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약속
부다페스트의 약속, 군델 레스토랑
요즘 TV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음식 관련(먹방) 프로그램과 유명인 관련 리얼리티라는 두 가지의 주제가 장악하고 있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은 요리의 풍미와 비주얼만으로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관심을 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다양한 사진이나 동영상 정보와 비교될 수 없어 경쟁력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을 여행과 연결시켜 흥미를 배가 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맛있는 요리'와 '아름다운 관광지'는 잊을 수 없는 추억에 판타지까지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와서 여행지와 더불어 음식을 경험하며 한국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다'는 또는 '정말로 맛있다'는 코멘트를 남기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유럽여행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면서 요즘만큼 여행의 트렌드가 격렬하게 변했던 것을 경험했던 적이 없다. 여행지의 역사, 문화, 삶의 모습들에 대해 궁금해하던 분들이 이제는 여행지의 음식과 음식점에 관련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들을 쏱아내고 있다.
군델 Gundel 레스토랑
영화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의 배경이 되었다고 알려져 부다페스트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보면 군델 레스토랑을 |랜드마크|로 표시하고 있다. 식당이 한 도시의 랜드마크라면 유명한 영화의 주요 장소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가벼운 식사라도 하고 싶은 곳이 아닐까?
헝가리어로는 군델 에떼렘Gundel étterem이라고 부른다. <군델>은 창업자인 군델 카로이 Gundel Károly, 가족의 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894년 왐페티치Wampetich라는 이름으로 레스토랑이 문을 연 이후 1910년 군델 카로이가 인수하고 아들 야노스 군델 János Gundel이 호텔들과 다른 식당들의 고객들을 접대하는 노하우를 배워 자신의 레스토랑에 접목하기 시작하면서 군델의 역사는 헝가리 고급 레스토랑의 역사가 되었다.
특히 190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의 왕족, 귀족 또는 유럽 부호들의 사교장소로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그와 더불어 유럽의 훌륭한 요리들을 받아들이고, 헝가리 전통음식을 세련되게 발전시키면서 전 유럽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면서 식당에 등급을 매기는 다양한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한 번 더 도약을 하게 된다. 도약이라는 표현은 이 레스토랑의 전통에 비하면 하나의 가벼운 솜털 같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트립어드바이저, 미슐렝 가이드 레드 북 등 거의 모든 식당 등급 관련 사이트나 단체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님의 이야기처럼 "한국 내에서는 미슐렝 가이드가 세계 최고의 미식 평가서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현지에서는 그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한 단체 또는 사이트의 평가로 결정한다는 것은 마치 노벨상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유일한 평가로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구조주의적인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장 폴 사르트르의 일갈이 아주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노벨상은 매년 수상하게 되어 있고
내가 상을 받았던 해에는
내가 내 동료들인 다른 작가들보다는 나았고,
그다음 해에는 다른 이가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 해 한 해 동안 가장 우수했다는 말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우수했는데
그 해에 가서야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되었다는 말일까?"
알고 넘어가기
우리가 미슐렝 가이드라고 알고 있는 책자는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인 미슐렝에서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한 도로, 관광지, 호텔 등을 소개하는 기드 미슐랭 Guide Michelin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슐렝 가이드는 녹색과 붉은색으로 구분되는데 녹색은 여행과 도로에 관련된 안내서이고, 붉은색은 (호텔) 레스토랑 안내서이다. 따라서 레스토랑과 관련된 책자를 "레드 가이드(Red Guide)"라고도 부른다.
군델 레스토랑은 <음식 맛>과 <전통>이라는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음식 맛>에 대한 군델의 고집스러운 노력과 시스템화라는 부분은 그들이 세운 요리학교에 잘 반영되어있으며, 두 번째로 <전통>은 유럽의 전통과 헝가리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어떤 음식이든 그 음식을 만드는 전통적인 조리법과 더불어 그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맛에 대한 중요성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직원들의 서비스는 유럽의 전통과 명성이 있는 식당에 있다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한다.
여기서 군델 레스토랑의 CEO 페테르 크놀 Peter Knoll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의 메뉴의 가격은 단지 요리뿐만 아니라 gastronomic experience이 포함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다페스트의 다른 식당에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음식을 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군델에서 제공하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정성을 다하는 세심한 서비스 그리고 헤렌디와 졸너이사의 도자기로 만든 최고급 플레이트, 어느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도 볼 수 없는 훌륭한 회화작품들 및 최고 수준의 음악 연주는 오늘날 군델이라는 이름을 만든 가치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우리가 군델이라는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셰프의 조리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것만큼이나 분위기를 즐기러 가는 측면도 있다. 매일매일 자판기 커피를 마시다가도 어떤 날은 가격은 비싸도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여유롭게 한 잔의 커피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와 '즐기고 싶을 때'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들 인간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을 '단순 욕구'로
즐기고자 하는 것을 '감성의 문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음식을 멋진 문화로 '즐기고 싶다'면 아마도 군델이 훌륭한 선택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전 세계의 모든 고급 레스토랑의 특징 중에 하나인 최고급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군델에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화가, 미하이 문까치 Mihály Munkácsy 의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주의 작가인 그의 작품 중 '돌아온 병사'라는 작품의 가치는 약 20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군델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주인공 자보의 고급 식당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식당 영업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군델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은세공 식기와 도자기 플레이트는 군델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1999년에 제작된 독일 영화로 원제목은 Ein Lied von Liebe und Tod, (사랑과 죽음의 노래)로 2차 대전의 비극, 유대인, 사랑, 욕망, 아들의 복수 그리고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Seress Rezső)가 1933년 발표한 노래 <슬픈 일요일 Szomorú Vasárnap(소모루 버샤르너프)>를 훌륭하게 각색해 만든 매력적인 영화이다.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애수가 깃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스테파노 니오니시)는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안드라스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마치 듣고 싶지 않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음 깊은 곳에선 그게 진실이라 말하죠."
이 곡은 수 없이 리메이크되었으며 그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메이크 곡을 부른 가수로는 빌리 홀리데이, 비요크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우림의 청춘예찬 앨범에서 8번 곡으로 수록했다.
유럽의 유서 깊은 전통 식당, 인상 깊은 영화, 매혹적인 음악, 고급 포도주, 우아한 인테리어, 단아한 플레이팅, 세련된 서빙...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만들어 낸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을 군델 레스토랑으로 불러 모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등의 유명인사들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스토리텔링은 식당에 있어서도 명성을 만들고 유지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사진들은 부다페스트의 양지훈 가이드님의 도움을 받았으며, 군델 CEO와의 인터뷰는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5남매의 아버지 김도형 대표님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디자인유럽의 디유'Story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