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단숨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지만 부모님은 조건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안아주고 달래준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은 부모님에게만 받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와 아기는 그 누구가 되었든 관심의 대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당연하고 부모님의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들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며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아 아이 & 아기들은 심지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방인들도 그 외모에 끌리게 된다.
비단 이런 행동들은 지역적 또는 인종적 특성을 기반하는 게 아닌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보편적인 행동이다. 어느 사회든 아기와 아이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사실 우리 자연계를 보면 인간만이 이런 행동을 취하는 건 아니다. 포유류 대부분은 강한 자식사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는 평생 가지 않는다. 우린 커가면서 당연히 받아왔던 관심과 사랑은 점점 희미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이성을 만나기도 하며 비워진 부모님의 당연한 관심과 사랑을 다른 사람들의 것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나 가치를 주변이나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잣대에 끊임없이 비교한다. 이는 아마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인지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행동은 한편으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크나큰 절망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게 되기도 하다. 현실과 나 자신은 전혀 변한 게 없지만 주위 사람들 한 마디에 자신감이 샘솟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도 이 세치 혀로 상처받을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우린 커가며 돈을 벌어야 한다고 어렸을 적부터 배운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지만..단지 생존의 목적으로만 돈을 벌지 않는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권력을 좇고 누군가는 한 사람이 평생 쓸 돈을 가지고 있음 애도 불구하고 더 돈을 벌려고 한다. 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성공하라고 하는 이유는 돈과 권력을 더 얻기 위함이다. 그 누구도 돈을 적게 벌고 욕심을 덜 부리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과 권력을 좇는 이유는 단순히 보이는 외면 이내에 다른 욕망의 근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걸 욕망이나 탐욕이라고 할 테지만...그 욕망 내면에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숨어있다. 돈과 권력은 주변에게 사랑을 받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우리는 돈이 많은 재벌과 연예인에 관심이 많다. 그들이 사생활은 온갖 미디어에 도배되며 그들의 하는 행동 하나하나도 관심의 대상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엔 항상 사람들이 모인다. 반면 길거리에 수없이 지나가는 돈 없고 집 없는 거지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
어린아이에게 우린 본능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반면, 인간은 노인에게 너무나 관심이 없다(노인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마 이게 자연적으로 인간이 탐욕적으로 점점 변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구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지난 18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북남미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여러 문화권을 경험했다. 여러 다른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의 삶을 보았고, 각자 다른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인간은 다르게 생겼지만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문화도 자세히 보면 다른 것 같지만..어떻게 보면 또 비슷비슷한 점도 많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 모두 다 돈을 열심 벌려고 노력했고, 좋은 차와 좋은 집에서 살려고 하는 건 어딜 가든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어디를 가든 지구 상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쫒았던 단 하나의 가치는 '행복한 삶' 이었다. 그 누구도 불행한 삶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다.
행복의 조건은 각 사회나 문화마다 다르지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
둘째, 돈이 많이 있으면 좋다.
셋째, 가족,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한다.
넷째,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잘 들여다보면 우린 저 네 가지 중에 절대적으로 한 가지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곧 죽을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좋은 집과 차가 있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진심을 나눌 수 없는 친구가 없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싫어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우린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쉽지 않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가?
물론 인간은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시험에 통과되었을 때,
승진했을 때 등 어떤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린 삶에서 일어나는 사소함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직장 상사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사람 또는 친구와 진정으로 동감하고 이해했을 때,
사랑하는 아이가 침대에서 곤히 잠든 것을 볼 때,
좋은 책 한 권을 읽었을 때,
원했던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운동을 하고 기분이 한껏 좋아졌을 때.. 등등
이 다양한 삶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행복의 본질은..행복은 꼭 돈과 명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행복은 본인이 어떻게 마음먹었는가에 달렸으며, 행복은 지금 저축해서 나중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에도 우리가 그리 쉽게 저리 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삶과 인간 그 자체 문제에 있다. 미래는 정해진 운명이란 없으며, 우린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싸워야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불안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불안은 현재를 희생함으로써 미래에 더 큰 보상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장치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대시대부터, 날씨를 예상하고 미리 식량을 저장한다든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식량을 찾아 방황했다. 지금도 성행하는 별자리, 타로카드, 점집 등 인간의 불안에 기반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심리에 기반했다. 우린 이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 자체가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속물근성이 있는 입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항상 선행을 하기 힘든 이유는 누군가는 그 선행을 이기적 이용해 본인의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나에게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람 일지라도 그 사람이 잘 되면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고 질투심이 일기도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만 하지 않고 본인에게 이익이 된다면 충분히 거짓말과 위선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은 돈이나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는 인격적으로 존중할 만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거나 관심을 사려 노력하며 반면 그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에게는 인격적 무시 또는 지위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현실적으로 내 삶이 괜찮다고 느낄지라도 누군가 나 보다 너무나 잘 사는 사람들을 본다거나, 내가 남들보다 지금 앞서 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경우에도 우리는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
실제 우리의 삶은 지금 나열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고 복잡한 욕구와 심리가 얽혀있다. 하지만 복잡한 삶 속에 철학적 사유는 마음의 건강을 얻기 위해 큰 도움이 된다.
