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한 노동.

by 단어

언제부터 우리는 노동 앞에 '신성한'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신성하다'는 말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신성하고 고결한'이라는 뜻이 있다.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이라는 말이 자꾸 마음속에 걸린다. 나는 어제도 노동했고 오늘도 했으며 내일도 할 예정이다. 우리 집의 가장인 아버지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노동을 한다. 그뿐이겠는가. 엄마도 옆집 아줌마도 예승이도 하하도 랄라도 유도 수혁이도 세복이도 영비도 너구리도.....내가 아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 노동을 한다. 오늘만 하는 것도 아니고 사는 내내 한다. 노동을 해야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찜닭도 사 먹고 친구들과 여름휴가도 가고 연애도 하고 가끔 효도도 하며 살 수 있다. 이렇게나 우리와 가까이 있는 노동이 어째서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신성한 노동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며 한 주를 보냈다. 우리는 사는 동안은 노동과 멀어지고 싶어도 멀어질 수 없는 운명이고, 그러나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 또한 노동이기에 어떻게든 노동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노동에 대해 오래 생각한 까닭은 아무래도 살면서 이렇게나 오래 노동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일명 나인 투 식스의 삶을 살고 있다. 7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장으로 향한다. 옷장을 열면 너무 달라붙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옷들밖에 없다. 1초 정도 고민한 뒤 큰방으로 향해 엄마의 옷장을 연다. 그곳에는 누가 봐도 도서관 사서 선생님처럼 보일 단정하고 참한 옷들이 걸려있다. 그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옷을 골라서 입는다.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하하에게 받은 가방을 메고서 노동을 하러 간다. 나의 노동 현장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정말 성실하고 착하고 순수해요. 그런데 일까지 야무지게 잘한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장착한 채로 선생님들께 인사를 건넨다.


도서관은 꼭 백조 같은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조신해 보이지만 그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도서관 안에서는 사서 선생님들의 땀나는 고군분투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곤란한 점은 도서관의 실체뿐만이 아니라 나의 실체도 이제야 알았다는 점일 것이다. 19살의 김예진은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말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며 관심받기를 즐기는 사람인지 몰랐기에 조용하고 차분한 도서관이 아주 적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바삐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하루 종일 묵묵하게, 선한 미소만 지으며 책 정리를 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나의 신분은 근로생도 알바도 아닌 실습생이다. 실습생이란 무엇이냐? 지금까지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직접 일해보며 익히고 배우는 사람이라는 핑계 아래 이루어지는 공짜 노동력이다. 내가 아무리 머리카락 휘날리며 일을 해도 그 노동에 대한 대가가 없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정말이지 매 순간 힘을 빠지게 만든다. 우리가 힘들고 치사하고 피곤해도 노동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이 유일한 목적이 없는 실습생에게 노동이란 그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정리해도 끊이지 않는 샘물처럼 생겨나는 책을 보며 무지막지 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퇴근하려면 5시간이나 남았다는 사실도, 주말이 오려면 3일이나 남았다는 사실도,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끝없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그런데 이 모든 노동의 대가가 열정이라는 사실도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다가온다. 그럴 때면 두 사람을 떠올리곤 했다. 한 명은 28년 동안 이렇게 살고 있는 아버지와, 한 명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슬아작가님이다.(슬아작가님은 과거에 미술 학원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누드모델로 활동하셨다) 눈 앞에 펼쳐진 셀 수 없는 책들을 보며 이들의 마음을 자주 떠올렸다. 28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도,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일도 나에게는 아주 무지막지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매일 출근길에 나처럼 노래를 들을까 아니면 라디오를 들을까. 아버지가 진짜로 하고 싶은 노동은 무엇이었을까. 28년의 노동은 아버지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좋은 쪽일까 나쁜 쪽일까. 나의 몸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찬찬히 살펴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혼자서 몰래 눈물 흘리고 추스르는 몇 번의 시간 동안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선택한 노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들을 생각하다 보면 정말 노동이 신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아무리 짐작해 봐도 이들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의 노동이 공짜라는 사실이 억울해질 때면 내가 공짜로 받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공짜로 받으며 살았는가. 매일 나의 손에 들려지는 엄마표 도시락, 등에 메고 오는 하하가 준 가방, 엄마의 배웅, 친구들의 응원, 열심히 움직이는 다리, 땅에 딛고 서 있는 발, 아름다운 친구들과 글을 볼 수 있는 눈, 세상에 넘쳐나는 천재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 오늘을 버티게 하는 내일…. 생각할수록 자꾸 생겨나서 나는 순간 숙연해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는데 공짜가 이렇게나 많을 일이란 말인가. 그럼 나는 나의 공짜 노동을 더 이상 억울해할 수가 없다. 억울해할 수 없음에 억울해하며 신성한 건지 무지막지한 건지 도통 모르겠는 노동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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