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1
아침 9시부터의 프라하 인문학 투어를 4시경 마치고
일단 호텔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즐기는 시에스타(낮잠).
일반 패키지여행에서는 알 수 없는 여유와 즐거움이다.
얼마를 잤을까? 정말 잘 잤다. 어제 인천에서 10시간가량 항공기로 이동해 도착한 이후 시차로 인해 무척이나 피로했는데, 그 녀석이 한 방에 날아가버렸다.
이제 여유 있게 산책을 하며 저녁 메뉴를 고를 시간.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으니 가벼운 저녁도 괜찮으리라. 그래서 선택한 것은 체크의 유명한 소시지가 들어가는 핫도그.
이게 가벼운 건가? ㅎㅎ
간단한 식사겠지.~
일반적으로 체크의 음식 하면 스비치코바나 꼴레뇨를 이야기하지만 소시지도 이들의 전통음식 중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식단 중 하나다. 독일 소시지만 맛난 게 아니다.
식당에서 먹는 소시지도 맛있지만 길가의 가판대에서 파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혼밥이 익숙해진 우리 시대에 여행 중 맛볼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자주 가는 집이다. 맞은편이 더 많은 손님이 있지만 난 이 집이 좋다. 맛? 미식가가 아니라 큰 차이는 못 느끼겠지만 말이다.
신시가의 바츨라프 광장에 핫도그 및 즉석 햄버거를 파는 가판매장들이 몇 개 있는데 다 맛있다. 음료수 하나를 곁들여도 115-120꼬룬, 약 5유로 정도... 이 정도면 가격도 괜찮다. 어설픈 미국 햄버거들보다 훨씬 낫다.
생각보다 크고 맛있다. 소시지 핫도그 하나로 배가 꽉 찼다. 이 사람들 우리보다 체격이 큰데 위도 큰 게 맞나 보다. ㅎㅎ
그럼 디저트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 고민.
점심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니 건강을 생각해 과일로 결정.
그런데 무슨 과일?
개인적으로는 씨까지 씹어 먹을 수 있는 청포도를 좋아하지만...
지금은 납작하게 생긴 복숭아가 끌린다. 이 녀석이 제철이다.
벌떡 일어선 배를 쓰담쓰담 달래며 프라하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나누는 도로인 ' 나 프리코페Na Příkopě'거리로 들어섰다. 이 길은 과거 성벽과 해자가 있어 프라하와 외곽 마을을 구분하고 있었다. '나 프리코페'라는 길 이름은 "해자 위"라는 의미로 우리말로 풀어보면 "해자 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나 프리코페는 쇼핑가로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쇼핑센터와 상점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해자길..
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14세기 프라하의 황금기와 관련이 있다.
당시 프라하는 유럽 중부의 교역과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던 젊고 활기찬 도시였다. 게다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까를 4세는 이 도시 프라하를 제국의 수도에 걸맞은 규모의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1348년경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프라하를 둘러싸고 있었던 성벽을 해체하고 해자를 메꾸어 제국의 수도로서의 면모가 갖추게 된다. 물론 후에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가 더 확대되지만 중요한 규모의 변화를 당시에 이루어졌다. 오늘날 프라하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학자들이 조사한 당시 기록에 의하면 인구가 약 4만 명 정도였다고 되어 있으나 당시의 조사 방식을 현대화했을 경우 약 두 배인 8만 명 이상이 거주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4세기 중반 인구로는 알프스 북쪽에서 4번째, 도시 자체의 크기로는 유럽에서 3번째였다.
65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길을 걸어 10~15분 정도 이동하면 시내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빌라 BILLA라는 마트가 있다. 납작 복숭아와 생수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민회관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우아한 쇼윈도의 보며 걷는데 거리의 한 부분을 넓게 차지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이것들은 무엇일까?
벽돌들이란다. 기부하는 벽돌!!
벽돌을 사서 기부한 사람은 누구든 원하는 경우 그림이나 글씨 등 다양한 페인팅을 할 수 있다. 사진에 뒤쪽으로 보이는 작은 키오스크에서 기부를 위한 벽돌과 페인팅을 위한 재료들을 준비해 놓고 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 겸 기부를 위한 자선행사라고 한다.
