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간절해지는 시대

과장된 셀프 브랜딩과 생성형 AI 열풍에 대한 단상

by 듀듀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솔직함이다. 포장하고 꾸미는 것을 싫어하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그게 독이 될 때도 있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특히나 그렇다.


'셀프 브랜딩이 중요하다.' 특히나 PM은 더더욱. 커리어 극초기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그걸 5년이 차고서야 간신히 시작했다. 왜? 거짓말 같고 허위 과장 광고 같으니까. 적어도 스스로 정의한 바는 그랬다.


이력서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거짓말이 아닌 선에서 부풀려서, 무조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잘 포장해서 쓰라는 조언을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거라는 얘기 또한. 서핏에 브런치에 링크드인에 자신의 성공 혹은 실패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쏟아진다. 물론 모든 글이 그렇지는 않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to each their own이지만 종종 알맹이가 없는,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싫었다.


r52s0sfq2jw41.png?auto=webp&s=880547ed384c902cf3bdc779246697a90fef6e85 '이력서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한 경력을 있어 보이게 쓰는 법'

마찬가지로 몇 년째 불고 있는 생성형 AI 열풍에서도 기시감을 느낀다. AI가 생성해 낸 윌 스미스가 스파게티를 먹는 영상이 이전에 비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감탄하지만, 그 기술이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코카콜라도 맥도날드도, 해마다 내는 연말 홍보 영상을 AI로 제작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화장품 회사들이 색조 화장품의 상세 페이지에 제품의 색상을 실제와 가깝게 보여주는 '발색샷'도 AI로 생성해 코덕(코스메틱 덕후의 줄임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색인지 알고 싶다는데, '가짜' 사진을 만들어 보여주면 어쩌라고? 어느 출판사가 저작권이 만료된 영미 고전 소설을 AI로 번역하고 검수도 안 한 채 엉망진창인 서적을 출간한 것도 최근 사례다.


마치 몇 년 전 메타버스붐이 일었을 때를 보는 것 같다. 대중보다는 기업 측이 열광하고, 대중은 아직 반발심을 갖고 있다. 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기술에 사람들은 왜 반발심을 가질까?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 없으나 나의 입장을 내놓자면, 진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 단순히 사람의 순수 노동을 거친 결과물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알맹이는 없는데 겉만 번지르르하게 흉내 낸 '가짜'를 마주했을 때의 불쾌감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위해 이뤄져야 하는데, 일단 기술을 만들고 어떻게든 유용한 '척'하는 인상이 들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꿈꾸던' 그런 기술이라고 끝없이 주입한다. 나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는데?


게다가 규제가 생기기 전에 기술부터 퍼지는 바람에 저작권 문제와 윤리적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지브리 같은 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AI로 학습시키지 말아 달라는 문구를 내건다. 유튜브나 틱톡에 AI로 생성된 영상들이 별도의 표기 없이 돌아다닌다. 그새 또 많이 발전해서 솔직히 나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대단한 퀄리티다. 시청한 영상이 AI인 줄 모르고 봤다가 뒤늦게 깨달았을 때 드는 감정이 긍정의 '와, 기술이 대단하다!'인 경우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기술의 발전이 무섭네... 앞으로 어떡하냐...'라거나 '속았네. 내 감동(혹은 분노 등 다른 감정) 돌려내!!!'같은 배신감일 텐데.






그러면 내가 AI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완전무결한 아날로그의 삶을 살아가느냐? 물론 아니다. 그야... 나는 IT업계에 속한 직군을 택했고, 애초에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이다. 여행계획을 짜야한다거나, 의논할 상대가 필요한데 주변에 없을 때, 지나가다 만난 식물의 이름이 궁금할 때, 해외에서 메뉴판을 번역할 때 챗지피티, 제미나이, 퍼플렉시티의 도움을 받는다. 피그마에 야매로 그린 화면을 구현하고 싶어 MCP로 커서에 연동해 코딩을 맡길 때도 있다.


변명 같겠지만 기술 자체에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좀 뻔하지만 칼에 비유할 수 있겠다. 칼로 음식을 썰 것이냐, 수술을 할 것이냐, 혹은 사람을 찔러버릴 것이냐. 칼은 의지가 없다. 의지는 그걸 손에 쥔 사람에게 있지.


문제는 주객전도이다. 이런 기술의 오남용에 불쾌감을 표하면 돌아오는 건 훈수다. "아무리 님이 뭐라 해도 이게 바로 시대의 흐름임. 님도 얼른 올라타지 않으면 도태될 것입니다만?" 같은 느낌의.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나는 기술이 '필요해서' 쓰고 싶지, '뭔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쓴다니 나도 써야 할 것 같으니까 떠밀려서' 쓰고 싶지는 않다. 어떤 뚜렷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쓰고 싶지, 일단 남들이 다 쓴다니까 써놓고 꿈보다 해몽인 수준의 이유를 거짓으로 갖다 붙이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으로 '셀프 브랜딩'을 미뤄왔다. PM이라면 마땅히 네트워킹을 하고, 링크드인에 글을 써야만 하니까. 이 정도의 동기는 내게는 너무 거짓 같다.


이렇듯 고리타분한 내가 그럼에도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한 이유에는 1) 속 시끄럽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글로 써버리는데, 쓰는 김에 어디라도 모아두려고, 2)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스스로도 정리하기 위해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결정적인 것은, 위에 '거짓 거짓!! 거짓부렁인 세상!!!'을 목 놓아 울부짖었지만, 3) 여전히 진솔한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손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사람이 있고, 빛을 쫓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펜으로 편지를 써서 연하장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다. 꼭 아날로그가 진정성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뚜렷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있다. 그 목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받아 나 또한, 이 혼돈의 시대에 작은 솔직함을 풀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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