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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 드 벙스 , 남프랑스의 행복

단순한 삶의 비법을 아는 세련된 사람들의 마을

by 빨간모자 원성필
"Je remercie le destin de m’avoir conduit sur les bords de la Méditerranée" - Marc Chagall
"지중해의 해안가로 나를 이끌어 준 운명에 감사합니다." - 마크 샤갈


그리고 그는 이 곳 생폴 드 벙스에서 20년을 보내고 생을 마감한다.


생폴 드 벙스 Saint-Paul-de-Vence


작은 마을이 하루만이라도 더 묵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곳은 처음이었다.

산 위의 매혹적인 아주 작은 마을로 이끌었던 <운명>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있다면 샤갈만큼 커다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마을 아래쪽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본 첫인상은 유럽에서 많이 보아 온 중세의 방어용 성곽도시 중의 하나였다. 5분쯤 걸어 올라 성문 입구에 도착하자 나타나는 자그마한 평지, 작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최고급 스포츠카와 이름만 들어도 감동을 받을 수제 또는 클래식카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왜?


La Colombe D'Or!


Colombe D'Or


황금 비둘기라는 의미의 < 라 꼴롱브 도흐 La Colombe D'Or >라는 호텔 겸 식당.


갈리아(현재 프랑스)를 점령한 로마의 카이사르가 이 주변 지역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고 한다.

"La Provence a un tresor, c'est une Colombe D'Or"
"프로방스 지역은 보석이며 황금 비둘기이다."


식당의 이름은 카이사르의 문장에 있는 < 라 꼴롬브 도흐 La Colombe D'Or >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1900년대 초중반 이후 예술가, 문학가, 철학자, 영화배우 등 유명인사들이 방문했던 식당이다. 지금도 남프랑스를 여행하는 식도락가라면, 좋은 음식은 좋은 여행의 최고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다.


폴 후 Paul Ruox로부터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마티스 이후 많은 예술가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명성과 함께 모이기 시작한 대가들의 컬렉션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CNN에서는 레스토랑 <라 꼴롱브 도흐>의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la-colombe-dor-vence-art/index.html



한 귀퉁이에 피카소가

다른 구석에는 마티스가

정원에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소소한 바람에 돌아가고

페르낭 레제르**의 모자이크가 배경으로 있는 곳




*알렉산더 칼더 : 현대 조각의 혁명인 모빌 Mobil을 탄생시킨 미국의 예술가

http://news.joins.com/article/19568160

**페르낭 레제르 : 피카로, 브라크와 함께 입체파 Cubism를 이끌었다.



샹송 고엽 Les Feuilles mortes으로 유명한 이브 몽땅과 시몬느 시뇨레가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속삭인 곳도 결혼식(1951)을 한 곳도 < 라 꼴롱브 도흐 >였다. 이 커플은 피아노 아래쪽, 입구 왼쪽 항상 같은 자리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시몬느 시뇨레와 이브 몽땅


프랑스의 천재 커플, 철학자이자 소설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봐르

마티스, 피카소, 샤갈, 브라크...

찰리 채플린, 폴 뉴먼, 소피아 로렌, 브리짓 바르도,

그리고 스웨덴과 벨기에의 왕과 영국의 황태자 에드워드 3세까지


그리고

부인과 함께 이 마을에 살았던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보스턴 글로브지의 평가) 베르니르-앙리 레비 Bernard-Henri Levy는 그의 책들에서 이 작은 식당과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La colombe d’or 입구


최근 인구가 3,477명(2008년 기준)이라고 하는데 이도 1960년대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지역이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로마와 빠리, 런던을 떠올리고 생폴 드 벙스로 여행을 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시골 마을의 포근함과 순박함과 더불어

대도시의 세련된 예술적 감각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다면 몰라도...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느낄 수 없는 프랑스, 남쪽 프랑스의 매우 남프랑스다운 마을.


스페인의 론다

이탈리아의 오르비에또

독일의 로텐부르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제 성안으로 들어가 보자. 1000년 쯤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마을과 성곽.


성문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좁은 길과 꽃을 상징하는 듯한 돌바닥 장식이 마중나온다 .

바닥을 어지럽힌 꽃 장식이 생폴 드 벙스의 앰블렘이다



육중한 석조의 동굴 같은 성문을 통과하면 정면의 큰길과 왼쪽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바로 오른쪽에 있는 관광안내소 office de tourisme에 들러 지도를 받아 나오자.

물론 나침반 없이 발길 닿는 대로의 여행이 좋다면 그냥 보이는 골목을 따라다녀도 좋다.


