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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나라, 유럽 최고 부자 나라 헝가리

그리고 너무도 당당한 마자르 인들의 자부심

by 빨간모자 원성필
“'헝가리 바깥에는 삶이란 없다'라고 했다. 그녀는 속담을 그대로 받아들이듯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고 살았으며, 어디서 왔는지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 소설 부다페스트 중에서


부다 왕궁벽에 만들어진 마차시 왕 분수(1904) 개선문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과 아르누보 양식의 나무부조, 금장식


마자르 인들의 자부심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시작하고 당당함은 찬란했던 역사에서 출발한다.


1541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무너지기 전까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유럽 최강 왕국으로 자리했던 중세 헝가리 왕국 존재 자체가 유럽 역사에서도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이것이 이들의 화려한 첫 장이었고 자긍심의 시작이었다.


두 번째 장은 천재들이 만들어낸 세계 최강 산업국가로 전 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유린하며 놀라운 창의력으로 세상을 가득 채워 오늘날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현실화하고 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시기였다.(1876-1918)



첫 번째 장: 경제적 군사적 최강 중세 헝가리 왕국


1389년 코소보에서 10만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항복 대신 죽음을 택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던 중세 발칸의 지배자 세르비아를 무참히 짓밟았던 오스만제국. 파죽지세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할 기독교 세계의 왕국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황도 다른 중세 왕국의 왕들도 겁에 질려 숨 죽이며 공포로 시름시름 앓던 유럽에 등장한 후녀디 야노시 Hunyadi János. 그는 승패를 주고받으며 오스만 제국의 북진을 저지했다. 두려움에 떨던 헝가리 귀족들은 왕을 대신할 섭정으로 야노시를 선택했고 그는 실질적인 헝가리 왕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정체된 북진에 답답했던 이스탄불의 술탄에게 1456년 9월 26일 야노시의 베오그라드의 점령은 북진의 달콤한 꿈을 잔혹한 악몽으로 돌려주었다. 이어 검은 군대, 후사르와 함께 등장한 야노시의 아들 마차시 왕은 오스만 제국에게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이자 보헤미아 (현재 체크 CZECH) 왕이며 오스트리아의 공작이면서 폴란드 남부와 독일 서부 그리고 루마니아 북쪽 트란실바니아를 아우르는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수장으로 자리하며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슬로바키아는 서기 1000년 이후 1차 대전시기까지 자그마치 1000년 이상 헝가리의 땅이었다.


혹시 마차시 왕이 왕관을 쓰고 있는 그림이나 석상을 본 적이 있는가? 드물게는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그림과 각종 조각에는 월계관을 쓰고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처럼 말이다. 더 이상 그에게 대적할 존재가 없다는 자신감이었고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그는 문화적으로도 헝가리에 찬란한 르네상스를 도입한 수준 높은 군주였다. 유럽에서 바티칸 다음으로 큰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것, 이에 자극을 받은 유럽 최고 부자 동네 주인장 메디치 가문이 고대 및 중세 서적 수집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피렌체는 세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르네상스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경제력은 금화를 유럽에 공급하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증거는 현재 헝가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의 이름 “포린트 Forin”에 해답이 있다. 포린트는 1252년에 주조한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 florin(fiorino d’oro, 금의 꽃)에서 유래한 ‘플로렌티누스 florentinus’가 기원이다. 헝가리에서는 1325년부터 카로이 로베르트 Károly Róbert가 주조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기축통화인 달러를 마구 찍어낼 수 있었던 나라였다는 사실. 이후 베네치아의 두카트까지 주조하면서 오늘날로 보면 달러에 이어 유로화까지 발행할 수 있었던 유렵 경제를 떠받치는 주축국이었다.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는 약 200년은 헝가리의 전성기였다.



카로이 로베르트의 후손 너지 러요시(루이 1세, 1342–1382) 시기의 포린트 / 위키피디아

마차시 왕의 사망 후 귀족들과의 결탁으로 즉위한 왕들은 한결같이 시원치 않았고 결국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의 핍박이 지긋지긋했던 도자 죄르지 Dózsa György가 이끄는 농민군의 봉기(1514년)는 부조리한 차별의 봉건제 사회를 향해

인간다움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놀라운 생각이었다. 이 화려한 불꽃을 끝으로 헝가리 왕국은 1541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첫 장을 마감했지만 이는 헝가리 인들 자존감의 강렬한 표상이 되었다.


