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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Jun 23. 2024

인간이해 6_심리적 인간

코끼리(시스템 1)와 기수(시스템 2), 제한된 합리성

Hans Zimmer - Inception: Time 

사회심리,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의 진실 중 하나는 인간의 마음이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때로는 그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일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의 수많은 마음을 추상화하고 단순화하여 감정/직관과 이성/추론이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 본다면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좀 더 생생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광활한 숲에 산불이 났습니다. 당신은 그 숲에 산불을 잠재우기 위해 투입된 정예 소방대원입니다. 최신식 장비를 갖추고 산불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방대원 팀 십수명이 감당하기엔 화마가 너무 강했습니다. 오히려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여러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제 다시 첫번째 질문과 관련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감정/직관과 이성/추론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꽤 오랫동안 이어져온 논쟁입니다. 


 플라톤은 이성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대화록 『티마이오스Timaeos』에서 감정은 이성의 하인이며 또 오로지 이성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들은 인간의 신성한 머리가 이 소란스러운 몸과 감정이라는 ‘어리석은 조언자’로부터 약간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게 그 중간에 목을 만들어 달아주었습니다.[1]


 그의 생각은 칸트, 나아가 프레데릭 테일러와 같은 ‘합리주의’ 사상 – 테일러리즘도 큰 틀에서 합리주의 사고방식의 하나입니다 – 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합리성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이며,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성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논쟁적 질문에 있어 미 정치인이자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이성이 감정의 주인이라는 합리주의 모델과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놨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성과 감성은 서로 독립적인 공동통치자입니다. 예컨대 원을 정사각형에 접하는 문제나 혜성의 궤도를 따지는 문제와 같은 것은 머리, 즉 이성이 다루는 영역입니다. 동시에 감정이 간섭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한편 공감, 자비, 은혜, 정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가슴의 영역입니다. 때문에 머리가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윤리나 도덕 역시 인간의 행복에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가슴에서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다른 주장이 또 있을까요?


 상대적으로 소수집단에 속했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감정이 이성의 주인 역할을 하는 속성을 가진다는 답 역시 존재했습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다.”[2]


그는 이성이 감정이 선택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찾아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입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감정, 직관에 따라 결정하고 사후에 그 이유를 합리화, 정당화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현대 과학은 무엇이라 답할까요?


 자, 다시 산불 현장으로 돌아가봅시다. 여러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불길과 바람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요? 대부분은 곧장 아직 불길이 닿지 않는 능선으로 전력을 다해 뛰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도망가다 뒤돌아서서 주변에 맞불을 지르는 동료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아니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1949년 미국 몬타나주, 산불을 잡으러 맨굴치MannGulch 협곡에 소방대원 15명이 낙하했습니다. 낙하산 소방대원이 투입되는 산불은 통상적으로 쉽게 통제가 가능한 초기 산불로 그들의 임무는 비교적 간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그와 달랐습니다. 대장이던 와그너 닷지Wagner Dodge는 불길이 협곡을 넘어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불길과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도망쳐야 했습니다. 닷지는 소방대원들에게 능선을 따라 불길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하라 명령했습니다. 10여분간 그들은 달렸습니다. 비극적이게도 화마는 그들보다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대원들과 불길의 간격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장은 대원들의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뒤돌아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선 두 팔을 흔들며 그곳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가진 장비를 버리고 뛰어오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행동에 대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대원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소방대원이 장비를 버리라니? 게다가 불이 오는데 도망치다 말고 불을 지른다고?’ 대원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불길에서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3명뿐이었습니다. 1명은 대원들이 미쳤다고 생각한 소방대장 와그너 닷지였습니다. 그가 불에 맞서 불을 지른 것은 그가 나름의 경험과 즉흥적인 임기응변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거센 불길이 덮치기전 자신 앞에 있는 풀을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미리 태워버림으로써 불길의 강도를 누그러뜨려 안전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닷지는 물로 손수건을 적셔 입을 막은 다음 재만 남은 공간에 엎드려 15분을 버텼습니다. 남은 생존자 2명은 순전히 체력과 운이 좋은 경우였습니다. 불길의 추격을 가까스로 따돌리고 불길보다 먼저 풀이 없는 큰 바위능선에 다다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도망쳤던 나머지 12명은 안타깝게도 화마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닷지가 취했던 ‘미친 행동’ 두개 중 또다른 행동 – 장비를 버리라 외치고 자신도 그리한 것 – 도 한번 살펴봅시다. 맨굴치와 유사하게 산림소방대원이 거대한 산불을 피해 도망치다가 미쳐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을 보면 그 사망원인 중 하나가 ‘장비’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94년 콜로라도주의 스톰킹 산에서 일어난 불길에서 14명의 소방대원이 비슷한 형태로 화를 당했습니다. 그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원들이 장비와 백팩을 버리고 이동했을 경우 약 15~20% 더 빠르게 불길을 피해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삼림국(U.S. Forest Service)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소방대원들이 백팩과 장비를 버리고 이동했다면 불길을 피해 능선까지 무사히 다다랐을 것이다.”


