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몸은 알고 있는 것일까. 미국은 언제나 먼 곳이라는 걸. 신체리듬 상 유럽보다 미국이 시차적응이 더 힘들다는 것.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한 글들을 많이 보아왔다.
동쪽이 서쪽보다 시차적응이 힘든 이유들.
이모는 왜 이토록 먼 곳에 살게 되었을까. 몸부터 거부하는 먼 거리의 나라로. 이모는 왜 떠나게 되었을까.
오늘은 괜히 챙겨가지 않은 멸치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냥 넣을걸.
상하든 말든 그냥 넣고 볼걸.
엄마는 냉동실에 있는 멸치를 챙겨가라고. 나는 해동되면 분명히 상할 거라고. 이모를 바로 만나지 못하니 그건 빼야 한다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 문득 오늘 이민자들이 모여있는 게시판을 뒤져보았고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진공포장을 했다고. 아이스팩을 넣었다고. 그래도 한국 멸치 맛이 더 좋다고. 어떻게든 쟁여와야 한다고. 한국의 음식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 비싸고 맛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모는 내게 여행은 가볍게 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엄마가 챙겨준 몇 되지 않는 한국음식들을 꺼냈을 때 이모의 눈은 반짝거렸다. 아빠가 직접 말린 애호박과 토란대를 보며 이건 손이 많이 가는데 뭐 하러 가져왔냐고 말했지만. 이모는 내심 기뻐하는 듯했다.
멸치도 챙겨 왔으면 좋았을걸. 먼 곳에서 시차를 두며 살아가는 이모에게 한국음식은 안정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낮과 밤이 뒤바뀐 시차를 생각하면서 매일 바라보던 숙소의 풍경들을 떠올려 본다.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서 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도시의 소음들.
‘미국은 참 멀다.’
나는 여전히 그곳이 멸치 보관법만큼이나 서툴고 멀고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과 이모의 마음. 그리고 나의 마음.
가장 먼 곳에 남겨진 아쉬움들.
이모 대신 그 멸치를 먹으며 난 또 얼마나 미안해할까. 미처 해동하지 못한 먼 곳의 마음들을.
* 매일 아침저녁 바라보던 숙소의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