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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Jan 16. 2022

영화 <십개월의 미래>, 카오스 속의 너와 나의 이야기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현실


나는 세상을 바꿀 프로그램 개발자, 29살 최미래
그런데 어느 날 이름 앞에 몇 글자가 더 붙었다. '최 악의 미래'로...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언니가 앞뒤 설명 없이 그저 프로그래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AI개발자의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영화를 틀었다. 처음엔 '무슨 청춘 드라마 이야기인가?'하고 생각을 하다가 미래의 이야기를 보다 보니 주인공의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가끔 웃었고, 가끔 슬프면서도 마음이 아팠고,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속상하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29살 최미래의 이야기를 했지만 때로 20대의 나 이기도 했고, 30대의 나 이기도 했다.



숙취가 일주일간이나 계속돼서 약국을 찾은 미래는 약사랑 자신의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약사의 딸이 동일한 증상으로 임신을 판정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혹시나 해서 이야기한다고 귀띔을 해주어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온다. 딸이 생리가 끊긴 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어리석다는 이야기에 크게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확인을 위해서 임신 테스트기를 15개나 확인해보고 모두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경악을 하며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당혹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럴 리가 없다면서 현실을 부정한다. 난 미래가 하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해서 영화를 보면서 '진짜인가? 그럴 수도 있나?'하고 깜박 속았다.




병원을 찾아가니 엄숙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산부인과 전문의 옹중(백현진)은 99% 임신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한다. 백현진 배우의 근엄하고 진지하면서도 선을 지키는 연기가 압권이다. 이 영화의 씬 스틸러 중 하나로 꼽는다.

미래의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이야기에도 하나하나 대답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환자의 말을 무시하기도 하는 일부 의사들의 태도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물론 요새는 그런 의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환자를 귀찮아하는 의사가 아예 없지는 않다.)


미래 : 이게 인간은 확실한 거죠? 외계인 아니죠?



외계인 아니죠?? 라니... 환자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의사라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난감하다. 의사는 평점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해 아이와 산모에 대해 설명하고, 산모 수첩을 분노에 찬 산모 대신에 친구에게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미래는 그날부터 머릿속 복잡하다.

예정되지 않은 아이를 지우는 것이 맞는 건지, 이렇게 된 거 그냥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는 게 맞는 건지. 남자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자신이 아직 정리가 안됐으니까.



미래의 임신 소식을 들은 남자 친구 윤호는 반색하며 좋아한다. 안 그래도 삶에 희망이 없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삶에도 뭔가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 것만 같다.

무책임한 남자들도 있는데 기뻐하면서 그녀에게 이제 부모님들께 인사도 하고 결혼하고 같이 살아보자고 하는 그의 태도에 그녀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 안정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계단씬에서 미래에게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꽤 감명 깊었다.



무심하지만 미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극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조언하는 친구 역 김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며 미래가 가장 의지하는 존재이다.

계속 고민에 빠져 있는 미래에게 김김의 조언은 들리지 않는다.

나쁜 남자에게 빠지면 친구가 아무리 조언해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미래는 넋이 나가 있다.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안위를 걱정하기에 바쁘다.



가장 열 받는 장면 중 하나는 미래와 회사 대표의 대화였다.

자신이 영혼을 갈아서 참여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고,

이에 따라 중국으로 사무실을 옮겨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출산일은 다가오고 임신 사실은 회사에 알리지 않은 미래에게 대표는 함께 중국에 가자고 제안하지만 미래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대답을 미룬다.

남자 친구와 중국에 가는 문제에 대해 함께 중국에 가보자며 설득해보지만 남자 친구는 중국에 가기 싫다고 말다툼을 하게 되고, 미래는 혼자라도 가겠다는 생각인지 대표에게 중국에 가겠다고 말한다.

대표는 잘 생각했다고 당연히 가야지라고 말하며 같이 잘해보자고 격려하는 듯 보이는데

이어서 미래가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해야 한다고 하자 바로 태도가 돌변한다.