 한 화재의 생존자는 ‘자신이 장비를 버릴 때조차 그것을 어디에 불길을 피해 보관할 것인지 두리 번 거리다 시간을 낭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사실 소방대원이 소방장비를 자기 몸처럼 여긴다는 것은 평상시 자신의 역할, 책임 완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런 장비를 버린다는 것은 당연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조직심리학자 칼 웨익Karl Weick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소방대원이 자기 장비를 버린다는 것은 곧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존재론적 위기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방대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산불을 피해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성적 추론이라면, 소방대원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장비를 내던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다시 이성과 감성의 관계에 대한 논쟁의 현장으로 돌아가봅시다. 


 이번엔 한 인지심리학자가 비교적 최근 수행한 실험을 들여다봅시다. 피터 요한슨Petter Johanson 스웨덴 룬드 대학 교수는 우리가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데 우리 스스로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실증적인 답을 구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4]


 연구팀은 스웨덴의 마술사 단체를 만나 카드 바꿔치기 마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간단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인물 카드를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인 사진을 선택하게끔 한 다음 그 선택과는 다른 사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그리고서 사람들이 그 카드가 자신의 선택과 다르다는 것을 언제 인지하는지를 관찰하려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자기가 선택한 카드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 카드를 선택했나?’라 물었을 때 (카드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냈습니다.


“음.. 제 생각엔 이 사람이 다른 쪽 사람보다 약간 더 순수해 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웃는 얼굴이라서요, 제 생각에는요.”

“재밌는 사진이에요, 제가 사진작가인데 빛이 이렇게 비춰 보이는 사진을 원래 좋아해요”

 

실험자가 사진을 수차례 바꿔치기 하며 계속 물어봐도 참가자의 약 80%가 속임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원래 선택이 아닌 엉뚱한 사진에 대해 자신의 선택 이유를 가져다 붙였습니다. 연구팀은 그럼 이런 현상이 조금은 신중한 판단을 요하는 도덕적,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도 나타나는지를 더 봤습니다.


 연구팀은 스웨덴 선거 가상의 선거 나침반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길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간단한 정치 설문조사에 응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진보, 보수 두 정당 중에서 어디에 투표할지 의사를 밝히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에 12개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설문지에 답을 쓰면 그 답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왜 당신은 유류세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들이 끝나고 나면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분석지에 사람들의 답변을 점수로 기록해 그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한번 투표 의향을 밝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속임수가 있습니다. 답을 표시할 때 그들이 말한 것과 다르게 표기한 것입니다. 다른 답안을 미리 숨기고 있다가 설문지를 돌려받을 때 참가자의 답변지 위에 그것을 붙이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참가자의 행동 패턴은 사진 실험과 유사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처음 답변한 것의 90%를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실험 윤리의 원칙에 따라 실험 후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고 참가자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으로 다시 바꿀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명확한 이유’를 갖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바뀌었음을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그 선택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바뀐 선택을 선호하게 되며 그게 좋다고 믿어버립니다.


 감정/직관과 이성/추론 간의 관계에 대한 오랜 논쟁에서 적어도 최신 과학은 흄Hume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일련에 소개한 사례들은 모두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인간은 다분히 심리적입니다.[5]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일련의 과학적 통찰을 토대로 감성적 직관과 이성적 추론의 관계를 기수(이성적 추론)가 코끼리(감성적 지관) 등에 올라타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기수가 코리리의 시중을 들어주도록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 입니다.


