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안 랩소디 2번>과 <부다페스트>
따란...
오른손으로 두 개의 건반을 거의 동시에 두드리며 시작하는 페렌츠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곡.
<헝가리안 랩소디 2번>
이곡의 도입부보다 '눈 내린 아침에 만나는 부다페스트'의 감성을 더 잘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헝가리-오스트리아계 음악가 페렌츠 리스트는 헝가리 토속음악과 집시 리듬의 영향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민족음악가 벨라 바르톡만큼이나 헝가리 문화를 잘 이해하는 천재 음악가로서 피아노의 파가니니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실제로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고 싶었던 음악가로 손가락이 매우 길다고 알려졌던 피아니스트였다.
부다 왕궁이 마주 보이는 다뉴브 강가에 서면 그의 음악의 첫 주제 부분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알아두면 유용한 상식
다뉴브 강(2,860km)은 유럽에서 볼가강(3,530km) 다음으로 긴 강으로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들어간다.
따라서 나라별로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영어 : 다뉴브
이탈리아 : 다누비오
독일어 : 도나우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 두나이
헝가리 : 두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 두나프
루마니아 : 두나레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우울과 무기력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자 빈 남성합창단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빈 새로운 곡을 의뢰했다. 사람들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경쾌한 곡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합창곡으로 작곡하고 빈에서 초연을 했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초연 이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게 된다. 이어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의 연주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페렌츠 리스트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쎄체니 다리(체인 브리지)와 정면의 부다 왕궁과 오른쪽 멀리 보이는 마차시 교회까지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다뉴브강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헝가리안 랩소디'의 피아노 감성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느린 템포의 랏산 Lassan, 빠른 템포의 프레스카 Freska의 조화와 뒷부분 카덴자(Cadenza)의 야성적인 집시 선율까지 눈 내린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이 어야만 한다.
이번 동유럽 인문학 기행을 떠나기 전에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한 권 있었다. 브라질의 음악인이자 작가인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라는 작품이다.
낯설었다.
브라질 작가와 바로크의 도시 부다페스트
뜨거운 리우의 백사장과 파도
그리고 활기찬 젊은 이들의 아우성과
도도한 흐름의 다뉴브 강
양쪽의 바로크 양식의 장엄한 건축물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소설 '부다페스트'는 일상적인 대필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우연한 여행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모험극 같은 매력적인 전개와 극적인 반전의 묘미가 있는 작품이다.
“악마가 숭배한다는 지구 상의 단 하나의 말”
“단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니 단어와 단어를 떼어놓을 수조차 없다.”
위치상 유럽을 전제한다면 헝가리어는 매우 특이한 언어임에는 틀림없다. 살짝 들리는 콧소리와 늘어지는 슬라브어 느낌의 억양까지 정말로 기묘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나의 눈을 잡아채서 떠날 수 없게 만들었던 문장.
“강은 푸른빛이 아닌 노란빛이었다. 아니, 도시 전체가 노란빛이었다. 건물 지붕, 아스팔트, 공원 할 것 없이. 부다페스트는 흥미롭게도 노란빛의 도시였다. 나는 부다페스트가 잿빛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노란빛이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다뉴브 강이 푸른색이라고 믿어왔다.
나는 지금까지 다뉴브강은 푸르다고 생각을 해왔다. 아니 믿어왔다.
‘믿음’이란 교조적인 단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것이 합리적 의심을 거쳐 검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과학이 발달하면서 검증 방법이 구체화되고 방법적 접근이 달라진다면 과거의 결론은 새로운 결과를 제시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증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보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내가 다뉴브가 푸르다고 믿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한 귀납적 결론이었다.
1. 일반적으로 강물은 푸르다고 표현한다.
2. 다뉴브를 많이 보았던 요한 슈트라우스의 그 유명한 왈츠의 제목은 ‘아름답고 푸른 An der schönen blauen ’ 도나우 Donau 강이 제목이 아닌가.
이런 사변적 결론을 믿어오고 있었던 내가 다뉴브가 <푸르다>는 것을 의심할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귀납적인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때로는 오류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가까운 예로
'내일도 해가 뜬다.'라는 명제는 일반적으로 옳은 이야기로 인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제도 지난달에도 작년에도 해는 떠있었기 때문이다. 밤에도 태양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20세기의 천재 지성인이었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였던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반론은 어떨까?
“닭의 입장에서 볼 때, 매일 모이를 주던 주인이 어느 날 목을 비틀어 죽이는 상황을 귀납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귀납적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20년 가까이 유럽을 다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여행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을 확인해 보았다.
나는 눈으로 다뉴브 강을 본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봐왔던 것이다.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맹목적인 추종은 이처럼 가상의 세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가 아니라도 노란색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도시다.
노란색 트램
노란색 택시
노란색 도자기로 만든 지붕
노란색 건물의 외벽
그리고 황금의 포린트.
포린트는 현재 헝가리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폐 단위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전 유럽에 유통되었던 금화였다.
르네상스 시기,
현재의 미국 달러처럼 기축통화로 사용했던 화폐가 피렌체의 플로린이라는 금화였는데 당시 유럽에서 플로린은 베네치아의 두카트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통화였다. 금화라는 것이 금이 많이 채굴된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배경이 없으면 금으로 경화를 만들 수가 없었던 시기, 다른 국가나 도시들이 은화를 만들 때, 헝가리에서는 금화를 주조했다. 그만큼 헝가리는 부유하고 강력했던 국가였다. 북쪽의 폴란드도 발칸의 크로아티아도 당시에는 헝가리 왕이 지배하던 나라었다.
194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헝가리 화폐 단위인 '포린트 forint'라는 단어는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 florin'이 변형된 이름이다.
낡고 각지고 노후된 노란색 트램들을 보면서 이 녀석을 타면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조안 롤링의 소설을 영화화한 '해리포터'에서는 역에서 기차를 타면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가듯이
... 마법 같은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