근현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이 마을은 중세적인 고즈넉함과 신선함이 골목골목을 스며있다. 현대 예술의 낯섬과 중세의 종교적 근엄함이 유쾌한 조화로움을 만들어낸다. 골목들 마다에 숨어 있는 갤러리와 아뜰리에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는 재미와 내딛는 걸음마다 만나는 새로움과 즐거움으로 들뜬 마음을 진정 시키키 어려운 동네다.



10분이면 남북을 관통하는 큰길(?)을 주파할 수 있다.

작은 길들은 여기저기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어린 시절 신기해했던 미로 같은 신비로움이 있다. 그리고 미로 속에서 만나는 아뜰리에들은 미로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10분도 안되는 공간을 반나절이 지나도 다 지나기 어려운 이유이다.


큰길의 중간쯤 가면 나타나는 작은 분수가 하나 있다. 이 분수를 마을의 홈페이지에는 시인 폴-마리 베를렌의 <3년 후에 Après trois ans>라는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해 표현했다.


"솟구쳐 오르는 물방울들은 언제나 은빛 속삭임을 만들어 낸다.

Le jet d’eau fait toujours son murmure argentin"






음식점과 상점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마을

그림 한 점을 사 보는 것도... 혹시 알아요? 그분이 나중에 유명하게 될지.





생폴 드 벙스가 가장 번성했던 14~16세기에 지어진 대저택은 오늘날 시청(Mairie)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청 앞 중앙광장에는 소성당을 개조한 라 샤펠 폴콩 La Chapelle Folon이라는 벨기에 예술가의 미술관이 있는데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회화들이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파스텔톤의 공간은 여행의 고단함에 대한 다독임이 될 것이다.

관람 시간은 15분 정도, 입장료는 성인 7유로, 12세까지 무료


1500년대를 전후로 유럽의 일부지역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가문들은 건물을 넓게 짓는 대신 높게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꼼꼼하게 여행을 하신 분들이라면 까사또레Casatorre(탑집)라고 불렸던, 곳곳에 높은 탑 같은 건물들과 탑을 개조한 건물들을 을 많이 보셨으리라. 피렌체의 단테의 생가라는 건물도 까사또레이며, 그리고 생폴 드 벙스의 시청도 마찬가지다.


중세와 르네상스 건축물들을 감상하며 현대 예술가들의 아뜰리에들을 들러보며 마을을 끝쪽으로 가다보면 성벽과 이어진 성문을 만난다. 성문을 벗어나면 눈 앞에 마을의 공동묘지가 보일 텐데 그곳에 1966-1985년까지 20년 동안 생폴 드 벙스에 살았던 샤갈의 무덤이 있다.


샤갈의 무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공동묘지 앞에 지도가 있을 것이다. 유럽에는 유명인이 묻힌 공동묘지에는 항상 지도가 있다. 예를들면 파리의 몽마르트르 공동묘지가 그렇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샤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생폴 드 벙스의 공동묘지 지도


지금처럼 생폴 드 벙스가 유명세를 유지할 수 있는 주요 두 요인을 꼽으라면 하나가 레스토랑 < 라 골롱브 도흐 >이고 다른 하나는 마크 샤갈이라는 인물일 것이다.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마크 샤갈의 흔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상상도 못했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정말로 내가 이 마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순박한 시골마을, 매력적인 성벽 도시, 지중해의 부드러운 미풍, 알프스의 거친 야성, 세련된 현대미술의 난해함이 아니다.


마을 산책을 마친 느지막한 오후가 좋고

노천에서 마시는 와인, 맥주, 커피, 홍차가 좋고

좋은 사람과 있어도 좋고

또는 혼자여도 좋다.


야외 카페나 레스토랑에 그냥 앉아 빵 굽는 향기를 맡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아뜰리에와 상점들

멀리 보이는 알프스나

꼬뜨 다쥐흐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여유도 좋다.



만약 수요일 오전에 이 마을을 지나간다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리는 시골장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로방스에서 만들어 내는 신선함, 풍미가 있는 작은 시장이다.

과일, 야채, 꽃, 잼, 빵, 차, 오일, 치즈, 고기...


푸짐한 사투리들을 주고받는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며 진솔한 사람들의 세상

때로는 주접스럽고 천박하지만

고급스러운 삶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남북을 잇는 마을 도로 표지 : RUE GRANDE 넓은 길




잊지 말고 방문할 한 곳이 더 있다.

마을 아래쪽으로 10분쯤 걸어내려가면 <퐁다시옹 매그트 Fondation Maeght>라는 미술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미술상이며 미술품 수집가, 잡지 발행인이었던 에메 매그트와 그의 아내 마그리트 매그트 Aimé Marguerite Maeght의 상상력과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초현실주의 화가가 후안 미로부터 마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알베르토 지아코메티, 조흐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르, 알렉산더 칼더 등 20세기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성인 15유로, 18세 이하 10유로, 사진 촬영권 : 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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