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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Oct 15. 2022

향긋한 사과 향? 썩은 사과 냄새?

직장인 철학자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기브 앤 테이크》에서 세상에는 주는 사람(기버, Giver), 받는 사람(테이커, Taker) 그리고 중간에서 주는 만큼 받으려 하는 사람(매처, Matcher)의 세 부류가 존재한다고 알려줍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나 읽지 않았더라도 지금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오를 겁니다.


저는 원래 기버였는데 준 만큼 돌아오지 않으니 살짝 눈치를 보는 매처로 변한 것 같아요.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선 아직은 확실히 기버입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늘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편하게 이해할까? 어떻게 하면 상대의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까?'를 고민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니까요. 이건 바꿀 수 없는 천성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품앗이에서는 매처입니다. 처음엔 퍼주는 기버였다가 테이커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어요. 일을 똑같이 나누어서 하기로 했는데 제가 먼저 끝냈다면 손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그 미진한 사람이 고의로 저 같은 기버를 이용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더 이상 호갱이 될 순 없었죠. 그래서 처음엔 매처의 입장을 유지하다가 상대가 최소한 테이커가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그 사람에게 기버가 됩니다. 상대가 진상 테이커라면요? 소심한 저는 그 사람을 피합니다. 누구는 테이커를 응징까지 한다고도 하지만 그런 배포는 없습니다.


애덤 그랜트가 전 세계 다양한 문화와 업종에 걸쳐 30,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은 매처(56%)였어요. 의대생 성적, 영업의 매출, 공학자의 성과를 보았을 때 저성과자는 기버였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많이 도와주다 보니 시간과 에너지 부족으로 자기 일을 완수하지 못했어요. 기버가 저성과자라면 누가 고성과자일까요? 그는 기버가 성공한다는 역설을 주장하는데 어떤 일, 직장에서든 기버가 고성과자였다고 합니다. 즉, 기버는 저성과자일 수도 혹은 고성과자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주변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반응합니다. 주변 동료가 나눔에 인색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들면 저처럼 위기의식이 발동하여 내어놓지 못합니다. 과거 지식 경영 시스템이 실패한 원인도, 정보를 한곳에 모아 공유하겠다는 취지로 플랫폼을 만들었으나 아무도 자신의 노하우를 시스템에 업로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속은 텅 비고 겉만 번지르르한 고철 더미로 남는 거죠. 반면 리눅스(Linux)가 유닉스(Unix)보다 더 인기 있는 운영체계가 된 것이나 오픈 소스의 성지인 기터브(GitHub)의 유행은 나눔과 공유로 성장하려는 기버 덕분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중요한 본성에 증여가 있다고 봅니다. 증여는 상대방에게 주는 행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 《미치게 친절한 철학》 중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증여의 이유를 부채감이라고 꼽습니다. 받을 때의 기분 좋은 부담이 부채감으로 전환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증여가 생겨난다고. 이런 증여로 폐쇄적인 집단이 개방적으로 바뀌어 다른 집단과 호혜적 관계를 형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혜적 관계는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관계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순간 증여는 순삭이죠. 바보가 아닌 이상 평생 퍼주기만 하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나눔과 공유가 조직 문화로 정착될 때 동료들은 기버가 됩니다. 사회 구조가 인간을 만든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조직 문화가 기버을 살립니다. 내 시간과 노력이 건강한 조직 문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작은 칭찬과 인정에서, 주는 것 자체로 기쁨을 누립니다. 싱싱한 사과 향으로 가득한 회사는 구성원끼리 주고받는 관계에서 싹틉니다.


한편, 회사의 구성원을 기버로 가득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썩은 사과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애덤 그랜트는 강조했어요.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프리 라이더(Free Rider)와 같은 테이커는 극협이죠. 동료와 부채감과 증여가 오가는 호혜적 관계가 만들어져야 회사조직 문화도 튼튼합니다. 테이커로 가득한 조직에서는 썩은 사과 냄새 진동할 것입니다.


썩은 사과 하나 때문에 마음고생하다가 싱싱한 사과로 가득한 회사로 옮겨왔어요. 힘겨운 회사 생활을 지탱하는 힘은 동료입니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는가?'가 지구력을 결정합니다.


코 평수를 넓혀 호흡해 보세요. 여러분의 회사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나요? 향긋한 사과 향인가요? 아니면 썩은 사과 냄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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