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환합니다
'소피'라는 단어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네이버에 검색하니 다양한 의미가 있네요. 어학사전에서 소피(所避)는 가장 먼저 '오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 대표로 나오고, 두 번째 소피(小皮)는 제분하여 체에 쳐지지 아니한 뭉친 기울이네요, 세 번째 소피는 경북 방언으로 소를 잡아서 받은 피로, 식어서 굳어진 덩어리를 음식의 재료로 쓴다고 알려줍니다.
통합검색으로 나무위키에서는 Sophie 여자 이름인 소피아의 프랑스어권 변형,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마인크래프트의 건축을 주로 하는 인터넷 방송인, 그리고 우리의 로망 소피 마르소도 보입니다. 연령대에 따라 '소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다를 것 같아요.
추억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좀 노티 나지만, 먹을 게 정말 없었어요. 과자는 먹어본 적도 없고, 아이스크림(하드)은 정말 귀해서 사 먹을 수도 없었어요. 간식이라면 엄마가 밥에 넣으려고 삶아둔 보리쌀 정도였습니다. 엄마 몰래 한 주먹 쥐어먹고 놀았더랬죠.
이런 저에게 엄마가 장을 보고 올 때면 사 온 특별한 간식이 있었는데요. 엄마가 시장에서 집에 오면 얼른 뛰어가 장바구니를 펼쳐 꺼낸 그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해서,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던 향긋한 최애 간식이었답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깜박하거나, 돈이 없어 사 오지 못하면 그 이름을 외치며 엉엉 울었답니다.
정말 특별한 간식은 바로바로, 소피입니다. 그러니까 어학사전에서 세 번째 의미인 "소를 잡아서 받은 피로, 식어서 굳어진 덩어리"입니다. 정말 설마 진짜로 소의 피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이름이 소피인 프랑스 간식 같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정말 맛있었거든요. 지금은 돈 주고도 못사는 붕어빵 같은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었을까요? 중학생이 되어서였을까요? 어쩌면 사춘기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맛난 간식이 소의 피, 선지라는 걸 알고 경악했습니다. 그때도 울었을 겁니다. 끔찍한 음식을 저에게 준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순간 최애 간식 소피가 징그럽고, 냄새도 끔찍한, 딱딱한 돌덩이로 변했습니다. 그 이후 선지는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못먹어요.
오히려 어릴 때 엄마가 미꾸라지를 다듬는 걸 보고 기겁해 먹지 못한 추어탕은 어른이 되어 먹습니다. 꿈틀대던 미꾸라지가 여전히 불쌍하지만 엄마의 권유와 협박에 못이겨 막상 먹어보니 맛있더라고요. 엄마가 직접 만든 추어탕이 정말 맛있었는데, 몇 그릇밖에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식당에서 사먹어야 해서 아쉽긴 합니다만.
요즘은 선지를 어린 시절처럼 덩어리로 팔지는 않고, 선짓국에서만 볼 수 있는데요. 국으로 끓여서 그런지 초콜릿 색깔이 아닌 더 짙은 검은색에 가깝고 냄새도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먹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느낌 그대로, 하늘에 계신 엄마가 장바구니에서 따뜻하고 촉촉한 소피를 꺼내 저에게 먹어보라고 권한다면, 그 맛은 아마도 달콤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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