1514년 농민봉기의 지도자 도자 죄르지 Dózsa György

오스만 제국 지배시기(1541-1686)와 1686년부터 이어지는 신성로마제국의 또 다른 식민지배에도 헝가리 인들의 자의식 속에 단단하게 자리한 민족적 자긍심을 어쩌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항해 억압의 족쇄 앞에 죽음을 각오했던 1848년 3월 15일 혁명. 그 혁명으로 맛봤던 약 1년간의 자유는 민족적 자아를 발현시켜 우리가 ‘마자르’다. 우리가 ‘최고’다라는 간단명료한 명제를 이끌어낸 용틀임이었다. 이 자각을 통해 두 번째 장이 멋지게 열리게 된다.



두 번째 장 : 세계를 선도한 천재들의 나라


드디어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탄생으로 마자르 인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326년간의 식민지배 기간 중 눌려있던 이들의 능력은 가능성이 아닌 결과로 나타났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 그중 문학상과 경제학상 각각 한 명씩을 제외한 나머지는 의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 기초 과학 관련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종종 노벨상 수상자들 중 많은 수가 유대인이니 마자르 인들의 헝가리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는 패거리들도 있기는 하다. 그럼 1600년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를 구가했던 네덜란드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미국에서 유대인들의 역할이 크다고 해서 네덜란드나 미국의 성과를 폄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유대인이 많았던 소련은 왜 붕괴했을까? 우리나라는 유대인도 없는데 어떻게 선진국으로 올라선 거지? 유대인이나 무슬림들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해도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유럽대륙에서 최초로 1896년에 세계 최초의 전기기차로 개통된 지하철 역

우리는 전기차의 시대에 살며 머스크나 테슬라에 열광한다. 그러면 세계 최초로 전동자(전기기차)를 발명하고 증기기관을 한 방에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린 헝가리의 칸도 칼만 Kandó Kálmán과 같은 천재에게도 환호해야 한다. 브라운관 TV에 머물렀던 상상력을 몇 세대 건너뛴 홀로그램으로 기술적 한계를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로 대응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데니스 가보르는 또 어떤가?

지금도 안경이 대세인 세상에서 콘택트렌즈라는 기상천외한 발명품으로 지구인들의 눈을 신세계로 인도한 요셉 달로스도 세상을 바꾼 천재였다. 고농축 비타민 C를 파프리카에서 추출해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젠트 죄르지와 홍채 진단의 아버지로 알려진 외과의사 이그나츠 폰 페체리도 천재였다.

이 대단한 하늘이 내린 재능들은 헝가리를 바이오산업 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바이오산업에 사활을 건 우리나라의 기업인 셀트리온도 이곳에 유럽 헤드쿼터를 두고 있다. 독일도 프랑스도 영국도 아닌 곳 마자르 사람들의 땅에 말이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가볍게 밀어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컴퓨터 과학자이자 엔지니어, 심리학자는 물론 이런 다양한 명칭도 모자라 만능인 Polymath 또는 전인 Uomo Universale으로 분류한 인류역사상 최강 천재 존 폰 노이만을 비롯해 컴퓨터와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과 워드를 만든 카로이 시모니도 헝가리 출신이며, 현대 수학의 중심 분야인 이산수학 및 이론컴퓨터과학의 토대를 만들고 선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2021년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아벨상을 받은 로바스 라즐로, 함수해석학의 개척자인 리스 프리제시 등 참 놀라운 나라다라는 생각이 든다. 천재의 나라라기보다는 천재들이 온천수처럼 끊임없이 분출되는 나라다.


영국으로부터 재빨리 산업혁명을 받아들여 19~20세기 초반 세계 제1차 대전시기까지 최고의 산업국가 중 하나로 당대 손꼽히는 부자나라 마자르민족의 헝가리는 이렇게 두 번째 장을 멋지게 장식하고 이제 세 번째 장을 준비하고 있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처럼 지금의 모습이 누추해 보일 수 있어도 젊은 헝가리는 다시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리스트 음대 앞에 조각된 리스트 페렌츠

헝가리 인들의 정체성은 마자르 인들의 상징인 사자처럼 스스로를 최고의 위치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있다. 비굴함을 경멸하고 당당함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이 땅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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