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문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이다.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최대치는 약 150명, 그중 진짜로 친한 친구는 3~5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단순한 수치가 현대의 관계를 놀랍도록 잘 설명해준다.
어릴 적엔 넓고 얕은 관계가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점점 깊고 좁은 관계를 선택한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 몇 명이면 충분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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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는 오늘 택시에 지갑을 두고 내렸다.
불이 나게 전화를 돌린 끝에 다행히 금세 찾았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탓하며, 앞으로는 자리를 뜰 때마다 두세 번 확인하겠다고 다짐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다.
“여보세요? 나야, 지민이.”
“뭐하고 있어?”
“나? 그냥 유튜브 보고 있었어. 왜?”
“오늘 택시에 지갑을 두고 왔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언니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어머나, 지민아. 너는 왜 그렇게 덤벙대니? 늘 부주의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언니는 늘 이런 식이다.
감정보다 논리가 빠르고, 위로보다 조언이 앞선다. 따뜻하기보다 시크하다.
지민이에게는 그 말들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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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도파민형 대화’의 전형이다.
도파민형 사람들은 빠른 농담, 도발, 논쟁에서 쾌감을 느낀다.
외향적이고 즉흥적이며, 호기심이 많다.
대표 기질은 탐색형, 도전형, 리더형.
그들은 ‘움직임’과 ‘변화’를 통해 생기를 얻는다.
반면 지민이는 ‘안정형 대화’를 선호한다.
부드러운 말투, 감정의 공명, 따뜻한 리듬 속에서 마음이 안정된다.
이때 뇌에서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평온을 느낀다.
공감이 먼저이고, 수정보다는 이해가 우선이다.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대신
“그 상황이면 나라도 마음이 상했을 것 같아.”
이런 말이 지민이의 마음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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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이를 “성취 시스템(Approach system)”과 “애착 시스템(Attachment system)”의 균형이라 부른다.
도파민형은 새로움과 자극을 통해 활력을 얻고,
옥시토신형은 따뜻한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결국 인간은 두 회로의 조화 속에서 살아간다.
도파민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옥시토신은 관계를 지탱하게 한다.
한쪽은 바람이고, 한쪽은 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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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과 옥시토신은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성격을 울린다.”
이 둘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전전두엽이다.
전전두엽은 충동(도파민)을 다스리고 공감(옥시토신)을 조율한다.
명상, 글쓰기, 상담, 자기성찰 같은 행위들이 이 전전두엽을 단련시킨다.
그래서 성격은 바뀔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기질 위의 표현 방식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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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이 다정하고 따뜻한 대화만 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짧은 자극’에 길들여져 있다.
SNS의 빠른 리액션, 유머, 짧은 대화가 기본값이 되었다.
그것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편하기 때문이다.
깊은 대화는 에너지를 쓰고, 감정을 드러내야 하니까.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 “깊이 있는 대화는 용기의 행위다. 그것은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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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파민적 추진력으로 변화를 만들고,
옥시토신적 결속력으로 그 변화를 유지한다.
당신의 주파수는 어디에 있는가?
자극의 리듬 속인가, 혹은 따뜻한 공명의 파동 속인가?
진짜 중요한 건 단 하나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대화” —
그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