철학은 우리의 이성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학문이다. 우린 깊은 사유를 통해 행복한 삶을 지킬 수 있는 '뇌근육'을 키울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긍정적인 것은 끌어드리고 부정적인 것을 멀리' 하는 것이다. 특히 철학적 사유는 행복에 부정적인 것을 떨쳐 낼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각각의 문화와 사회적 규범 및 가치 등에 의해 나의 행동과 생각이 제단 된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건 말 그대로 시대적 문화적 사회적 소산물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대다수가 믿는 옳은 가치라고 하는 것은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적용되지 않는 것 들도 있다. 지금은 아무도 아이를 셋 이상 낳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명만 갖는 다던가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다고 해도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적게 낳는 건 수렵과 농업시대를 거쳐온 인간 역사에서는 정말 최근에 이루어진 현상이다. 그 옛날 아이를 아예 낳지 않다던가 한명만 낳는다고 하면 집안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불과 20년 전에는 강한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여자 아이를 낙태했던 사회 현상이 큰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한가?
또한 지금의 한국에 적용되는 모범적 삶과 도덕규범은 다른 문화권이나 나라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를 가는 건 인생 성공의 성패가 갈릴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학생과 부모님은 그 수능시험을 위해 모든 걸 투자하고 엄청난 경쟁에 시달린다. 그리고 우린 SKY대학교 인 서울 등 각자의 대학에 등급을 나누고 각각에 맞춰 들어간 사람들의 인격들까지 순위를 매긴다. 좋지 않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말 그대로 이미 실패의 낙인을 찍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과연 서유럽 또는 북유럽 국가들 학생들은 나에게 맞는 학과보다 좋은 대학교를 선호하려고 할까? 그들도 성공하기 위해 꼭 대학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고개를 돌려 남미, 아프리카,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 국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까?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대학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린 꼭 좋은 대학을 가야지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보장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정해진 믿음과 사회적 규칙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우선 깨달아야 한다.
이때야 말로 우리가 철학적 사유를 꺼낼 단계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에 티끌만도 못한 크기의 지구에서 태어났다. 인간은 잘 났든 못났든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나에게 크나큰 변곡점이 되었던 과학적 깨달음 중에 하나는..우리는 무엇을 하기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린 근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저기 있는 태양 또는 저기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나는 사실상 존재의 의미는 없다. 그저 자연법칙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겹치면서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대략 육백만 년 전 인간과 침팬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을 때 나를 위해 그들이 진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결국 살다 사라질 것이고 2세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의 유전자는 그들의 자손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무의미한 우주와 이 지구에 태어난 인간은 우리 스스로 의미를 어디다 부여해야 하는지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개인적 선택에 달렸다. 사회 또는 주변 가족, 친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그것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기반해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본인이 직접 가치 설정의 설계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불안, 질투, 시기, 고통, 좌절감, 공포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에는 근본적으로 이것이 어떤 원인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군가 아무리 화살을 나에게 쏘아대도 내 과녁에 맞지 않는다면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열차를 타고 가고 있음에도 우린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인지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옳지 않다고 판단이 되면 그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런 철학적 사유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독립심과 용기를 기반으로 한다. 처음부터 실행에 옮기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사유의 근육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우린 꼭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처럼 살지 않아도 되고,
박지성, 김연아처럼 살 필요도 없다.
그리고 주위에 잘 나가는 친구처럼 살 이유도 없다.
이 우주에서 나에 대한 삶의 가치는 오직 자신만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우린 남들이 타는 기차를 꼭 탈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람과 사회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고민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카이스트 교수 '김대식' 교수가 강연한 내용 중 '길가메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짧게 소개하자면 이 이야기는 4000년 전 고대 수메르 시대의 것으로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된 서사시이다.
옛날 '길가메시'라는 수메르 시절 영웅이 살았다. 어느 날 친한 친구와 모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친한 친구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길가메시는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지구 끝 어딘가 불사신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 초인을 찾아가 죽지 않는 방법을 물어보게 된다. 그 불사신은 영생할 수 있는 약을 주지만 돌아오는 길에 그 약을 잃어버리게 되고..길가메시는 다시 그 초인을 찾아가 약을 달라고 해보지만 결국 얻지 못하게 된다. 길가메시는 이제 영생은 없고 죽음이 기다리는데 어떻게 살 수 있냐 라고 낙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그 초인에게 물어보았다.
초인이 말하길
"별것 없다. 다시 네 고향에 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친구들하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하고 사랑을 나눠라"
내가 18개월 동안 밖을 여행하면서 느낀 행복한 삶에 대한 법칙은 그랬다. 만약 죽음을 코 앞에 둔 난 무얼 할 것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싱겁게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그냥 가족과 친한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