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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May 22. 2018

여성의 분노는 평생의 지혜를 가진다

용기를 내고 배려하는 사회를 위해

오늘의 TED추천은 다양성 차원에서 여성과 관련된 내용을 선택해 보았다. A woman's fury holds lifetimes of wisdom (여성의 분노는 평생의 지혜를 가진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다. 내용 전반적으로 볼 때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이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불편함을 표현해야 하며, 이것은 개인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역사라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트레시 엘리스 로스(Tracee Ellis Ross)는 ABC 코미디 시리즈 "Black-ish"의 스타이자 활동가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의 경험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솔직하고, 두려움 없는 대화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더 좋은 미래로 초대한다. 




발표자는 매우 밝고, 거칠고,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60대 배우 친구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친구가 겪은 경험은 황당하다. 그녀는 매우 집중하여 양식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어디선지 모르게 누군가 그녀에게 손을 대어 밀쳤다. 어쩌면 그녀에게 뭔가를 말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녀도 들은 바 없다. 그는 원하는 것에 손을 뻗어 가졌고 그리고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길을 갔다. 친구는 처음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싶었어. 모르겠어. 난 분노했어. 이유를 모르겠어. 그가 나를 친 것도 아니고, 나에게 다치게 하지 않았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어. 나를 옮겼지. 그리고 난 그를 다치게 하고 싶었어. 아니면 최소한 그를 따라가서 얼굴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발표자는 이 분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친구가 말하는 동안에도 왜 그런지 이유를 찾으려 했다. 발표자 역시 최근에 많이 듣는 단어와 감정이 분노였다. 발표자는 이 분노가 자신의 친구만의 것이 아니라 동의 없이 평생 여성의 몸을 마음대로 하는 남성들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마음대로 하는 문화가 있다. 겉보기에는 악의가 없는 것 같지만, 여성의 몸을 물건 취급한 셈이다. '악의 없는' 것과 '끔찍한' 것은 스펙트럼상 양단의 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스펙트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악의 없는' 것이 공간을 끔찍하게 만든다. 


[일과삶 첨언] 상대는 악의가 없었다고 합리화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악의 없음이 끔찍함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악의가 없다고 모든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악의 없는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은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마음대로 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마음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 근본적으로 덜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는 대부분 남성의 가장 큰 맹점이다. 누군가가 여성에게 마음대로 할 때 불편과 고통뿐 아니라 우리 엄마, 여동생, 그리고 이전 여성 세대의 무언의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평생 여성이 남성을 대처해온 방식이다. 여성이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남성이 우리에게 더 좋을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남편 혹은 지주의 소유물이 되고, 늙은 백인 남성이 여성의 운명을 말한다. 평생 우리의 몸은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우리가 선택한 대로 몸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대신 그들의 법칙에 따르는지 아닌지 평생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희롱, 폭행을 참아야 한다. 더 나쁘게는 평생 우리의 몸이 맞고 다치는 소유물로 존중의 가치가 없는 물건처럼 사용되고 조정되고 옮겨진다.


이런 이야기에 인종의 역사까지 추가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더 복잡해진다. 남성이 여성을 건드리면 여성은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여성은 스스로 과잉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삼킨다. 우리 마음의 숨겨진 곳 어딘가에 두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분노는 우리가 미소를 연습할 때 내면 깊은 곳에 있다. 그리고 즐거운 척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여성은 화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과삶 의견] 이러한 내용은 한국적 정서로는 여성의 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여성만 이러한 피해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여전히 여성은 소수자이고 피해자다. 늘 친절함은 여성에 의해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자녀 교육상에서도 여전히 여자는 착하고 순해야 하고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존재한다. 


발표자의 친구가 느낀 그 분노는 세기에 걸친 결코 직접 처리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분함, 좌절, 격노다. 누군가가 여성의 몸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분노를 일깨우는 것뿐 아니라 과거도 불 지피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의 경험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여성 스스로가 과잉 반응했다는 혹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생각을 멈추고, 남성의 나쁜 행동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남성의 나쁜 행동을 바꾸는 것은 남성의 책임이다. 


우리 문화는 바뀌고 있고 이제는 바뀔 때다. 남성은 동지로 변화를 위해 함께 해야 한다. 남성들이 책임 있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고, 자애롭고, 개방적이길 바란다. 어떻게 여성을 지원할 수 있을지 묻고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남성이 필요하면 여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성은 스스로 분노를 알아채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방식으로 공유해야 한다. 여성의 분노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평생의 지혜를 가진다. 호흡하고 귀를 기울여라.




이 동영상을 보면서 나 역시 황당한 경험이 생각났다. 나는 사전에 남자 직원 상사의 동의를 받아 그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프로젝트여서 최대한 그가 마음 상하지 않고 편하게 업무를 공유받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사무실 전 직원이 들을 만큼 반말로 말했다. 


난 사장이 시켜도, 그 누가 시켜도 못하니까 알아서 해!


나는 그 당시 분노보다 수치심을 느꼈다. 나 자신의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평생을 살면서 처음 맞은 상황이었다. 부끄럽게도 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위 발표자가 말한 것처럼 나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과잉반응하면 더 이 사람의 화를 돋우게 되니 일단 벗어나자.' '나중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겠지.' 이런 생각으로 그 자리를 그냥 벗어났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친구들은 언어폭력이라는 명목으로 인사팀에 알리라고 했지만, 그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이제는 평생의 지혜로 용기를 내고 싶다. 여성이든 누구든, 약자는 용기를 내어 표현하고, 안전한 곳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더 오픈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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