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센터 대기실 맞은편에서 나이 어려보이는 부부가 마주 앉아 얘기를 하고 있다.
방금 수업에 들어간 아이는 3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데 아마 말이 늦어 발달센터를 찾은 모양이다.
발달센터에서 만나는 가족들이라면 다들 마음속에 큰 근심거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그 부부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일상이나 최근 변화된 모습 같은 얘기들을 다정하게 나누는 그 부부의 모습을 보며
참 예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보다 부족한 아이를 돌보고 훈육하는 방향에 대해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지
엄마 아빠 모두 경청의 기술을 마스터한 건지
두 사람의 대화는 조그마한 다툼도 없이 부드럽게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계획하고 동의하고, 조근조근 재잘재잘 참 다정해 보인다.
우리 부부와 비교해 보면...
신기하고 부러운 모습이다.
사무실에서 여러 선배들, 상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자녀의 교육문제로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한다고 한다.
아무리 부부사이가 좋아도 자녀 교육에서 만큼은 다툼이 생긴다.
일반 아동을 키우는 가정도 그럴진데
느린 아이를 키우는 집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의 다름을 알고 병원이나 발달센터를 찾는 첫단계에서 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니 빨리 병원을 가야한다'는 생각과
'애들이 좀 느리기도 하고 때 되면 다 크는 거지 유난스럽게..'라는 생각이 충돌한다.
부모 중 한사람이나 조부모가 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발달 치료를 받는 것에 시큰둥하면 출발부터 험난하다.
비단 출발점에서 뿐 아니다.
자폐스펙트럼의 특성상 아이의 발달상태나 느림의 양상이 모두 달라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도 찾기 힘들고,
어느 것이 맞는 방향인지 확인해 줄 사람도 마땅찮다.
그러니 새로운 치료를 시작할 때는 물론이고
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거의 항상 의견 충돌이 있다.
콩이의 발달 교육을 두고 우리집 역시 다를바 없었다.
PCIT(Parent-Child Interaction Therapy)니, CDI(Child-Directed Interation)니 RT(Responsive Teaching)니 하는 부모 참여 치료들은 내 성격상 도대체 효용성이 의심스러웠다.
이 치료들의 공통점을 보면
부모랑 아이가 함께 치료실에서 놀게 하고
치료사가 카메라로 지켜보면서 실시간으로 리시버를 통해 활동 지시를 내린다.
그 지시라는게 공감해주기, 긍정의 반응 보이기, 의문문이나 부정문 극도로 피하기, 아이의 놀이흐름 따라가기.. 큰 틀에서 이런 정도이다.
지나고 나니 그러한 치료 자체는 효과가 있었던 걸로 보이지만
전적으로 치료사의 역할 덕분이라기 보다
아이와 엄마아빠가 주기적으로 한 공간에서 함께 놀게 한 것이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엄마의 생각은 다르지만 아빠의 생각은 그렇다.
치료사의 지시사항들은... 사실 그런 방향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여러 치료수업들 역시 치료사의 전문성에 대해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달랐다.
이래저래 의견충돌이 있다가
1분이라도 더 수업해주고, 조금이라도 더 콩이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치료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콩이는 뭐...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자기한테 잘 해주는 선생님은 그냥 다 좋아했다.
문제는 발달센터 보다는 집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엄마나 아빠만 있는 날은 싸울 게 없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 콩이 모두 있는 때가 문제다.
엄마랑 놀다가 콩이가 짜증낸다. 아빠가 엄마 탓을 하고, 냉전 시작.
아빠랑 놀다가 콩이가 짜증내고 아빠가 화를 낸다. 엄마가 아빠에게서 콩이를 데려가고... 싸운다. 냉전시작.
보통은 후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앞의 다정한 부부처럼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내가 맞다 니 탓이다 싸운다.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나만 콩이를 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면서도 또 부딪힌다.
일단 일요일 아침에 '콩순이 만화'와 '책 읽어주는 TV' 보여주기
아빠는 찬성이다. 엄마는 싫어한다.
일요일 아침에만 보여주는 것이고
자꾸 보여주니 콩이가 에피소드 들을 이해하고 노래도 따라하고 말도 응용한다.
책 읽어주는 것을 듣고 내용을 이해하고 또 보고 싶어한다.
어린이 프로그램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 콩이에게는 엄청난 변화이다.
6개월 전에는 1시간 이내에 질려했는데 지금은 2시간을 넘겨도 계속 보려하니 문제이긴 하다.
콩이가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 질수록,
TV 보느라 교회에 가지 않으려는 반항이 커 질수록,
엄마 아빠가 싸울 가능성이 커진다.
콩이가 워낙 책에 집착하니 책을 보게하는 것도 콩이엄마는 싫어한다.
책이 있으면 책을 바꿔가며 책장 넘기기에 집중할 뿐 다른 활동을 하려하지 않는다.
색칠하기도 하여야 하고, 선긋기, 가위질도 해야 하는데 다 거부한다.
아내가 콩이를 며칠 돌보면
어느새 콩이는 책상에 앉아 엄마랑 종이도 접고, 보드게임도 하고, 병원놀이도 하는데
아빠랑 며칠 놀면 책이 책상에 쌓이고, 엄마와의 놀이를 거부한다.
그 결론을 놓고 보면... 아내의 생각과 방향이 맞는것 같긴한데...
아이는 책을 보고 싶어하고 엄마는 그 책들을 치우고 있노라면 엄마 아빠가 다투기 시작한다.
어려운 일이다.
저 다정한 부부와 얘기를 해 봐야겠다.
어찌 그리 현명하게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