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집 꾸미기를 시작했다

비움, 정리, 그리고 결혼의 즐거움에 대해

by 아메리카노

코로나 덕분에 집꾸미기를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의 나에게 집이란 무엇이었을까? 모델하우스에 나오는 집처럼 예쁘게 꾸미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미적 감각도 인테리어 감각도 형편 없기에... 워킹맘 워킹대디였던 우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대~충 어딘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육아도, 일도 바쁜 우리 가족에게 집 정리? 꾸미기? 인테리어? 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쉬운거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고 할까.


지난 6개월간 코로나 덕분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재택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베란다를 제외하고 집 밖에 72시간 이상 나가지 않는 날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집의 역할이 정말 “집”다워졌다. 밥은 식당에서 먹고, 차는 친구랑 카페에서 마시고, 일은 회사에서 하고, 밤에 잠만 자러 오는 호텔같은 집이 아니었다. 요즘은 가족 간에 서로 부딪끼고 소통하고 어지르고 치우고 함께 밥 해먹고 (시켜먹기도 하고) 같이 디저트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웃들도 찾아오고, 쿵닥쿵닥 집의 구석구석을 누리는 진짜 집다운 집이 된 느낌이다.


집의 새로운 (?) 기능과 역할에 맞추어 우리도 예쁘게 집을 꾸며볼까 라며 시작한지 어언 2개월. 아이가 잠들면, 우리 부부는 정말 둘다 이 쪽에 재능이 없는게 분명하다며 깔깔거리며 폭풍 검색을 해댔다. 언제 또 다른 나라로 이사가야 할지 모르니 대충 있는 걸로 짐 늘리지말고 살자며 살아왔더랬다. 6개월간의 반강제적인 집콕은 “집”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바꾸었다. 한달을 살더라도 잘 갖추어 놓고 지낼런다. 그러나 돈은 아껴쓰자며“이케아” 아니면 절대 사지 말자고.


비움

사려고 보니, 결코 작지 않은 우리 집을 가득채운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 (안전문, 장난감, 책, 옷 등), 아이가 활동적으로 뛰어 놀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창고에 처박아 둔 가구들 (소파 티테이블, 조명 등) … 일단 비워야 한다.

이 곳에 사는 한인들이 중고물물교환을 하는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몇십개씩 다양한 물건들이 포스팅된다. 새것 같은 것들도, 중고가 되면 가치가 뚝 떨어진다. 진짜 새 것 같은 좋은 물건들인데, 나름 본래 가격의 30% 이하의 가격을 책정해도 잘 안팔리거나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료는 상태 불문 최소 2-3명에게서 24시간 이내 연락이 온다는 신기하고도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싸게 올린 물건도 더 싸게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중고니까 어차피 안 팔려서 버리는 거보다 낫자나요 하는 심리인가. 그러면 마음 약한 나는 "빨리 처분해버리자" 하며 또 요청한 가격으로 해준다. 남편은 나에게 기다리면 높은 가격에 사줄 정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너무 바로 싸게 흥정해준다며 나를 놀린다. 아마도 나는 개인 비지니스는 못할 것 같구나.

이런 경험을 몇달간 하면서 “비움”도 노력이 필요하고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상태가 안좋은 물건들은 당연히 버리지만, 그 외의 상태 좋은 물건들은 될수 있으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다. 잉여가 넘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잉여가 되지 않도록, 무료로 받아 괜찮으면 쓰고 아니면 말고가 아닌... 거기에 하루 한끼 점심 값이라도 용돈벌이가 된다면 금상첨화이고. 아니면 말고.


비움의 옵션

1. 버린다

2. 무료로 나누어준다

3. 중고로 판다

4. 기부한다

5. 용도변경하여 재 사용한다 (예 - 옷을 리폼하여 가방으로 만들거나 또는 걸레로 쓴다거나)


요즘은 기부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중이다. 이 곳 현지의 영아원 시설이 있다면 그곳에 예쁜 아기 옷과 장난감들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움도 노력이 필요하다. 의미있는 비움이 되려면 더욱 노력이 필요하다. 부디, 우리의 행복한 추억이 가득담긴 물건들이 의미있게 필요한 곳에 전해져, 요긴하게 쓰여지면 좋겠다.


집 꾸미기 (Organizing)

엄밀하게 말해서 집을 꾸몄다기 보다는 정리했다. 꾸밀 능력은 안되니까 말이다. 일단 정리라도... 함께 계시며 아이를 돌보아 주시던 조부모님들이 떠나시면서, 우리의 홈오피스를 만들었다. 홈오피스이자 악기 방으로, 전자피아노, 드럼, 기타, 엠프 등등. 나름 꿈꾸어왔던 로망을 실천 중이다. 이 곳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는 집콕의 시절을 즐겨야지. 가족끼리 세션을 제대로 한번 맞추어 보면 어떨까 꿈꾸어본다. 이런 전염병 속에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하는 동네 아이들에게 띵까띵까 악기를 두드리며 놀 수 있게 해줘야지 싶다.


난이도 상 창고 정리도 했다. (마스크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였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그 안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들, 비워야 할까 말까 고민하며 먼지를 털어낸다.

창고를 어지럽힌 큰 주범은 화장실 휴지와 키친타올 뭉치들이다. 인터넷에서 식음료나 생필품 등을 주문 시 특정 금액이 넘어야“배송비 무료”가 된다. 배송비가 너무 아까워서 특정금액이 되기까지 얼마정도 부족할 때면 매번 화장실 휴지나 키친타올을 주문했었다. 이케아 선반을 사서 체계를 잡아, 앞으로는 그 안에 가지런히 잘 쌓아보려고 한다. 재고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니, 이 이상은 사지 말아야 겠다는 판단이 섰다. 배송비 절약 정신은 칭찬할만 했지만, 과도한 잉여는 불필요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침실, 부엌, 샤워실 등등. 그리고 어딘가 홈카페도 하나 만들어보자며… 조잘조잘.. 꿈을 꾼다. 남편은 에스프레소 머쉰부터 제대로 (비싼거~) 하나 사자는데, 나는 그럼 앞으로 스타벅스도 응커피도 가지 않는거냐며 따져댄다.




세상 어느 집도 똑같은 집은 없다. 각 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가구의 선택과 배치도 모두 특색이 있고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이 뭍어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또는 속옷까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갈 공간을 꾸미는 일, 우리 만의 공간을 세상의 어느 것과 구분되게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 부부로서 할 수 있는 즐거운 일 중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이 없는 백지와 같은 이 공간에 무엇을 어디에 배치할지, 디자인도 가격대도 서로 가치관을 맞추고 서로 대화하는 이 과정이 연애하는 기분과 같았다. 다행히도(?) 우리 둘다 이 분야에 전혀 재능이 없었기에, 서로 주도권을 내주며 서로에게 결정을 미루며 심하게 민주적였기에 좋은 기억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리가 되면 용기를 내어 사진도 좀 올려볼까 싶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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