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새내기 PM이 생각한 '되고 싶은 PM', '만들고 싶은 제품'
구글 드라이브를 정리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2022년 3월. 무려 4년 전에 쓴 글이었다. 파일의 제목도 눌러볼 수 밖에 없는 '난 뭘 하고 싶을까'였다. 결국 왜 구글 드라이브에 들어갔는지는 잊은 채 홀린듯이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어봤다. 크게 두가지 감정이 들었다.
1. 이 녀석. 힘들었구나. 마음 고생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하면서 치열하게 좋은 PM이 되고 싶어 고민했구나.
2. 근데 입이 좀 험하네. 혈기왕성했군.
글이란게 그렇다. 내가 썼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에, 마치 타인이 쓴 글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우습지만 내 글에 내가 감동을 받아버렸달까 ㅎㅎ
이 글을 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게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는지 잘은 모르겠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많이 달라졌길 바라지만. 당연히 지금에 와서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래의 생각을 거쳐서 형성 된 사람이니 완전히 분리할 수도 없다...
4년 전의 내가 절대 공개된 곳에 올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니지만, 그래서 매우 날 것이지만, 그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곳에 올려둔다. 최~대한 그대로 word to word로 올리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어른이 됐기에, 너무 심한 비속어만 순화했다.
“기술에 제약이 없다면 만들고 싶은 프로덕트가 무엇인가?”
질문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인생에서 일에서의 성공을 1순위 목표로 두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어떤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전혀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보다 나는 꿈도 낭만도 없는 사람이었구나. 조금은 충격이었다. 우선 나는 창업할 그릇의 인간이 못 된다. 경험을 기반으로 사고하거나, 남이 먼저 던져준 아이디어의 씨앗을 키우거나 변형하는 건 잘한다. 하지만 의외로 완전히, 완~전히 0에서부터 오롯이 내 것으로 피워내는 상상력은 없는 편. 게다가 살면서 어떠한 불편함을 느꼈을 때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불편함을 수용하고 적응하는 기조로 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질문을 듣고서야 고민을 해본 결과, ‘어떤 걸 만들고 싶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딱히 없는데’이다. 쥐어짜고 짜서 고작 나온 거라고는 ‘울 것 같을 때 안 울게 해주는 무언가’, 또는… 심지어 이 또는 다음에 올 것도 없다. 거의 ‘하늘을 나는 자동차’ 수준의, 발명가가 꿈인 유치원생만도 못함. 이 정도면 아마 앞으로도 딱히 내가 먼저 뭔가 만들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질문을 확장해서 해석해보면, 앞으로 내가 PM으로서 뭘 하고 싶은지, 혹은 어떤 PM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것이 아닐까(물론 그냥 내가 멋대로 해석한 바임). 최근에 건강이 나빠질 만큼 일에 치중하다가 번아웃이 세게 왔는데, 그때 들었던 나는 뭘 위해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지? 라는 자문에 대한 답이 될 것도 같아서. 그래서 열심히 생각을 해봤다. ‘어떤 것을 만드냐’보다는 ‘어떻게 만드냐’에 초점을 두고.
그래도 일단, 당연하지만, 프로덕트에 내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아이템을 듣자마자 마치 내가 낳은 것만 같은 높은 수준의 공감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기존에 이미 알고있는 분야와 연관이 있거나, 잘은 모르더라도 배울 의향이 생겨야 한다는 거지. 새로운 걸 배우는 데에 딱히 거리낌은 없는 편이니까 그 기준이 높지는 않다. 극단적인 예시로, 집단 암살을 할 수 있는 무미 무취의 독가스 개발은 NO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오디오 콘텐츠 제작 툴은 YES라는 소리다. 최소한의 관심과 호감이 있으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어쨌든 PM은, 적어도 PM만은 프로덕트에 애정이 있어야 하니까.