대표 : 계약기간까지만 일하는 걸로 하자. 넌 왜 날 나쁜 놈으로 만드니???

미래 : 네?!! 제가요?



와....

이 부분에서 진짜 기가 막혔다. 미래도 기가 막힌 표정을 하며 "네?? 제가요??"라고 되묻는다. 억울하다.

화가 난 미래가 자신의 공을 하나하나 따지며 자기가 다 영혼을 갈아서 했는데 계약기간까지만 사용하고 끝내는 거냐고, 그냥 대표님이 나쁜 놈이신 거라고 시원하게 이야기하며 오늘 나가겠다고 하고 방을 나간다.

자신의 자리에 있는 몇 가지 물품만 챙기고 외장하드를 박살을 내고 나와버리자 영문을 모르는 주변 동료들은 그저 놀라며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대표와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자신은 그저 똑같은 부속품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미래가 아이가 생긴 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녀는 원치 않았던 임신이었기에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해서 알아보고 상담실장과 만난다. 거기서 임신 기간에 따라 금액이 바뀐다면서(시간이 갈수록 비싸진다) 바로 타닥타닥 아이의 생명 값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담실장의 모습이 아주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미래가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자, 상담실장은 자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마치 공포영화 같았다.


상담실장 : 생각하면 시간이 사라져요...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잘 나갔던 타던 언니의 출산 후에 겪는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출산을 한 언니의 으리으리한 집으로 찾아간 미래는 현실과 마주한다. 양쪽 가슴에 유축기를 달고 얼굴이 파리해진 그녀의 모습은 거의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모습에 모든 여자들이 이렇게 비참해져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도망... 아니 출장(속마음이 드러났다)을 갔고, 자신은 왜 우는지도 모르는 아기를 안고 죽을 둥 살 둥 하는 모습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신이 모두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 버렸다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그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고 충격적이라서 아이를 낳은 모든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충격적인 장면은 중국으로 가자고 하자 남자 친구가 싫다고 하면서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 


윤호 : 넌 엄마잖아!


라고 외친 부분이었다. 미래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되묻자 당황한다. 자신은 아이의 아빠가 아닌가?

그전에 아이가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넌 엄마니까 아이를 키우고 내 뒷바라지해야 되니까 난 중국에는 못 가겠어 라니. 정말 80년대 사고방식도 아니고 너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면모였다.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의 남자 친구의 모습과 중국에 가자고 할 때의 모습이 너무 상반되었다.



세 번째는 채식주의자인 남자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고기를 권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자식의 재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며 양돈가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강요하는 모습, 그건 폭력이다.

그리고 윤호의 동업자의 사기로 감옥에 갇히게 되자 보석금을 조건으로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며 밤마다 악몽을 꾸며 힘들어한다. 지방에 있는 양돈가에 미래가 방문하자 남자 친구 아버지는 미래에게 이제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남자 친구는 억지로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뱉으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시어머니는 자신에게 부엌으로 와보라며 하고 새하얀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선물한다.

미래는 그런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광기에 싸여 미래를 잡으러 오는 윤호의 모습을 뒤로하고 차를 몰고 가다가 전봇대를 박고 사고가 나고 만다.


다행히 아이는 잘 태어나면서 미래는 아이에게 "이제 우리 한번 잘해보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 카오스와 용기 있게 마주하는 미래의 진짜 성장담을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다루었다. 영화를 보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나도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웃어넘겨지지가 않는다.

차가운 현실에 마주하여도 모든 이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내가 당사자가 되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네이버 영화의 스틸컷을 사용했습니다 >






십개월의 미래 (The Months)

개요 : 드라마 | 한국 | 96분 | 2021.10.14.개봉

감독 : 남궁선

출연 : 최성은(미래), 서영주(윤호), 유이든(김김), 백현진(옹중), 권아름(강미)

제작 : K'ARTS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주)


< 네이버 영화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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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예고편

https://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aver?code=194666&mid=5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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