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였던 사람의 혼자.

by 단어

복학생에게 학교란 어떤 곳인가. 익숙하지만 낯설고 빨리 뜨고 싶은 동시에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무엇보다 친구가 없다. 혼자일 때 편안한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혼자일 때 위태로운 사람'은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암울하게 다가온다. 학교에 가는 유일한 이유였던 점심과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같이 고민해 줄 친구가 없다면 대체 어떤 이유로 학교를 가야 하는 걸까.


복학생은 학교를 간다. 오늘 하루, 아니 어쩌면 일주일 내내 혼자일지도 모른다. 함께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는 게 얼마나 뻘쭘한 일인지 알기에 조금의 각오가 필요하다.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지하철을 탄다. 버스를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마침내 강의실에 도착한다. (복학생이 다니는 학교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강의 시간보다 10분에서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 딱 맞게 갔다가는 혼자서 교수님 바로 앞에 앉아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적당히 교수님 눈에 띄지 않지만, 강의실 앞의 ppt 자료는 잘 보이는 곳을 골라서 앉는다. 무심한 듯 아이패드를 펴고 강의 자료를 켰다 껐다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점점 학생들이 들어 온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 처럼 보여야 한다.


물론 진정으로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은 저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혼자일 때 위태로운 사람이므로 괜찮아 보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심하게 다리를 꼬고 옆은 절대 보지 않고 폰과 아이패드를 번갈아 가며 응시한다. '무심하게'라는 형용사가 이 글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는 무심한 듯 행동하는 게 혼자인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이때 카톡 할 친구가 있다면 더욱더 좋다.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할 수 있을뿐더러 뻘쭘함이 조금 줄어든다. 학교 강의실에서는 내가 실은 모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별로 들키고 싶지 않다.


모퉁이 인간이란 이슬아와 문상훈의 대화에서 알게 된 말이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간의 중심과 모퉁이 중 모퉁이에 속한 인간들, 혹은 속해 본 인간들을 '모퉁이 인간'이라고 일컫는다. 이제는 모퉁이에서 걸어 나온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모퉁이 인간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약간의 슬픔과 약간의 찌질함과 약간의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인간들. 티 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내 속의 모퉁이를 갖고 있는 인간들. 복학생은 그런 모퉁이 인간을 보면 반가움과 애틋함을 함께 느끼지만, 학교 강의실에서는 모퉁이 인간이 아니라 중심 인간이고 싶다. 이곳에서는 복학생의 '모퉁미'가 미(美)로 치부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복학생은 어떻게 모퉁미를 잘 숨기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나. 그건 역시 친구들 덕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복학생은 조금씩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친구들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이들과 함께 있으면 각자의 매력이 조금씩 새어 나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키 큰 친구와 있으면 나도 키 큰 사람으로, 똑똑한 친구와 있으면 나도 똑똑한 사람으로, 웃긴 친구와 있으면 나도 웃긴 사람이 된다. 덕분에 복학생은 조금 더 우쭐해진다. 세상에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다다익선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복학생의 경우 친구는 다다익선에 속한다. 같이 걷는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복학생의 발걸음은 더 당당해진다.


뼛속까지 모퉁이 인간인 복학생은 친구가 없으니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연습을 해보자!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 같은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인가! 저 학생도 혼자인 것 같은데 말을 한번 걸어볼까! 같은 생각을 주로 한다. 혼자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보다 친구를 사귀는 게 더 쉽게 느껴진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라는 니체의 문장은 복학생에게 이렇게 읽힌다. "친구가 없다면 열 걸음밖에 못 나아간다." 복학생은 오늘도 열 걸음으로 학교로 향한다.



*여기서 나오는 복학생은 복학생 모두를 뜻하는 말이 아닌, 이 글의 주인공을 특정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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