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예전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읽었다. 슬로리딩에 대한 책인데 저자가 매우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를 읽었는데 많은 부분 공감하였다.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보통 '나는 누구인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인간의 기본 단위를 생각해 보는 차원에서 '무엇인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개인에서 분인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영어는 Individual로 in(부정)+dividuel(나누다)로 구성된다. 즉 Individual(개인)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로 나눌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반면 dividuel(분인)은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개인을 정수 1이라고 한다면 분인은 분수이다. 즉 여러 개의 분인이 모여 개인으로 완성된다.
분인은 상대와의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자신 내부에 형성되어가는 패턴으로서의 인격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타자)이다. 분인은 3단계로 발전될 수 있다.
▶ 1단계 사회적 분인: 불특정 다수와의 사회적 관계를 위해 작동
▶ 2단계 그룹용 분인: 사회적인 분인보다 좁은 범위로 한정된 것
▶ 3단계 특정 상대용 분인: 그 그룹 안에서 특정한 누군가와 보다 더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진 경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인화가 이루어지는 대상은 부모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의 성장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어떠한 분인 구성이 이상적인가를 고려하는 것이다. 부모 앞에서와 교사 앞, 아이들끼리의 분인이 다르다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 전혀 다른 인간과 어떻게 하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 모색한 결과다.
집에서는 항상 부족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지 않는 아들은 밖에서는 칭찬받고 지낸다고 한다. 아들은 집에서 엄마와 상대하는 분인과 밖에서 다른 사람과 상대하는 분인이 다른 것이다. 즉, 지극히 정상적이다. 하지만 엄마로서 나는 밖에서 욕먹고 다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우리 회사에서 모범을 보이며 열심히 일하는 젊은 남자 동료도 집에서 엄마에게는 투정 부린다고 말한다. 믿어지지 않았는데 분인으로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가 집에서 응석을 부린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를 좋아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나라는 인간 전체를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분인 단위로 들여다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항상 자신이 100% 만족스러울 순 없다. 나도 어떤 일에는 맹목적으로 도전적이고, 또 어떤 일에 대해서는 결정을 못 내리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런지, 왜 망설이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궁금했다. 일을 대하는 나의 분인이 달라서였을까?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가 다르듯, 상대에 따라 나도 다르고, 업무에 따라 업무를 대하는 나도 다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분인이 좋다는 사고방식은 반드시 타자를 경유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는 역설이야말로 분인주의의 자기 긍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상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개와 함께 있을 때의 나(분인)는 좋다."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내가 좋은가 아닌가?" 스스로 질문하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나는 행복할까? 코칭을 할때 한마디 질문만 던져도 잘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의뢰자가 있는 반면,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의뢰자가 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한 코치인가?'라고 자책하기보다 의뢰자를 대하는 나의 분인이 조금씩 달라서 그런 것이라 이해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진정한 자아 탐색은 평생의 과제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분인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를 떼어낼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일까? 아니면 타자에 따라 달라지는 카멜레온 같은 상대주의자일까? 《나란 무엇인가》는 대인관계와 진정한 자아를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