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만약에 결혼하고 나서 여자 친구가 게임 그만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몰래 할 건데."
"아.... 네...."
정 대리는 여자들이 왜 남자들 게임하는 걸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궁금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화면에 얼굴을 집중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고 나서 여자 친구가 게임 그만하라고 하면 어떻게 행동할까. 여기서 답을 얻었다. 몰. 래. 한. 다.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못하게 하니 안 보이는 데서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하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도 하루 종일 게임에 집중해서 만나도 항상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만날 땐 몰랐는데(알아도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나다 보니 나보다 핸드폰에서 울리는 게임 알람에 더 집중하는 듯 보였고, 그런 자잘한 것에 실망을 했던 지난 기억이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게임을 해야 하는 건지 따져 물었던 것 같고,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삐죽한 표정으로 나만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부메랑이 돌아와 나만 남자 친구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역시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
단숨에 읽히는 책의 흡입력에 놀랐다. 지금 베스트셀러이고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던데 과연 작가의 필력이 상당해서 책을 꺼내면 페이지가 훅훅 넘어갔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게임을 그렇게 종일 하는 이유가 뭐야?"
"재밌어서. 너도 해봐."
"어떤 부분이 재밌어?"
"일단 해봐. 해보면 알아."
"그리고 내가 게임하는 거 취미잖아. 나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그냥 이게 취미야. 네가 이해해줘. 내가 게임하는 동안 너는 너 취미생활 해. 나 쳐다보고 있지 말고."
남자 친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게임 못하게 하는 나쁜 여자 친구가 된 기분이다. 회사에서 일 안 하고 게임만 했다는 사람이 데이트할 때도 게임을 한다. 권 사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게임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남자 친구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냥 권 사원의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다.
남자 친구가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중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남자 친구의 어머니이다.
"아, 씨! 아이템 못 먹었잖아! 아오! 여보세요?"
"잘 도착했어? 궁금해서 전화했어."
"어, 잘 도착했지. 왜?"
"그냥 궁금해서 한 거야, 잘 도착했는지."
"어, 끊어"
어머니가 전화를 했는데 저렇게...
권 사원은 생각한다. 남자 친구가 게임하는 중에 자신이 전화를 했어도 저랬을 수 있겠구나. 아니다.
쭉 그래 왔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억지로 통화를 이어가다가 빨리 끊기만을 기다렸겠지.
3년 넘게 나는 이 남자를 왜 좋아했을까. 무엇 때문에 결혼까지 생각했을까. 그냥 결혼할 나이가 돼서?
그 정도 사귀었으니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 남자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것 같은 불안감?
내가 상대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면 모든 것을 다 이해했을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기를 기대한 걸까. 내가 바뀌어야 했나. 내가 나를 바꾸기도 힘든데 남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인가.
뭐가 잘못된 거지. 누가 잘못한 거지. 자꾸 곱씹는다. 결론 없는 질문들만 맴돈다.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송희구) >
와... 내가 받았던 무성의한 남자 친구 전화도 권 사원의 남자 친구와 동일한 이유였다니.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남자가 게임을 하면 싫은 이유는 그 남자가 내 남자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고, 게임 때문에 나와의 만남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게임에만 한눈을 팔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을 피워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것도 아니니 나서서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 나만 속 좁은 여자가 된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진지한 이야기를 할라 치면 게임 알람이 울리는 것이다.
나도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지는 않다.
예전에 <세븐 나이츠>라는 RPG롤플레잉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도 길가다가 전봇대에 머리 부딪칠 뻔한 적도 있고, 앞을 안 보고 핸드폰만 보다가 행인과 부딪히기도 하고, 버스를 놓치기도 했다.
캐릭터 레벨업을 위해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고, 특별 아이템 지급으로 피케팅처럼 터치를 했던 적도 있다.
한번 경험을 하고 나니, 이렇게 살다가 사람이 폐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현질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엄청난 아이템을 보유한 다른 유저들 때문에 점차 전투력을 상실하는 불쌍한 내 캐릭터를 보면서 게임은 현질 없이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RPG가 끝이 났고 게임 어플을 지웠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게임 어플을 깔지 않았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래서 사람들이 게임에서 못 벗어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게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거겠지.
여가 시간에 일정 시간 동안 게임을 즐길 수는 있지만 그게 하루의 전부가 되는 건 싫다.
내 삶이 게임의 캐릭터 레벨로 판단되는 것도 싫다. 벗어나지 못하는 건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만 같고, 내가 삶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더더욱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과 만나기 싫다.
특히 부모님 또는 가족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게임하는 도중에 전화가 와서 받기 싫은 전화를 받듯이 '알겠으니 끊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전화를 받지 않고 게임을 다 하고 나서 전화를 하는 것이 맞다. 일이 있어 이제 전화를 한다고.
편한 사람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미래의 가족이 될 사람에게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게임하는 사람을 나의 연인으로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엄연히 나의 취향이니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아도 괜찮다. 뭐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0861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