사실 PM이라는 롤이 프로덕트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건 아니다. 웬만한 앱 스타트업의 초창기 멤버는 개발자+디자이너로 이뤄져 있고, 둘 중 하나가 혹은 둘이 나눠서 PM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IT 회사가 PM을 구하기 위해 앞다퉈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쓰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실은 스스로 잘 모르겠지만ㅎ 요는, PM이 조직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니만큼, 한 조직의 PM이 된 이상은 적어도 발목을 잡는 요인만큼은 돼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이건 최소한의 기준이고. 최소한을 넘어서, 있어서 다행이고 없으면 어쩔 뻔했냐는 소리를 듣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기획 실무부터 해서 일정 관리는 물론이고,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도록 사람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 관리라는 말의 질감이 참 별로지. 부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데 뭔 사람을 ‘관리’하냐. 그것도 같은 사람이. 이게 너무 까다롭다. 팀원을 부품이나 기계 취급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고 도우려면, 개개인에 대한 애착의 정도는 차이가 크게 나기야 하지만, 감정적으로 attached 되기 마련이다. 이 팀원에 대한 애착이 앞에서 말했던 프로덕트에 대한 애정과 합쳐지면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PM은 결국 늘 지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잖아.
프로덕트를 누구보다 아끼고 팀원들에게도 애정을 갖다 보면 어느샌가 부터 가장 절박한 위치가 되고야만다. 이게 내가 현재 지닌 PM으로서의 소양 중에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듯. 아무래도 애정이 있어서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한 편이고, 애정이 있어서 일도 (원래도 잘하고 열심히 하지만 더더욱) 열심히, 또 잘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정이 있으므로, 프로덕트의 방향이 흔들리거나 팀원이 어떤 이유로든 힘들어할 때, 내가 감정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를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소진해야만 하는 방식이라는 거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지. 제발 아무도 아프지 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큼은 어떻게든 행복해 줘....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하십시오.
이게 장단점이 같이 가는 부분이라 애착을 안 갖고 오롯이 일적으로만 프로덕트와 팀원을 대하면 지금만큼의 역량도 안 나올 것 같고. 결국엔 내가 감정을 더 잘 추스르고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겠지만, 글쎄 근 30년을 이런 식으로 살아와서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고. 어라, 나 혹시 지금까지 자부해왔던 것과 달리 PM이랑 잘 안 맞는 거 아닐까?
장점만 갖고 가면서 이 치명적인 단점을 커버하려면 결국은, 믿을 수 있는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발 조직이나 디자인 조직이 단체로 이직하거나, 스타트업을 위해 꾸린 팀이 한 아이템이 엎어져도 계속 같은 팀으로서 재시도하는 게 부러워. 물론 그만큼 마음이나 합이 잘 맞는 사람들이 만나서 가능한 거겠지만. 나가도 다같이 나가니까 ‘아무도 나가지마… 나가면 안 돼…’하는 불안감도 없고.
그래서 겨우 두 회사에 다녀봤고, 심지어 그 두 회사가 모든 면에서 달라서 이어지는 것도 없었고, 합해서 경력이 2년 채 안 된, PM으로의 경력은 1년도 안 된 내 짧은 소견으로는(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 ‘X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 생각은’이라는 뜻), 내가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애착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갖고 있는 꿈이나 아이디어에 계속 도전하는 조직에 안주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emotional burden은 확 줄고, 진심으로 ‘꿈의 조력자’(앗 지나치게 낭만적인 워딩)로서 조직에도 맞춤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듯.
나 진짜 ‘일만 잘하면 일터에서 인간적인 교류는 필요 없어요’ 주의였는데, 그건 그냥 이전 회사에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애초에 결이 다른 사람도 너무 많아서 그랬나 보다. 불과 작년까지 스스로를 사람에 연연하지 않고 일을 잘하는 로봇같은 사람이라고 잘못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남에게 되도록 의지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나도 내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네. 위로받고, 또 위로를 주는게 원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이전 조직에 맞춰서 유능하지만 차가운 자아인 척 했던 거였다. 그곳엔 그런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어느 조직이든 일단 들어가면 적응을 빨리하고 그 곳에 필요한 사람으로 맞추는 편이지만, 이왕이면 내가 편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이 좋지. 지금 팀이 그런 조직이냐 하면, 적어도 이전 회사보다는 200배 더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근데 이게 결론이 뭐임. 뭐가 이래. 생각의 흐름이 정리가 안 되지만..
본인은 꿈도 낭만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을 반짝반짝 빛 내면서 꿈과 낭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걸 누구보다 잘 하는게 나의 목표다. 앞서 말했듯이 아직 경험도 한참 부족하고, 실제로 성공한 조직 안에서 일해본 적도 없으니까, 당장은 어쩌겠어 성공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거지. 내가 잘 하면 좋은 사람들이 있는 괜찮은 조직은 따라올 거야. 왜인지 결론은 언제나처럼,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하면 된다 잘하자. 가 되었다. 으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