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Oct 25. 2018

우리 모두가 타고난 언어 능력

하지만 우리는 모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타고난 언어 능력이 있음에도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바로 이미지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크리스토프 니만 (Christoph Niemann)은 여러분은 이 언어에 유창한데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You are fluent in this language (and don't even know it))라는 TED 강연에서 우리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지만, 이미지 읽기라는 언어에 능통하다고 알려준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한 번씩은 봤을 법한 재치 있고 기발한 그림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강연에서, 그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않고도 우리의 감정과 마음에 다가가는지 알려준다.




예술가는 정말 벅찬 직업이다.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이런 걸 한다.

예술가라는 벅찬 직업 (TED 화면 캡처)

우리 모두는 '이미지 읽기'라는 언어에 능숙하다. 이런 이미지를 판독하는 것은 지능을 약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동 방식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미지는 매우 복잡한 아이디어를 간단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의사소통하게 한다. 그림은 의사소통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림으로 기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발표자 니만은 때때로 비행기에서 불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상태에서 깨어날 때 입 안의 끔찍한 맛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있다.

끔직한 맛을 그림으로 표현 (TED 화면 캡처)


왜 이미지가 통할까? 우리는 독자로서 빈 공간을 매우 잘 채우기 때문이다.

 

여백을 이용한 그림예시 (TED 화면 캡처)


이 그림에서 그릇 안은 비어있지만 검은색 잉크는 우리 뇌가 빈 공간에 음식을 투영하도록 만든다.


부엉이를 암시하는 그림 (TED 화면 캡처)


이 그림에서 우리는 날고 있는 부엉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그림 위에 있는 AA 건전지 두 개다. 날고 있는 부엉이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할까? 예술가로서 니만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정보를 쓰는 것이다. 한 가지 요소만 빼버려도 전체 개념이 무너질 정도의 단순함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추상도 측정기(The Abstract-o-Meter)를 만들었다.

추상도 측정기의 예시 (TED 화면 캡처)

어떤 상징이든 선택하여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면 독자는 역겨움을 느끼고 너무 추상적으로 그리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눈금 중 가장 완벽한 곳을 찾아야 한다.


니만은 이미지를 더 단순한 형태로 줄여서 많은 종류의 새로운 연결을 하여 새로운 시각의 스토리텔링을 한다. 특히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합치는 시도를 한다.

 문화의 조합 (TED 화면 캡처)


좀 더 대담한 레퍼런스를 이용하면 더 많은 재미를 느끼지만, 너무 모호해지면 결국은 몇몇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의 시각적, 문화적 단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니만은 독자를 위해 깨달음의 순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이미지를 만들 때 깨달음의 순간을 가지지는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절대 아니다. 실제로는 아주 느리고 작은 디자인 결정들이 모이는 섹시하지 않은 과정이다.


니만은 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어쩌면 시처럼 독자가 이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길 원한다. 그는 막 그걸 찾아내고 독자가 계속 그 이미지와 쭉 함께였다는 걸 깨닫게 하는 셈이다. 이는 매우 미묘한 과정이어서 효율적이거나 측정 가능하지 않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공감 능력이다. 물론 기술도 필요하고 창의성도 필요하다.


니만은 더 나은 이미지 관찰자가 되어서 더 나은 예술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스스로 '일요일에 스케치 하기(Sunday Sketching)'라고 부르는 활동을 한다. 일요일에 집 주변에 있는 물건을 무작위로 골라서 그 물건의 원래 용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시도를 한다. 보통은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결국 효과가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마음을 열고 저장해 두었던 모든 이미지를 훑어보고 통하는 게 있는지 확인한다. 만약 있다면, 잉크 몇 줄만 더 추가한다.

 

니만의 일요일에 스케치하기의 결과물 (TED 화면 캡처)


여기서 그가 깨달은 위대한 교훈은 진짜 마법은 종이 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독자의 기대와 지식이 디자이너의 예술적 의도와 충돌할 때 마법이 일어난다. 독자가 읽고 질문하는 능력, 이미지를 보고 괴로워하거나 혹은 지루해하거나, 영감을 받는 것과 같은 독자가 이미지와 상호작용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예술적 기여만큼이나 중요하다. 그것이 예술적 문장을 창의적인 대화로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이미지를 읽는 능력은 놀라울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




흔히 우리는 결과물만 보고는 제작자가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쉽게 만들었을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니만의 말처럼 깨달음의 순간은 없다. 모든 것이 노력과 의도된 연습(Deliberate Practice)에서 비롯된다. 그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려고 단순화, 다른 문화의 조합, 일요일에 스케치 하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실제 기업에서 창의력 강의에 참여하면 이러한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사전이나 잡지를 사용하여 전혀 의미가 다른 단어 2개를 골라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이미지 읽기라는 언어에 능숙한 것은 우리가 늘 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언어로 해석한 것이 신선하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가진 것을 과소평가하고 부족한 것에 대해 불평한다. 이미지 읽기가 언어라면 우리는 너무나 유창하게 사용한다. 적어도 우리는 모국어를 포함하여 이미지 읽기 언어까지 가능하니 두 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Bilingual)이다. 우리가 가진 완벽한 언어 실력에 감사해야 한다.


이미지가 매우 복잡한 아이디어를 간단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의사소통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 있는 것을 보는 것과 달리 우리 마음속의 이미지를 본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림뿐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글로 어떤 상황을 설명하거나 느낀 점을 풀어내지만 그 글을 읽는 독자는 눈에 보이는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심상을 읽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에도 공감이 중요한 스킬이다.


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독자가 이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게 바로 예술적 영감이 아닐까? 또한 예술가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함을 다시금 느꼈다. 이는 어디에나 적용 가능하다. 글로 독자와 주고받거나, 말로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관중과 상호작용하는 것, 영상으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제 TED 영상을 보면 이 글에서 소개한 것보다 더 흥미롭고 창의적인 영상이 많다. 가급적 영상을 보길 권한다.


나 역시 때로는 글보다 그림이 더 의도를 잘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 글과 그림이 있는 책을 출간하여 독자에게 이미 그들 안에 있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그들 스스로 심상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성찰하게 하고 그게 글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발견했다는 기쁨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YouTube [일과삶의 TED 추천]
매거진의 이전글 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세 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