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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Jan 09. 2022

잃어야만 소중함을 안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김다슬)


얼마큼 소중한지 알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소중한 존재를 잃어야 한다. 


부모님 자식에게 바란다. 공부 잘하고 성공하라고. 

아픈 자식을 둔 부모는 말한다. 공부나 성공은 상관없으니 건강하기만 해 달라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는 말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제발 돌려만 달라고. 


자식은 부모에게 바란다. 금수저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픈 부모를 둔 자식은 말한다. 부디 건강만 하시라고. 

부모를 여읜 자식은 말한다. 다 필요 없으니 제발 살아만 계시라고.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란다. 나한테 잘하라고. 

사이가 틀어지면 말한다. 예전처럼 돌아가면 좋겠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말한다.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곁에 있기만 해 달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어리석어야 진정한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달을까.

존재만으로 사무치게 감사하고 소중한 건데, 그 사실을 잊고 무슨 욕심을 그렇게 부릴까. 

꼭 모든 걸 잃어야만 알까. 

그때 가서야 절절히 깨닫고 땅을 치며 후회해야 할까.


어쩌면 신은 이러한 욕심을 괘씸하게 여겨서 제대로 깨닫기 전에 모든 걸 잃도록 정해둔 건지도 모른다.

가혹하게도 반드시 잃도록 말이다. 


-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김다슬) / 프롤로그 中 -


책을 폈다가 프롤로그부터 한방 먹었다. 

내 주변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보통 평소에는 누군가의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특별한 계기가 되어 누군가의 부재감이 온몸을 휘감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곁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고 하찮게 여기던 것들은 사실은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가장 굳건하게 지켜주곤 한다.  가족이 그렇고, 부모가 그렇고 자식이 그렇고 친구나 연인이 그렇다. 

그저 항상 곁에 있다고 소중함을 모르고 무엇인가를 바라고만 있다가 막상 그 존재감이 희미해지면 아쉬워한다. 우리의 욕심을 위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소중한 그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부재감과 함께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올해는 이러한 소중한 사람들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사랑으로 대해야겠다. 

사무치게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14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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