 유사한 이야기를 조금 다른 용어를 써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을 시스템 1과 2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시스템 1은 직관적 생각입니다. 이는 매우 자동적이고 빠른 속도로 이뤄지며 눈에 보이는 것과 감각으로 느끼는 것, 자신의 습관을 최대로 동원하는 단계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큰 단위로 분류해 편견을 갖고 봅니다. 시스템 1은 일상적 상황에서 우리가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소방대원을 죽음으로 몬 것처럼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소방대원이 맞불, 그리고 장비를 버리라는 지시를 ‘추론하지 못한 채’, ‘미친 짓’이라 판단한 것은 시스템 1이 매우 빠르고 강력히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2는 항상 시스템 1보다 늦게 작동합니다. 정확하고 세밀한 이 단계에서는 고차원적인 정신적 활동이 이뤄집니다. 시스템 2는 합부로 쉽게 분류해 단정하지 않는 체계입니다. 귀찮아도 세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사고할 의지만 있다면 시스템 2 덕분에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가 원래 바랐던 합리적 이상, 목표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스템 2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너무 느리고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습니다.


 스탠포드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인지적 게으름’을 가진 존재입니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이를 ‘제한적 합리성’이라 표현했습니다.)그런데 사실 인간의 이런 인지적 게으름은 진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적어도 이제까지 인간은 이런 식으로 살아남아 진화했습니다. 우리 조상이 만약 야생에서 맹수를 만났을 때 시스템 2부터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즉 차분히 앉아 로댕rodin의 <생각하는 사람> 처럼 고민한 후 도망쳤다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애덤 그랜트는 이런 인간의 인지적 게으름은 의무적으로 시스템 2를 발달시켜야만하는 ‘과학자’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본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과학자는 자기가 즐겨 사용하는 이론을 성스런 복음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사려 깊은 비평을 신성모독이라며 배척하기도 한다. 이럴 때 이 과학자는 이미 과학자가 아니라 전도사이다. 또 자기의 이론이나 견해가 정확성이 아니라 인기에 따라 출렁거리도록 내버려둘 때는 정치인이 된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보다는 비판과 폭로에만 몰두할 때는 검사가 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_Albert Einstein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으로 물리학을 뒤집어 놓은 뒤에 (또다른 물리학의 혁신이며, 또 정설이 된) 양자역학에 반대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우리가 진화론적으로 혹은 선천적으로 갖는 ‘인지적 게으름’이 때로는 산불의 소방대원처럼 결정적인 오류와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높아 질수록 인간의 인지 과정에 시스템 1이 작동할 가능성 높은데, 기존에 우리가 가진 관습, 문화가 변화한 세계,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비극을 맞이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진화론의 메커니즘을 존중하면서도 결정적인 오류 혹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지 체계가 우리 안에서 적시에 작동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조너선 하이트의 비유를 가져와 기수와 코끼리를 살펴봅시다. 인간의 뇌가 코끼리(시스템1) 등에서 기수(시스템2)를 내리고 어설픈 신참 마부를 앉힌 일은 없었습니다. 오리려 기수 역시 그 자리에 앉아 서로 진화해 나갈 수 있었는데 기수가 어떻게든 코끼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수의 역할은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미래를 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능력(우리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진 대안적 시나리오를 사전에 곰곰이 따져볼 수 있다.)은 코끼리가 지금 이 순간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줍니다. 또 기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섭렵할 줄 아는데 이 능력은 코끼리가 자신의 목표에는 한발 다가가고 재앙은 슬쩍 비키도록 도움을 줍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로 기수는 코끼리의 대변자 역할을 합니다. 이때 기수가 코끼리의 본심을 반드시 알 필요는 없습니다. 코끼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기수는 그것을 사후 조작하고 정당화하는 기술에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입장에서는 24시간 내내 일하는 이 홍보 회사를 등에 태우고 다닐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허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초개인’으로서 우리 안의 인진 체계를 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으로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첫 단계는 지금 이야기한 일련의 ‘제한된 합리성 혹은 인지적 게으름’의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애덤 그랜트는 이를 시작으로 우리가 습관적으로 ‘다시 생각하기’를 내면화 할 것을 제안합니다. 다시 생각하는 것은 지적인 겸손함에서부터, 즉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7] 일상에서 그러한 태도와 신중한 노력, 때로는 (인지된) 시행착오가 반복되어 쌓일 때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롭게 우리 안의 코끼리와 기수 관계를 정립하고, 결정적인 순간 좀 더 나은 직관을 발휘할(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References

[1] Plato. 1997. Timaeus. Trans. D.J.Zeyl. In Plato: Complete Works, ed. J. M. Cooper. Indianapolis: Hackett.

