠다. 20-30년 후, 우리 결혼식 사진을 보면 우리가 함께 만나고 사랑했던 그 나라에서의 추억과 친구들이 떠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