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그래도 삶을 이어 나가자.
나는 그렇게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내 부모님보다 먼저 갈 수는 없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내가 사라지고 난 뒤의 그 두 분의 슬픔을 죽어서도 감당할 수 없었다.
생전의 다른 악행이 아닌, 그 선택만으로 지옥불에 떨어지고도 남을거라..
더욱이 내가 먼저 떠나고 난 뒤, 남은 사람이 짊어질 짐의 무게를 헤아리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멀리서도 결코 안식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 동료는 혹여나 내가 바로 쓰러진 줄 알고
119에 신고를 한 상태였고 신림에서 건대입구까지 택시를 타고 오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형이었는데 전 직장에서부터 함께 해온 듬직한 동료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
신림에서 건대입구까지 먼 거리를 오는 그에게 감사함을 느낌도 잠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건국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시간은 12시가 조금 지나갈 무렵 즈음, 되었던 것 같다.
응급실로 향하는 길, 가게마다 술을 먹는 대학생들이 들어차있었고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나아가기가 어려웠지만 가슴이라도 부여잡고서
그렇게 무거운 몸을 조금씩, 조금씩.
평소였다면 오 분이면 되었을 거리지만
이십 분을 걸었던 것 같다.
신호를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걸을 때 잠시 머리가 핑 돌았다.
초록색 신호등 불빛과 도로의 헤드 라이트, 멀리 응급실을 알리는 붉은 빛까지
모두가 머리에 휘감겨 나를 땅 밑으로 잡아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으로 걸었고,
구급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건국대학교 응급실 표지판이 손에 잡힐듯 보였다.
응급실로 향하던 때에,
응급실 앞에서 서너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응급실과 장례식장은 생사의 인과였고
나의 갈림길이었다.
혹여나 바로 장례식장으로
실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등에 엎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심근경색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과 증상을 말하며 접수를 진행하였다.
겨울이 손짓하는 스산한 계절이었지만 식은 땀이 비오듯 흘렀다.
다행히 이전에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본 적이 있어 의료 정보가 남아있어 접수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식은땀이 몸을 적시기 시작했고 손이 벌벌 떨렸다.
코로나에 걸렸는지, 검사를 위한 수속을 밟고 격리실로 옮겨 침대에 누웠다.
심전도 및 혈압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를 수행한 뒤 수술을 해야 할 수 있으니 보호자를 요청했다.
본가가 전주였기에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고종사촌누나에게 연락하자 누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고종사촌이기에 걱정하였으나 다행히 병원에서 친누나로 알았던 지, 절차는 문제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수술을 위한 검사가 진행되었고 CT 등을 찍어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심근 경색은 아니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말하는 병명이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다.
대동맥 박리가 의심된다고 하였다.
당시 건국대병원에선 수술이 진행되고 있기에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침대로 다시 돌아가 수술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내 바이탈이 체크되기 시작했고 소변 배출을 위한 소변줄을 몸에 끼워 넣었다.
시간도 새벽, 몸도 피곤하기에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힘이 빠지며 잠시 눈을 붙일까 하는 찰나, 간호사 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주무시지 말라고, 환자분 주변에 죄를 짓기 싫다고.
지금 주무시면 못 깨어나신다고.
다시 못 깨어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잠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고등학생때 공부를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가슴의 통증과 잠을 뒤로하고,고종사촌매형이 오셔서 손을 잡아주었다.
고종사촌동생이라 안챙겨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누나와 매형은 나를 늘 살뜰히 챙겨주었다.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누었고 생일이 다가오면 미역국을 끓여 먹였다.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그 새벽에도 어김없이 제일 먼저 달려와 내 손을 잡아주셨다.
매형은 전주 본가에 연락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하셨다.
좀 전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말씀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지만
워낙 큰 일이라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하시면서 내 차게 식어가는 손을 꼭 잡아주셨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곡에 위치한 이대서울병원으로의 전원이 결정되어 구급차를 탔다.
마곡, 그리고 이대서울병원.
그래, 2년전 쯤 고객사미팅으로 마곡을 자주 지나다닐 때 보았던.
그 병원인가보구나.
건국대 응급실 전공의 선생님은 내 손을 꽉 잡아주시며 조금 더 버텨주길 부탁했고
새벽, 건대병원에서 마곡까지 내 삶을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