[2] Hume, D. 1969/1739-40. A Treatise of Human Nature. London: Penguin.

[3] Karl E. Weick, Sensemaking in Organization, Sage Publications, 1995

[4] Petter Johansson, TEDxUppsalaUniversity, 2016, 11

[5] 심리학자 데이빗 패트릭 호턴David Patrick Houghton은 그런 인간 속성을 반영한 용어로 ‘심리적 인간: 호모 사이콜로지쿠스homo psychologicus’라 표현했다. 호모 사이콜로지쿠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은 제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자이다.

-         인간이 소유한 정보는 완벽하지 않다.

-         인간의 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         행위자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대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 만족한다.

-         정보의 홍수 또는 정보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행위자는 다양한 인지적 지름길을 이용한다.

-         집단의 압력과 그보다 큰 사회적 압력은 행위자로 하여금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행위자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하기도 한다.

[David Patrick Houghton, Political Psychology: Situations, Individuals, and Cases, Routledge]

[6] 애덤 그랜트Adam Grant(이경식 옮김), 싱크 어게인Think Again, 한국경제신문, 2021

[7] ‘겸손’은 인지, 행동심리학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인간다운 인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태도다. 다니엘 캐너먼은 이를 ‘인식론적 겸손’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는 우리가 앞서 복잡계를 대하는 태도 편에서 이야기한 ‘반 서재적 태도’, 무언가를 무턱대고 안다고 확신하기 이전에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추자 제안한 바와도 지속 연결되며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태도’ 중 하나다.


 자부심보다는 겸손함을, 확신보다는 의심을, 종결에 따른 신경 끊음 보다는 호기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이다.  캐럴 드웩 교수의 ‘마인드셋’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인지적 습관 역시 ‘의식적 훈련 deliberate practice’을 통헤 성장시킬 수 있다. 일련의 태도가 습관이 될 때 우리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직된’ 자동반사가 아니라 ‘열린, 유연한’ 대응을 자동반사(시스템1)로 활용할 수 있다.


행동경제, 심리학이 준 또 하나의 해법이 있다. 바로 ‘코끼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 의사에게 폐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설명하는 통계자료를 읽혔다. 이 중 수술의 단기 결과에 대한 설명을 두가지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각각의 무작위 실험집단에 읽혔다.


         1개월 후 생존율은 90퍼센트이다.

         1개월 내 사망률은 10퍼센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수술은 후자의 프레임(50%가 방사선 치료를 선호)보다 전자의 프레임에 있을 때(84%가 선택) 훨씬 더 인기 있었다. 위의 두 묘사는 논리적으로 같은 말이고 우리 안에서 시스템 2가 정상 작동했다면 어떤 문장이든 결과는 같아야 했을 것이다. 이는 카너먼이 인간은 어떻게 상황을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반응해 우리의 행동으로 반영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 수행했던 실험이다. ‘꼬끼리에 말을 거는 행위’는 바로 이 메커니즘을 응용하는 것이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이자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다니엘 카너먼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를 ‘넛지Nudge’라 표현했다. 넛지는 직역하면 ‘옆구리 찌르기’이다. 이는 인간의 ‘감정 프레이밍 효과’를 이해해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넛지의 핵심은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자유를 보장하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가능한 유익한 선택이 되도록 유도하자는 데 있다. 예컨대 회사는 불필요한 자원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복사기 기본 인쇄모드를 양면, 흑백으로 설정한다. 인쇄 형식을 언제든지 바꿔도 되지만 실제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리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다시 생각하는 법’을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의 상황을 이를 ‘넛징Nudging’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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