프라하 시내를 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판들이 건물에 붙어있다. 카프카, 쇼팽, 아인슈타인, 베토벤 등...
누구일까?
프랑스 옷 매장에 붙어있는 명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프라하에서 본 거의 모든 동판에는 체크어로만 적혀있어 이해가 어려웠지만 독일어로 아래에 적혀 있다.
이상하다...
많이 이상하다.
아는 이름이다.
학생 시절 한 때 좋아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시가 좋았다기보다는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비극적인 죽음이 더 매력적이어서 좋아했던 것 같은데...
특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호감이랄까?
그래서 루벤스보다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오스트리아 출신의 실존주의 시인으로, 20세기 최고의 독일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섬세하고 세련된 시어와 감수성으로 언어의 거장, 시인 중의 시인으로 불린다. 근대 사회의 모순, 번뇌, 고독, 불안, 죽음, 사랑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토대로 명상적, 신비적 시를 많이 썼다.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인 《말테의 수기》는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20세기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다음 백과,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그렇다 '반역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다.
나는 왜,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릴케를 대뜸 반역자라는 치욕스러운 단어로 비난할까?
내가 아니라 모 작가의 말이다.
"체크에서 작가들과 만나 술 먹고 울었어. 체크가 히틀러의 독일에 정복되면서 언어도 정복됐어.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시를 쓴 릴케는 체크에서는 반역자야! 체크 가서 릴케 얘기했다가 혼났어.
"나치 지배가 끝나니 소련 지배가 이루어져 슬라브어가 들어왔어. 요샌 영어가 지배하고 있더군. 프라하 가서 미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가봤더니, 대사관이 고궁을 차지하고 있어. 총독부 더구먼! 독일어, 슬라브어, 영어에 차례차례 당한 거지. 우리 겨레말과 비슷한 역사 아니냐고."
-고은 시인 인터뷰 한겨레 2012 7 22
릴케는 체크 사람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절 태어난 체크인이다.
자신의 조상들을 키워주고 자신이 자란 작고 약한 조국의 아름다운 언어가 아닌 자신의 나라를 강점하고 있는 강대국의 언어로 글을 썼다. 개인의 출세와 욕망을 위해...
조국의 독립에 대해서는 젊을 때 약간의 관심을 제외하면 조국 체크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릴케는 체크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묵었던 곳에 있는 명판도, 폴란드인 쇼팽 관련 동판도 체크어로 적혀 있다.
드물게 독일어를 함께 표기한 동판이다. 배신자에 대한 체크와 프라하 시민들의 소심한 응징이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와 독일 관광객이 가장 많으니 찾는 사람들도 있으니...
친일파 안익태 작곡,
친일파 윤치영 작사의 애국가가 생각났다.
쿠바에 간다면
헤밍웨이 대신 호세 마르띠를 이야기 하자.
체 게바라를 기억하고 까밀로 시엔푸에고스를 잊어서는 안 된다.
드디어 나타난 아르누보 스타일의 멋진 시민회관.
아름답기도 하지만 프라하 시민의 자존감을 나타내는 도도한 모습이다.
시민회관과 프라하의 아르누보는 다시 한번 이야기할 때가 올 것이다.
1.5리터짜리 생수와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납작 토마토 4개를 구입하니 약 1유로 정도.
와~~ 정말 싸다.
횡재한 느낌으로 마트를 나서 호텔로 향하는데 시민회관 맞은편에서 들리는 길거리 음악가들의 낯익은 현악기들의 떨림이 들린다.
저 시민회관 안의 화려한 홀에서의 연주만큼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선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락의 명곡,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다!!!
이런 행복이 흔할까?
나는 이런 여행이 좋다.
이런 황홀한 밤이 좋다.
천국이 굳이 죽어야 가는 곳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여름 저녁
중세의 도시에서 듣는 바이올린 협주.
락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이 젊은 친구들은
스메타나, 드보르작, 야나체크의 후배들이고
그래, 나는 지금 프라하에 있다!!!
들어는 봤나?
프. 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