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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Jul 29. 2021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하는 삶

우리는 모두 살아 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서평

고전역학이 '초기 조건을 알면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라는 결정론적 입장이라면, 미시세계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은 확률적인 입장을 취한다. 즉,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을 정리한 것으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 없음을 밝혔다. 이 원리가 오늘날까지 밝혀진 양자역학을 가장 잘 설명한다.


2년 전 양자역학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쓴 글의 일부다. 나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교과과정에서 다루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이 오히려 더 잘 이해했다. 신기한 개념이라고 말했더니 팽이의 예시로 나온 수능 문제를 보여주며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되어 존재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고전역학에서 팽이가 오른쪽으로 돌고 있는 건 미리 결정돼 있으며, 사람은 나중에 관찰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팽이는 왼쪽 회전과 오른쪽 회전이 공존하고, 사람이 관찰할 때에야 비로소 왼쪽으로 돌지 오른쪽으로 돌지가 결정된다고 본다'라는 지문을 읽었지만 여전히 어렵게 다가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시 나에게는 낯설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여 죽음을 결심한 주인공 노라가 다세계의 삶을 경험하는 소설이다. 여기에 버트런드 러셀, 소크라테스, 카뮈와 같은 철학자의 말을 버무렸다. 특히 소로가 쓴 《월든》의 문장을 자주 언급한다. 많은 작가들이 극찬했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내려놓은 《월든》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났다.


"모든 우주는 다른 모든 우주와 중첩되어 존재합니다. 트레이싱페이퍼 위에 그리는 백만개의 그림처럼 모두 같은 형태 안에서 조금씩 변형되죠, 양자 물리학의 다세계 해석은 갈라진 평행우주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당신은 삶의 매 순간 새로운 우주로 들어갑니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요. 그리고 그 세계를 간에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나 이동이 없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였습니다. 비록 그 세계들이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고, 우리에게서 몇 밀리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해도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삶을 오가며 노라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삶을 찾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 부디 노라가 이 삶에 정착하여 행복을 누리길 바랐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노라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의 불씨라고 여겼다.


"모든 게 제대로 되었지만 이것은 그녀가 이룬 삶이 아니었다. 노라는 그저 영화 중간에 들어왔을 뿐이다. 이건 도서관에서 뽑은 책일 뿐 사실 그녀의 소유가 아니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죽음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인생에서 후회를 해본 적도 많지는 않다. 젊은 시절 잠시 방황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선택한 것이고, 고민해서 결정한 것이기에 결과를 받아들인다. 사실 후회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처럼 후회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어떨까? 굳이 돌이키고 싶지는 않지만 기회를 얻는다면 가지 않은 길의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우리의 삶은 확률이지만 경험이 누적되는 방향성을 가지는 점에서 양자역학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정해진 운명을 모른 채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 만들고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누적치에 따라 운명지어진 궤도를 벗어나는 인간의 삶에 만족한다. 노라 역시 완벽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선택한다.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과연 다른 세계에서 살지 못한 삶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건 현재의 삶이다. 다른 삶에서 어떤 관계로 만났든 주변 사람을 아끼고 관심을 주련다. 그보다 우선적으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을 선택한 나를 사랑해야지. 다른 세계에서 사는 나를 발견한다면 또 그 삶에 집중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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